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를 쏟은 학생
가끔 출근길에 말도 안 되게 차가 막히는 날이 있다. 어제가 그랬다. 평소보다 10분 일찍 여유롭게 나갔는데도 불구하고 지각을 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배가 아파 땀이 삐질삐질 났다. 그젯 밤에 생각 없이 먹은 생크림빵 때문이었다. 적당히 먹을걸. 어렵사리 학교에 도착해 주차장에 냅다 주차를 하고, 교감이나 교장 눈에 띌세라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교실까지 빠르게 걸었다. 선생님이 자신보다 늦게 도착한 것을 학생들이 의아해하겠지만 서두른 티를 내지 않고 여유롭게 굴면 회의가 있었겠거니 생각하고 말 것이다. 다행히 교실까지 가는 길에 누구도 마주치지 않았고 1교시가 시작하기 전에 도착을 했다. 마음을 가다듬고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 학생들 인사를 받았다. 자연스러웠다.
자리에 앉아서 컴퓨터부터 켜고 실내화를 갈아 신는데 진한 구린내가 코를 찔렀다.
나는 긴장을 하면 발에 땀이 난다. 시간은 늦었지 들키면 안 되지 화장실은 급하지 여러모로 오늘 아침이 힘들긴 했구나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선생님 발 냄새가 이따위라서 미안해...! 학생들의 벌름대는 콧구멍을 필사적으로 모른척했다.
냄새 분자가 공기 중의 수증기와 만나 이분법으로 증식을 하는지 눅눅한 장마철 공기를 타고 점점 냄새가 진해졌다. 수업을 하는 동안 코가 절여져 감각이 마비될 지경이었다. 내 발냄새가 이 정도였다고? 우리 아빠 발냄새도 이 정도는 아닌데. 그렇게 꾸역꾸역 1교시를 마치고 2교시에는 컴퓨터실에 가서 구글 어스로 디지털 지구본을 살펴보고 타자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다시 돌아와 교실로 들어서는 순간- 교실을 가득 채우고 있는 구린 냄새가 코를 강타했다. 순간 이건 내 발냄새가 아니라는 안도감이 들어 마음은 편안해졌다.
지난주 금요일에 사물함에 우유를 터뜨리고 간 학생이 범인이었다. 터진 우유가 책을 적시고 마룻바닥까지 흘러 주말 내내 썩은 치즈가 되어있었다. 선생님과 친구들 눈치를 보는 범인의 얼굴이 회색빛이었다. 당황하고 미안한 마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1교시가 끝날 때까지 속으로 끙끙 앓았던 모양이다. 물티슈와 알코올을 챙겨 주며 닦는 법을 알려주었더니 범인은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혼신을 다해 굳은 우유를 열심히 닦았다. 젖은 책까지 버리고 나자 한결 숨쉬기가 편해졌다. 풀이 잔뜩 죽어 있던 학생 얼굴에 그제야 생기가 돌았다.
그동안 약간의 볼멘소리를 낸 학생도 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른 척하며 친구의 실수를 눈감아 주었다. 나는 친구 마음을 배려해서 불편함도 참고 표현하지 않은 학생들을 칭찬했고, 범인에게는 다음부터 조금 더 빠른 대처를 하도록 격려했다. 선생님 발냄새인 줄 알았는데 우유라서 다행이라고 넝~담을 하니 다들 좋다고 까르르 웃었다.
별 것 아닌 일에서 함께 무언가 배운 소중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