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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원초이 Jan 06. 2024

하이, 헝그리

브리즈번 day 3

7월 25일 월요일

              

어렵게 비행기 스케줄을 변경했다. 우리는 다다음날 한국 대신 멜버른에 가기로 했다. 추위를 감수하고.

론파인 코알라 생츄어리Lone Pine Koala Sanctuary에 가기 위해 일찌감치 나섰다. 늘어난 여행일정을 생각하니 발걸음이 가벼웠다. 누아가 쫓아오며 말했다.

너 왜 그래?

뭐?

너무 빨라.

나는 마구 뛰었다. 뒤에서 누아가 소리쳤다.

앤 스트리트Ann Street에서 544번 버스를 탔다. 몇 분 지연됐지만 웃어넘겼다. 차창으로 브리즈번 교외 풍경을 감상했다.

생츄어리 입구에서 온라인으로 예매한 큐알코드 확인절차를 거쳤다. 생전 보지 못한 동물들이 모습을 나타내서 우리를 즐겁게 만들었다. 코알라는 기대 이상으로 그들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한결같이 잠들어있었지만 존재 자체가 그들의 역할을 다 하는 것 같았다. 그들을 깨우고 싶은 욕망이 발동했지만 꾹 참았다.

꼭 너 같다. 누아가 말했다.

왜?

너도 좀 나태한 편이잖아.

저건 나태가 아니라 달관이지.

너는 달관하려면 아직 먼 거 같은데? 누아가 말했다.

그러니까 좀 더 자야지.

자서 달관할 수 있다면 당연히 더 자야지. 그럼.

누아의 말을 듣고 나니 코알라들이 한층 친근하게 느껴졌다. 간간이 잠에서 깬 코알라와 눈을 마주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코알라는 나를 보는 둥 마는 둥했다.

Sheep Station에 쉽 도그 쇼를 보러 갔다. 주인의 신호에 따라 개는 능숙하게 양 떼를 몰았다. 민첩하다는 단어가 정확히 들어맞는 상황이었다. 신기한 건 개에게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양들 또한 즐거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그럴 수 있을까. 흔들리는 나에게 누군가 이정표를 제시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나는 흔들리고 있는가. 누군가 내게 이정표를 제시하고 있는가. 내가 이 순간 즐거운 건 그것 때문이 아닐까.

누아는 쇼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는 것도 내게는 또한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캥거루 서식처로 발길을 옮겼다. 캥거루들은 코알라 못지않게 잠에 취해 있었다. 한 마리가 눈을 뜨고 일어나더니 내게 다가왔다. 나는 손바닥을 펴서 공원 입구에서 받은 먹이를 보여주었다. 캥거루가 혀를 내밀어 내 손바닥을 간질이더니 금세 먹이를 먹어치웠다. 나는 캥거루에게 계속 먹이를 건넸다. 누아는 캥거루의 등을 쓰다듬다가 꼬리를 만졌다. 캥거루가 갑자기 주먹질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기우에 불과했다. 캥거루는 온순했고 도발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캥거루와 작별인사를 나누고 새들을 구경했다. 한 번도 못 본 동물들이 지구상에 이렇게 많았다니 놀라웠다.

한 번도 못 본 사람들도 물론 많이 있겠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린 버스를 타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베이커리 레인Bakery Lane을 일부러 찾아갔다. 예쁜 이름에 걸맞지 않은 아주 작은 장소에 불과했다. 

스토리 브리지Story Bridge로 향했다. 다리에 올라서니 그 이름대로 브리즈번 시내가 하나의 이야기처럼 눈에 들어왔다.

좀 먼 거리였지만 사우스 뱅크 방향으로 걸어갔다. 식물원을 지나자 돌로 된 절벽이 나타났다. 그곳에 암벽 등반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치열하게. 좀 더 치열하게. 나는 속으로 되뇌었다.

브리즈번 스퀘어 도서관Brisbane Square Library에서 쉬어갔다. 누아는 뭔가 쓸 거리를 찾아 열람실을 뒤졌다.

다이목스 서점에 들러 Old Jokes 160라는 농담으로 가득한 책을 샀다. 아제 개그 같은 Dad’s joke가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서점에서 나와 카지노에 갔다. 30불어치 슬롯머신을 했다. 나 혼자 왔으면 300불은 썼을 것 같았다.

다행이라고 여기며 전날 입장에 실패했던 아이리시 펍에 들렀다. 장발의 남자가 기타를 치면서 부르는 노래를 감상하면서 생맥주를 마셨다. 코리안 치킨이 맨 위 메뉴에 있어서 놀라웠다. 구운 야채와 어니언 링을 먹었다.

벽에 My Goodness My Guinness 광고가 붙어있었다. 바로 아래 앉은 누아가 음악에 맞춰 몸을 흐느적거렸다. 펍 창밖으로 퇴근하는 사람들이 무리 지어 갔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여행자와 관찰자의 차이는 무엇인가. 문득 든 생각.

귀갓길에 콜스에 들려 초콜릿과 요거트를 샀다. 숙소 카운터에 누아가 바디로션을 요청했다. 나 혼자 왔으면 요청하지 못했거나 안 했을 것이다. 그녀가 세탁기에 빨래를 넣었다. 그녀가 내 빨래를 해준다는 사실에 안정감과 동시에 외로움을 느꼈다.

그녀가 만들어준 커피를 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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