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그 장소의 느낌, 분위기, 상황이 짧은 동영상처럼 머릿속에 기억되어 있는 것이 신기하다.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 시절, 점심시간에 나눠주던 급식빵 이야기다.
누구나 다 준 게 아니고 도시락을 싸 오기 어려운 아이들이 받은 듯한데, 기억이 확실치 않다.
이럴 줄 알았으면 일기라도 좀 써둘걸. 하지만 당시 우리 집은 내가 일기를 쓸 수 있는 여건의 집이 아니었다. 일기는 내 방이 있어야 쓰는 것이 아닐까. 방 하나에 여러 식구가 함께 쓰는 환경에, 더구나 내 책상은 꿈도 못 꾸던 시절이니.
일기를 쓰고, 그 일기를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다면 글 쓸 거리가 넘쳐나겠다.
한 장면의 이미지를 놓고 내 머릿속은 무한반복 기억을 더듬고 당시의 부수적인 상황을 가늠해, 그럴싸한 줄거리로 유추해 내야 한다.
이미지 하나. 급식실에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버지의 모습 오버랩. 길게 줄 서 있는 아이들. 한 사람씩 차례로 그 반에 필요한 수만큼 빵 덩어리를 받아간다.
빵은 자르지 않은 식빵을 여러 줄 붙인 것처럼 한 판에 25개의 조각이 붙어있었다. 교실에서는 당번이 받아온 빵을 하나하나 뜯어서 하나씩 아이들에게 분배하였다.
학교 본관 건물 뒤, 단층으로 된 가게 같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두 칸으로 이루어진 옆 공간은 실제 학교에서 운영하는 문방구였다.
아버지는 6년간 내가 다니는 학교에서 근무하셨다. 아마 급식 빵과 관련된 일을 업무로 맡으셨는지, 오븐에 구운 빵을 각 학급에 나눠주는 일을 하셨다.당시 내 기억에 밀가루 빵이었다.
머릿속에만 남아있는 그 장면. 누가 실제로 있었던 일이냐고 따져 물어도 내 머릿속에 저장만 되어있을 뿐 아무런 증거가 없는. 하지만 그때의 분위기, 아버지 특유의 웃음 띤 표정, 아직도 따뜻한 빵 25개짜리 한 판과 낱개를 더 얹은 빵 상자도 기억에 있는 듯하다.
누군가 빵 만드는 제빵사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수업 도중에 빵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을 내버려 두고 나왔을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나도 빵을 만들어 보었지만, 그 과정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이미지 둘. 4학년 여름방학이었고, 방학이라고 갈 곳이 없는 나는 아버지 교실에 잔뜩 쌓인 도서실 책에 파묻혀 지냈다. 방학 동안 도서실 리모델링 공사는 하는데, 도서실의 책 일부를 각 반 교실에 보관하게 했던 것을 내가 독차지한 것이다.
아버지는 당시 핸드볼 코치를 맡으셨다. 3년 연속 우승을 하면 우승기를 그 학교에 영구 보유하게 하는데, 아버지는 해마다 핸드볼부를 우승으로 이끄는 실력 있는 코치였다. 그래서 특별 케이스로 내가 다니던 학교에 10년이나 근무하셨다.
여름방학이라 핸드볼부 아이들을 위해 특별히 만드신 빵이 바로 옥수수빵이다.
따끈따끈하고, 구수하면서 , 달큰하던, 또 입안에서 느껴지던 옥수수의 거친 알갱이의 느낌이 생생하다.
방학 동안 아버지의 빈 교실에서 책을 보고, 맛있는 옥수수빵을 먹었던 기억이다. 무려 50년도 더 된 기억이지만 그때 분위기,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며칠 전 가입한 카페에서 옥수수 급식빵이 등장했다.이름하여 학교 급식 옥수수빵이란다.
그때 그 추억의 빵을 생각하며 주문을 했더니 이틀 만에 도착을 했다.
빵의 크기는 좀 작았다. 노란색이 그 당시 옥수수빵의 느낌이 나서 동봉된 안내서를 읽어보니까 100% 옥수수 가루로 만든 거란다.
나도 그 옛날 맛을 잊지 못해 인제 옥수수 가루를 주문해서 강력분을 섞어서 식빵 만드는 방법으로 만들어 본 적이 있었다. 물론 그때 그 맛은 아니었다.
냉동해서 보내준 것인지 빵이 좀 딱딱했다. 먹기 좋게 썰어서 전자레인지에 2분 정도 돌린 후 먹어보았다.
남편이 먹어보더니 맛이 비슷하다고 했다. 하지만 기억에 좀 더 부드러웠던 것 같단다.
남편도 초등학교 시절 친구들의 빵을 한 조각 얻어먹기도 하고, 아예 한 개를 싸가지고 간 도시락과 맞바꾸어 먹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내가 다니던 학교에서는 밀가루 빵만 급식으로 제공되었었는데, 서울(남편은 서울에 있는 초등학교에 다녔다.)에는 옥수수 빵만 있었다고 한다.
맛은 좀 달랐지만, 추억 소환하기에는 충분하였다. 아버지의 옥수수빵은 아무래도 밀가루와 섞어서 만드신 것 같다. 돌아가신 지 한참 되었으니 레시피를 물어볼 수도 없고. 맛은 추억의 껌딱지처럼 입에 기억되어 있으니, 나도 남해에 있다는 그 빵가게 사장님처럼 내 추억의 맛을 재현하려 다시 시도해 봐야겠다.
아버지의 옥수수빵. 증거 자료가 될 만한 사진 한 장 남아있지 않지만, 내 기억의 창고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는 추억의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