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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un 02. 2023
지독한 욕설, 하지만 점잖게
천재시인 김삿갓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어느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시골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개 취급을 하며 내쫓는다.
이에 화가 치민 김삿갓이
더러운 욕설 시를 한 수 써 붙이고 나온다.
書堂來早知
내 일찍이 이 서당을 알고 찾아왔건만
房中皆尊物
방안엔 모두 높은 분들 뿐이고
生徒諸未十
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先生來不謁
선생은 찾아와 보지도 않네.
위의 시를 소리 내어 읊으면 다음과 같다.
서당내조지
하니
방중개존물
이라
생도제미십
에
선생내불알
이라
김삿갓은 안동 김 씨로 본명은
김병연
(金炳淵·1807~1863)이다.
자신이 지은 호는 떠돌 '난'에 후미진 곳 '고'를 써
난고
(蘭皐)라 하였지만
세상은 그를 김삿갓, 혹은 한문으로 김립(金笠)이라 부르길 즐겼다.
그의 할아버지 김익순(金益淳)은
순조 11년(1811년)에 일어난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로 있었는데
반란군에게 항복하는 바람에 역적이 되어 집안이 멸족을 당하게 되었다.
이때 그 집안의 나이 많은 종복이던 김성수는
다섯 살 배기 김삿갓을 야밤에 피신시켜 황해도 곡산에 숨겼다.
이리하여 그는 어려서 외진 곳에서 이름 없이 성장하게 되었고
아버지 김안근(金安根)은 김삿갓이 어릴 때 유배지에서 화병으로 죽었다.
한편,
그의 어머니는 집안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는 일념으로
어린 그에게 집안의 내력은 비밀로 한 채 학문을 열심히 갈고닦게 하여
그로 하여금 강원도 영월의
향시(鄕試)
에서 장원급제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김삿갓이 장원급제한 글의 내용이 하필이면 자신의 조부 김익순을 질타한 것이었으니
-論題: 論鄭嘉山忠節死 嘆金益淳罪通于天- 이 문슨 기구한 운명이런가!
뒤늦게 집안 내력을 알고 난 김삿갓은
자신이 친할아버지를 비판하여 급제한 사실을 알고 관직에서 물러나
자신은 조상을 욕보인 죄인이라 하늘을 볼 수 없다 하여 그때부터 삿갓으로 하늘을 가리고 다녀
김삿갓이 되었다 한다.
그는 일생동안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다 말년에는 영월로 돌아와 57세의 나이로 쓸쓸히 죽어갔다.
한 많은 인생, 한 많은 세상. 그래서일까?
그의 시 중에는 유독 입에 담기 힘들 정도의 욕설 시가 많다.
그런데 그 시라는 것이 모두
한자로 되어있어
내용은 한 편의 훌륭한 한시
(漢詩)라,
글로 써놓으면 아무 문제 될 것이 없는데
소리 내어 읽을 때는 지독한 우리말 욕설이 된다.
한자의 발음을 이용하여 한글로 욕하고,
그러면서도 같은 말로 다른 뜻을 전하게 하니
천재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는가!
그러기에 그는 비록 욕설 시가 많긴 하지만 후세에 와서
미국의 시인 월트 휘트먼(Whitman. Walt, 1819~92)과
일본 메이지 시대의 시인 이시카와 다쿠보쿠(石川啄木·1886~1912년)와 함께
세계 3대 혁명 시인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위의 사진은 영월에 있는 '김삿갓 기념관'에 들렀다가 그의 묘지 근처에 있는 기념 조형물을 촬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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