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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Jan 11. 2024

좀 살살 대해줘

멜버른 day 1

7월 27일 수요일

             

공항에 가려고 디디 앱을 실행했다. 전날 표시됐던 요금과 크게 차이가 났다. 70불이 넘었다. 도저히 타협할 수 없었다.

기차를 타기로 결정하고 로마 스트리트 역으로 갔다. 숙소가 기차역과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고카드에 남은 금액을 어떻게 이용할지 몰랐는데 할아버지 직원이 도와줬다. 둘이 합해서 10불 정도에 브리즈번 공항에 갈 수 있었다.

체크인을 할 때 항공사 직원이 공항 매장에서 사용 가능한 바우처를 줬다. 그것을 사용해서 커피와 스시를 사 먹었다. 

브리즈번의 마지막은 나쁘지 않았다. 감사했다. 하지만 감사하기에는 너무 일렀던가 보다. 저가항공답게 젯스타Jetstar는 제시간에 떠나지 않았다. 우리는 감사한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인내했다. 인내심이 바닥날 무렵 다행히 비행기가 출발했다.

머지않아 창밖으로 멜버른의 하늘이 보였다. 비행기 날개 너머 구름 사이로 건물, 도로, 녹지, 자동차들이 나타났다. 드디어 착륙. 

짐이 무거워 디디를 타고 숙소로 향했다. 기사가 운전하는 내내 통화를 해서 불안했다. 차창 너머로 보이는 스카이라인이 우리가 대도시에 도착했음을 알려줬다.

목적지인 Scape Living at Franklin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했다. 멜버른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풍경이 일품이었다. 누아도 마음에 들어 했다. 우연히 숙소 옆에 있는 빅토리아 나잇 마켓Queen Victoria Market이 수요일에만 열린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짐을 풀고 부랴부랴 마켓으로 향했다. 마켓에 가까이 갈수록 맛있는 냄새가 퍼져왔다. 거대한 시장바닥이었다. 온갖 인종들이 웃고 떠들고 먹는 모습을 구경할 수 있었다. 전 세계 음식들이 모여 있는 살아생전 보기 드문 장터였다. 어떤 걸 먹어봐야 할지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아프리카. 아시아. 아메리카. 유럽. 우리는 소량으로 여러 가지 음식을 시도하기로 했다. 나타, 양꼬치, 빠에야, 아메리칸 도넛, 번트 치즈케잌, 생맥주를 먹었다. 다 먹고 나니 피로감이 몰려왔다. 우리의 공통점은 사람들이 많은 곳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나잇 마켓과 아쉬운 작별을 고했다.

숙소 가까이 있는 마트에 들러 와인을 샀다. 멜버른의 첫날밤을 보내기 위해서라는 구실을 만들었다. 우리의 또 다른 공통점이랄까.

방 창밖으로 시내의 온갖 불빛들이 반짝거렸다. 티브이로 아델의 라이브 공연이 벌어졌다. 멜버른 입성을 위하여. 누아와 건배를 했다.

갑자기 그녀가 카톡 메시지를 보더니 자리를 떴다. 아델의 가창력을 혼자 감상하기는 아까웠다. 누아가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누구야? 내가 물었다.

미키.

마우스?

그때 말했던 옛 직장 동료.

왜?

만나자고 하네. 멜버른으로 오겠대.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응.

비행기 타고?

뭘 타고 오는지는 모르겠어.

만날 거야?

못 만날 이유는 없으니까.

아델의 노랫말이 티브이 화면에 깔렸다. 

Go easy on me, baby

I was still a child

Didn't get the chance to

Feel the world around me

Had no time to choose 

What I chose to do

So go easy on me

너 정말 나한테 심한 거 아니니. 

난 아직 어리다고. 

내 주변을 느낄 기회가 없었어. 

선택할 시간이 없었다고. 

날 좀 살살 대하라고.

노랫말이 내 머릿속에 박혔다. 나는 잔을 들어 연거푸 와인을 마셨다.

이럴 때 왜 할 얘기가 없을까. 나라는 놈은 참.

누아가 술을 그만 마시라고 말한 것 같은데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줄어드는 와인만큼 아델의 목소리가 아득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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