성주와 랍비
20세기 영문학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이라 할 수 있는 헝가리 출신의 유대계 영국인 아서 쾨슬러(Arthur Koestler)의 작품 속에 이런 우스갯소리가 들어있다 한다.
유럽의 한 성주(城主)가 사냥길에 나섰다가 빠뜨린 물건이 생각나 도로 성으로 돌아왔다.
그가 침실에 들어가 보니 유대교의 한 랍비가 그의 아내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것 아닌가!
이런 어이없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 성주는 눈이 튀어나올 정도로 화가 났지만 이내 불타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짐짓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들을 지나쳐 발코니로 나갔다.
그리고 그는 발코니 아래 길 가는 사람들을 향해 천천히 십자가 성호를 긋기 시작했다.
성주의 갑작스런 등장에 화들짝 놀란 랍비가 급히 속옷만 수습한 채 달려가 성주 앞에 무릎을 꿇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대공전하(大公殿下), 대체 여기서 무얼 하고 계시나이까?”
그러자 성주가 답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나 대신 당신이 하고 있으니, 나 또한 당신이 할 일을 대신하는 중이오."
한 시절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그가 자신의 저서 속에 이 이야기를 포함시킨 걸 보면 그가 이 유머를 얼마나 높이 평가했는지 알만하다.
현재 우리 사회는 너무나 여유가 없다. 상대방에 의해 조금만 기분 나쁜 일이 생기면 순식간에 번갯불 같은 스파크가 일어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도 독기 어린 독설 대신 유머로 상대를 제압하는 이 여유!
비록 지어낸 이야기라 할지라도 웃으며 여유를 찾고 웃으며 한 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