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리즈번 day 4
7월 26일 화요일
아침에 로마 스트리트 파크랜드Roma Street Parkland에 갔다. 숙소 건너편에 있는 나무, 풀, 폭포, 숲이 어우러진 공원이었다. 기이한 식물과 레인 포리스트가 인상적이었다. 마귀할멈 코처럼 길게 구부러진 부리를 가진 새가 걸어 다녔다. 연못가에 도마뱀 두 마리가 꼼짝하지 않았다. 만약 움직였으면 무서웠을 것 같았다. 간디 동상을 보자 호주 또한 영국 연방임을 새삼 깨달았다. 다양한 식물들을 배경으로 누아의 프로필 사진을 찍었다. 훗날 그녀의 SNS를 볼 때 어떤 기분이 들 것인가. 깊이 생각하지는 않았다.
숙소로 들어와 라면을 먹었다. 먹을 때마다 맛있었다. 서로 찍은 사진을 카톡으로 교환했다. 내 모습이 점점 실망스러워서 사진 찍기가 겁났다.
둘 다 낮잠을 잤다.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다.
문득 라면. 낮잠. 게으름. 코알라. 갑자기 이런 단어들이 떠올라 눈을 떴다. 뜻밖에 누아가 아직 잠들어있었다. 내가 먼저 깬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그녀를 건드렸다. 꿈쩍하지 않았다. 계속 흔드니 칭얼댔다. 나는 멈추지 않았다. 마침내 그녀가 화를 내면서 일어났다.
왜 그렇게 자? 내가 말했다.
졸리니까.
왜 졸려?
피곤하니까.
그러다가 달관하겠다.
누아가 나를 흘겨봤다.
전열을 가다듬고 우리는 밖으로 나갔다.
쿠릴파 다리를 건너 퀸즈랜드 주립도서관에 갔다. 올 때마다 도서관이 위력적으로 느껴졌다. 좋은 자리를 찾아 한 층 한 층 올라가니 Quiet room이라고 적힌 공간이 나타났다. 넓은 호주 땅처럼 도서관 열람실도 드넓기만 했다.
그녀의 도서관 여행기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했다. 과연 우리가 몸으로 느끼는 만큼 독자에게 전달할 수 있을까. 브리즈번 강. 빅토리아 브리지. 긴 원목 책상. 주황색 카펫. 콰이엇 룸. 그 적요함까지.
잘 돼가? 내가 물었다.
그럭저럭.
도서관 여행기는 누가 읽는 거지?
도서관을 좋아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많을까?
아니겠지. 걱정돼? 누아가 말했다.
걱정은 무슨...
난 내 책이 어느 도서관에 꽂혀있기만 해도 좋을 거 같아.
내 시집 옆에 꽂혀있으면 좋겠다. 내가 말했다.
여행기하고 시집하고 어떻게 붙어있어?
내가 도서관마다 돌아다니면서 그렇게 꽂아놔야지.
바보.
누아는 다시 글을 쓰는데 열중했다.
나는 서가에 나란히 꽂힌 여행기와 시집을 상상하다가 문득 걱정이 들었다. 여행기는 재미있는데 시집이 재미가 없다면. 생각만 해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었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정신 차려야지. 이런 환경에서도 시를 못 쓴다면 숟가락을 쥐어줘도 밥을 못 떠먹는 것과 같았다.
나는 머리통을 감싸고 시를 짜냈다.
브리즈번 강물 위로 거지새가 날아다니고
퀸즈랜드 도서관에 물고기가 뛰어놀고
빅토리아 다리 위에 연인이 춤을 추고
시다. 이것은 시다. 시여야 한다. 나는 이런 생각으로 도서관에서 나올 수 있었다.
구글로 피시 레인Fish Lane에 있는 벨기에식의 펍을 찾아냈다. Saccharomyces Beer Cafe. 펍이 있는 골목에 포스트 모더니즘적인 그래피티가 있었다.
높은 별점에 수긍이 갈 만큼 서비스가 좋은 펍이었다. 브리즈번의 여러 맥주를 맛볼 수 있는 샘플러를 주문했다. 누아의 의견이었다. 우리는 한 잔 한 잔 음미했지만 특이한 맥주맛을 느끼기는 힘들었다. 왜일까. 우리의 술 입맛이 까다로워졌을 수도 있다. 그만큼 마셨으니까. 사이드로 먹은 양고기와 그레이비는 만족스러웠다. 그것으로 됐다. 우리는 그렇게 합의를 본다. 그래야 한다. 언제나 타협은 그렇게 이루어진다.
술과 도시와 사람과.
나는 취했다. 너도 취했다. 우리는 취했다.
브리즈번과 그렇게 안녕을 고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