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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링 Jul 16. 2023

뉴욕에서 생긴 일

뉴욕에 간 초등교사



  뉴욕에 있을 때 사람들은 자연스레 물어 왔다. 넌 뉴욕에 왜 왔어?





  많은 사람들이 해외 생활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산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완전한 타지에서의 독립생활이라니! 뭔가 재밌고 흥미진진한 일들이 계속 펼쳐질 것 같지만 인생은 실전이라는 것쯤은 잘 알았다. 그래서 내가 그런 환경에서 잘 견딜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고, 기다린 끝에 지금이 바로 그 순간이라는 확신이 들 때쯤 휴직을 하고 뉴욕으로 갔다.





  왜 하필 뉴욕이었는진 나도 모르겠다. 방학마다 해외를 나갔지만 미국은 늘 선택지 밖이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도 뉴욕이라는 도시에도 아무 관심도 환상도 없었다. 그런데 계획을 세우다 보니 기왕 갈 거면 세상에서 제일 좋은 도시에 가 보자 싶었나 보다. 지금 돌아보면 아주 잘한 짓이다. 배운 게 많았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는

서울보다 사람도 많고

쌀쌀하고 삭막하고 생존하기 어려울 것 같았지만


뉴욕은 어딜 가든 서울보다 한산했고,

뉴욕의 사람들은 생각보다 따뜻했다.





  뉴욕에서 나는 남들 눈에 잘 띄지 않았다.


  생긴 건 멀쩡해도 생각이나 가치관이 평범하질 못하고 튀어서 한국 사람들은 날 어려워하고 이해하기 힘들어하는데, 뉴욕의 급진적이고 개방적인 사람들 사이에 섞여 있으면 나는 겉으로나 속으로나 참으로 평범하고 무난한 사람이었다. 연고 하나 없는 타국에서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했다.





  한국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몰랐던 것들을 생각해 볼 기회도 많았다.


  뉴욕에서 나는 아시안 여성이라는 소수자 카테고리에 속했다. 다행히 적대적이고 고의적인 인종 차별을 당해본 적은 없다. 그래도 매일 자격지심이나 죄의식에 휩싸이지 않도록 의식적으로 노력하며 생활해야 했다. 아주 작은 불이익에도 나를 탓하는 일이 없도록 말이다. 미국 사람들이 왜 같은 문화권이나 인종끼리 모여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지 이해가 갔다.


  자연스레 평소 무관심했던 흑인들의 삶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다. 뉴욕에서 목격한 흑인과 백인의 삶은 대체로 무척 달랐다. 한국에서 편히 배우고 부족함 없이 자라온 나는 세상 사람들이 흑인음악을 즐겨 들으니 인종 차별도 그만큼 사그라들지 않았는가 생각하는 멍청이였다. 미국에서 흑인들이 견뎌내는 기회의 불균등은 잠시 스쳐 다녀가던 나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다. 나의 무지함을 반성했다.





  사람의 소중함도 배웠다.


  운이 좋게도 뉴욕에 가자마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사귀어서 외로움 없이 잘 지냈다. 낯선 곳에서 돈보다도 절실한 건 사람의 온기와 의미 있는 대화다. 혼자만의 시간과 공간도 중요하지만 누군가와 함께 나누는 시간과 공간도 그만큼 중요하다. 손 뻗으면 닿는 거리에 가족과 친구를 두고 배부르게 살 땐 잘 몰랐다.





  내 둥지를 틀어 독립생활을 해 본 경험도 내겐 꼭 필요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나는 아직도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다. 엄마 아빠랑 같이 살면서 불편할 것도 없는 데다가 아끼는 돈이 많아 독립 계획이 전혀 없었는데, 뉴욕에서 혼자 살아 보니 이제는 진짜 독립을 해서 내 한 몸 내가 건사하며 살아야겠구나 싶다. 부동산 문제가 있어 이런저런 이유로 아직 때를 기다리고 있지만 내년 적당한 시기에 내 집으로 독립해서 나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또 감사하는 법도 배운다.


  한국에 돌아온 직후엔 뉴욕이 그리웠지만 복직을 하고 다시 출퇴근을 하면서 머지않아 한국의 삶에 멀쩡히 잘 적응했다. 나를 사랑하는 가족과 마음이 통하는 친구들을 가까이 두고 볼 수 있는 것도 좋고, 출퇴근을 위해 정해진 시간에 자고 일어나는 규칙적인 삶이 주는 리듬감도 좋고, 아이들이 나의 삶에 불어넣는 활력도 좋고, 내 차를 운전하고 다니는 것도 좋고, 다이빙이나 뜨개 등 내가 즐기던 취미생활을 다시 할 수 있게 된 것도 좋다. 감사할 일 투성이다.





처음으로 돌아가

너는 뉴욕에 왜 왔냐고 물었던 사람들에게

그때는 대답하지 못했던 것을 지금 답할 수 있다면

내가 찾고자 하는 건 영감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열정적인 문화와 사람들로

뉴욕은 살아 숨 쉬는 도시였고

짧다면 짧았고 길다면 길었던 뉴욕생활은

나에게 영감을 주었다.


뉴욕에 처음 도착한 날 불었던

차가운 칼바람을 아직도 가끔 떠올리면서

나의 삶에서 귀하고 소중한 것은 무엇인지,

앞으로 어떤 사람으로 살고 싶은지,

나의 삶을 무엇으로 채우고 싶은지,

어떤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은지 생각한다.





뉴욕을 떠난 지 벌써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

언젠가 다시 만날 뉴욕을 기대하며

어디에 누구와 있든

감사하고 배우고 성장하며 살겠다고 약속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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