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차 초등교사가 쓰는
나는 나의 20대를 학교에 바쳤다.
돌아보면 나의 직업은 시답잖은 농담거리가 되기 일쑤였다. '저게 선생님이라고?'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선 선생님은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성직자보다 더하다는 걸 누구보다도 가까운 내 지인들이 일깨워주곤 했다. 또 직업 이야기가 나오면 뜬금없이 '나는 시켜 줘도 못 한다'라며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는 사람들도 굉장히 많았다. 너는 대단한 일을 한다는 겉치레 뒤에 숨어 은근하게 깎아내리는 의도가 다분한 말들을 사람들은 스스럼없이 뱉었다.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서 교사로서 자부심을 지키고 영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교사로 일하는 7년간 누구보다 행복했으며 교사인 내가 자랑스러웠다.
나는 만 스물 셋에 교사가 됐다. 교사가 되기 전까지의 나는 정체성, 자아 효능감, 자존감 같은 게 많이 부족한 사람이었다. 불안정하고 또 불완전했다. 나는 스스로를 전혀 몰랐다. 그런 내가 교사가 되고 한 교실을 떠맡게 되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하나의 작은 사회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나는 그 사회를 끊임없이 돌보고 손보고 가르치는 일들을 해내야 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나 자신에게도 조금씩 뼈와 살이 붙어갔다. 아이들과 부대끼다보면 나도 조금씩 나은 사람이 되어갔다.
감사하게도 그 모든 과정에 아이들과 학부모의 무한한 신뢰와 애정이 있었다. 교사의 권위가 바닥에 추락해 온 나라가 들썩이고 있는 요즘 세태를 생각하면 참 운이 좋았다. 내가 잘해서가 아니라 운이 좋아서였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조금은 씁쓸하지만, 어쨌든 감사할 일이다.
아이들을 가르치며 얻는 행복 외에도 교사의 큰 장점은 돈과 시간을 함께 번다는 데에 있다. 나는 저녁이 있는 삶을 넘어 오후가 있는 삶을 살았고 방학이 있는 직장인의 삶을 살았다. 가 보고 싶은 곳은 다 가 보았고,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해 보았다. 누구보다 외국에 오래 있었고 취미생활도 많이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시간은 곧 돈과 마찬가지다. 시간은 학교가 나에게 줄 수 있었던 최고의 보상이었다.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면서 나를 알아갈 기회를 얻을수록 나는 조금 더 단단한 사람이 되어갔다.
나는 나의 20대를 학교에 바쳤다. 그리고 그럴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어떤 일을 하든 배움은 있었겠지만, 학교에서 일하면서 나는 무채색이었던 나 자신에게 색깔을 입혀갈 수 있었다. 내가 그토록 갈구하던 마음의 여유를 찾았다. 학교라서 가능했다. 나는 20대에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루었다.
지금은 30대에 내가 이루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하고 있다. 20대처럼 얼레벌레 잘 굴러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만 다가오는 30대는 뚜렷한 목표의식을 갖고 살아 보고 싶다. 치앙마이에서 새해를 맞으며 스스로와 다짐했던 것처럼, 어떤 위험이 따르더라도 올해는 꼭 나를 위한 새로운 도전을 해볼 생각이다.
덧붙여, 많은 교사가 나처럼 행복하기를 바란다.
모든 교사에게 학교가 안전한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교사가 행복해야 학생이 행복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