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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우물 Jan 05. 2025

나15 그녀와 내가 살아내야만 할 이유(상)

# 25-01-03      

환자 준비되었다는 보고에 판독실에서 나와 초음파실로 가는데, 대기실에 앉아있던 한 젊은 여성이 "안녕하세요." 하며 반갑게 인사한다.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얼굴인 걸로 봐서 전에 나에게 초음파 검사를 받았던 환자이겠거니 싶어 고개 숙여 답례하고 검사실로 들어가 준비된 환자를 보았다.     


검사를 마치자 어시스트하는 직원이 "재진 환자 대기 있습니다." 하길래 “대기실에 앉아있는 여자가 그 환자인가?” 하고 물었더니 그렇다고 한다. 그래서 판독실로 돌아가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판독한 후, 열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려 본 나는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환자는 양쪽 겨드랑이에 끼운 크러치(underarm cruches, 목발)에 의지한 채, 마치 초창기 로봇처럼 뻣뻣한 다리로 어거정거리며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한 불안한 자세로 걸어왔다.

같은 지체장애인인 나는 저런 사람들이 걸을 때 어떤 어려움이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가슴이 아리~해 왔다.     


그녀가 다시 한번 나에게 밝게 인사하고 검사실 안으로 들어와 침대에 올라가려 할 때 옆에 있던 직원이 그녀를 부축하려 하자 나는 재빨리 그녀를 제지하며 말했다.

"이런 환자는 절대 함부로 몸에 손대선 안 돼. 본인이 도와달라는 대로 해 줘야지. 자칫 잘못하면 큰일 나."

내가 그리 말할 수 있는 것은 지금 내 상태가 그렇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녀는 맞다는 듯 미소로 내게 감사를 표하며 크러치에 의지한 채 엉덩이를 침대 위에 걸치고 직원에게 크러치를 건네며 왼쪽 다리를 들어 침대 위로 올려 달라고 부탁하였다.


그런 식으로 어렵게 어시스터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검사받을 준비를 하는 사이 나는 그녀의 이전 검사 영상을 살펴보았다.

나이는 44세. 소견은 정상.     


검사 준비가 다 끝나자, 내가 물었다.

"1년 전 검사에서 정상이던데 왜 또 받아요?"

옆에 선 어시스터가 조용히 내게 말한다.

"간염 보균자입니다."

"아, 그래?"


"어느 선생님에게 다녀요?"

"저는 이 병원 환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 몸으로 왜 여기까지?"

"저는 성가병원에 다니는데 그 병원 내과 원장님께서 작년처럼 선생님께 초음파검사를 받아오라 해서 왔어요.“     


그제야 감이 왔다.

이 병원 내과에 근무하다 이직한 류 선생이 복부초음파 환자만 생기면 나에게 보내는 것이다.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내가 물었다.


"어쩌다 이렇게 중증장애인이 되었습니까?”

"뇌성마비에 걸려서요."

"언제부터?"

"태어나자마자요. 미숙아로 태어났는데 인큐베이터에 들어가지 못해서 그랬는지 그렇게 되었어요."     


얼마나 가정형편이 어려웠으면 미숙아임에도 인큐베이터 케어를 못 받았을까?

또다시 가슴이 저릿해 온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걷는 형태나 다리 상태를 보아 근육이 뻣뻣해지고 긴장되어(tensive) 움직임이 어려운 경직성 뇌성마비임이 틀림없는데,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지적장애는 동반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었다.


"이 몸으로 보호자도 없이 무얼 타고 여기까지 왔어요?"

"자비콜 택시를 타고 왔습니다."

"그건 일반택시잖아요? 아니 왜 두리발을 이용하지 않고?"

"두리발은 워낙 대수가 부족한 데다 다행히 자비콜이 두리발과 연계하여 장애인 서비스를 해줘서요."


"그래도 그건 일반택시 구조잖아요? 그걸 혼자 어찌 타누?"

"기사 아저씨 도움을 받아 여기서처럼 엉덩이부터 먼저 밀어 넣고 그렇게 타요."

"그럼, 보호자는?"

"없어요. 혼자 살아요."


혼자 산다는 그 말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데다

그래도 부모는 있을 것 아닌가 싶어 물었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어요."


"아니, 이 몸으로 어찌 혼자 생활할 수 있단 말이고? 밥은 어떻게 해 먹고?"

"싱크대에 몸을 기대고 서서 어찌어찌해요."

"잠은 침대에서 자지요?"

"침대 없어요."

"그럼, 방바닥에서 잔단 말이여?"

"예."

"아니, 이 몸으로 그게 어떻게 가능하노? 나도 못 하는데.“


그랬더니 그녀는 방바닥에서 일어나는 나름의 방법을 설명하는데 참 기도 안 찬다.

그런 게 얼마나 힘든 작업인지 내가 잘 아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침대 하나만 있으면 너무 편할 것을? "

"방에 침대 들어올 공간이 없습니다."     


정말 그래서일까? 아니면 침대 살 돈이 없어서일까?

이렇든 저렇든 참 너무하다.

자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아 겨우겨우 참았다.     


"그럼, 생활비는?"

"정부에서 주는 기초생활수급자 보조금으로요."     


도저히 안 되겠다. 내가 조금이라도 도와줘야지.

하지만 이런 말은 자칫 상대방 자존심을 상할 수 있어 조심스레 말했다.

"그럼, 갈 때 우리 직원에게 본인 계좌번호 하나 적어주고 가세요. 내가 조금이라도 후원을 해주고 싶으니까."


"아이고, 아닙니다."

예상대로 그녀는 손사래를 쳤다.     

이럴 땐 나이 많은 게 도움이 된다.


나는 정색을 하며 강한 톤으로 말했다.

"이거 무슨 소리야! 장애인이 장애인 좀 돕겠다는데 거절하다니. 헛소리 말라우!"     

그제야 그녀는 만 가지 감정이 섞인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내 방으로 돌아와 직원에게 환자 이름, 계좌번호, 주소, 폰번호를 적어 오라 하고 기초생활수급자 정부 보조금에 대해 알아보았더니 1인 가구에 대한 보조는 월 71만 5천 원.

이 돈이면 한 달 생활비가 아니라 한 달 생존비 정도 될 것이다.     


집은 모라동 주공아파트.

임대 주공아파트 최소 평수 구조를 알아봤더니 10평대 초반에 대개 방 한 개에 거실 겸 주방으로 구성된 원룸형이란다. 이 정도면 침대 놓을 곳이 없다는 말도 지어낸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럼 어떻게 도와줄까?

한 달에 10만 원씩 정기후원으로 할까? 아니면 한 번씩 목돈으로 줄까?

매달 10만 원씩 후원하면 생활은 조금 나아지겠지. 하지만 거기에 익숙해지면 매달 써버리고 돈은 못 모은다. 그러다 나중에 후원이 끊기면 더 어려움을 느낄 수도 있고.

하지만 한 번에 목돈으로 주면 비상금으로 모아두었다가 급할 때 요긴하게 쓸 수 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저녁 식탁에서 오늘 있었던 일을 아내에게 말했다.

"그 사람 이야기 듣고 당신 또 울었어요?"

"아이고, 안 그래도 어찌나 눈물이 나오려고 하던지. 옆에 직원이 있어서 참는다고 욕봤네."     


아내 역시 후원하는 데는 동의했다. 하지만 정기후원에는 신중해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당신이나 나나 그동안 이리저리 후원해 봐서 알잖아요. 정기후원을 하다 보면 시간이 지날수록 받는 사람은 당연하게 생각하게 되고, 끊기면 오히려 원망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요즈음 당신 형편에 다소 부담은 가겠지만 그냥 목돈으로 주시지요.“     


어쩌면 이렇게 내 생각과 같을까!


이제 금액이다.

10만 원씩 1년 치를 쳐서 120만 원을 보내면 받는 사람은 정기후원임을 눈치채고 때가 되면 또 들어오기를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100만 원을 보내면 일회성으로 생각하고 그 돈을 소중히 아껴 쓸 것이다.     

그래. 내 나이도 있고, 앞으로 언제까지 직장을 다닐 수 있을지도 모르니 그냥 100만 원으로 하자.

할 수 있을 때까지.


처음엔 폰번호로 격려의 문자와 함께 입금한 사실을 알리려 했다가 그냥 돈만 입금했다.

다만 「받는 통장 표기」 난에 ‘하나님은혜충만’이란 문구를 하나 넣어..     

           

                                                                                                                                        will be continued...



※ 표제사진 출처: shutterstoc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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