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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Mar 08. 2022

베토벤은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을까? (3)

들리지 않는 음악가가 사랑한 불멸의 여인

청년 베토벤은 자신의 전성기가 점점 다가오는 동시에 점점 청력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들리지 않는 귀를 원망하며 동생들에게 보낼 유서도 완성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베토벤은 자신의 삶을 지속하기로 마음먹었고, 이 다짐은 청년기보다 더 큰 전성기를 안겨준다.


이러한 변화는 곡의 규모와 편성에서도 볼 수 있다. 실제로 청년기에는 작은 편성의 실내악 위주의 주로 작품을 남겼다면, 귀가 들리지 않은 이후로 더 큰 편성의 교향곡을 더 많이 남겼다.


몇몇 이론가들은 그가 음악 사조 중 고전을 마무리하고 낭만을 여는데 이 ‘들리지 않는 귀’가 영향을 끼쳤다고도 한다. 비록 자신의 작품이 연주되는 것을 듣지 못했지만 그만큼 다른 작곡가들의 영향을 받지 못하고, 유행에 따라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독창적인 음악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베토벤 연구자인 로빈 월리스는 이에 대해 ‘청력 장애에도 불구하고 나온 것이 아니라, 청각 장애 덕분에 나왔다.’고 표현한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인정하기 어렵지만 이러한 성격은 유년시절부터 괴롭힌 그의 아버지 덕분이었다. 그때부터 피어난 반골적인 기질과 고집 덕분에 난청을 이겨낼 수 있었다. 그의 고집이 얼마나 대단하냐면, 귀가 들리지 않아도 음마다 가진 진동의 폭과 크기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던 베토벤은 일부러 큰 소리를 내는 피아노를 주문 제작하여 피아노의 소리를 듣지 않고 피아노 안쪽 현(실)의 진동을 직접 몸으로 느껴 음을 구분했다.


베토벤은 그렇게 음악을 계속했다.


자, 그러면 이토록 고집스러운 음악가가 사랑한 불멸의 연인을 드디어 공개한다.


일단 이 ‘불멸의 연인’은 베토벤의 죽음 이후 베토벤의 비서가 서랍장에서 수취인 불명의 보내지 못한 세 편지를 찾아내면서 시작된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40살에 18살한테도 청혼한 베토벤이 보내지 못할 편지는 대체 왜 쓴 것일까?)


이론가들은 다양한 불멸의 연인 후보(?)들을 내놓았지만 편지 속 내용과 편지의 시기, 만남의 장소를 고려하였을 때 현재 가장 유력한 것은 '안토니 브렌타노'이다. 실제로 베토벤은 그녀에게 '디아벨리 변주곡'을 헌정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그녀의 딸에게도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헌정했다.

아 그래서, 편지는 왜 못 보냈냐고?

*안토니 브렌타노의 초상. 정성스럽고 미화해서 그렸다고 해도 여기까지 그녀의 아름다움과 청순함이 느껴진다. 전편에 설명했듯이 베토벤은 기존 체제에 굉장히 저항적이고 반발적인 사람이었으나, 이는 결국 가지지 못한 계급과 그에 대한 한계에 무의식적으로 갈망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그가 원하는 여성상은 굉장히 고급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귀족이었다. 실제로 베토벤은 죽을 때까지 그녀의 초상화를 간직했다.


그녀는 유부녀였다.

그렇다, 편지를 보내지 못한 이유는 그들의 사이가 불륜이었기 때문! (두둥!)

나의 천사, 나의 모든 것, 나 자신이여, 왜 이렇게 슬픈 거요? 우리의 사랑은 희생을 감내하고 서로에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야만 성립되는 것인가요? 우리의 마음이 늘 굳게 하나로 맺어져 있다면 굳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좋으련만……. 당신에게 하고 싶은 말이 가슴에 가득하다오.


누가 보아도 절절한 글이다.


갑자기 다른 곳으로 훌쩍 얘기를 옮겼다가 다시 이 ‘불멸의 연인’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두 사건을 신랄하게 비교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베토벤은 말년에 조카 카를에게 집착했다.


아마 베토벤은 조카가 자신의 유일한 혈육이라는 데에 집착했던 것 같다. 동생이 죽은 뒤에 유언으로 아내이자 아이의 어머니인 요한나와 베토벤을 후견인으로 지목했지만, 이 둘은 이미 사이가 좋지 않았다. 싸움은 2년 동안 지속되면서 베토벤과 요한나는 서로를 물고 뜯었다. 결국 조카 카를이 권총으로 자살을 시도하고, 이를 들은 베토벤과 요한나가 한 발짝씩 물러난 뒤에야 조용해졌다.


이후 베토벤의 말년을 설명하며 조카 카를과 요한나와의 관계에 대해서 더 설명하겠지만, 아이의 엄마에게서도 자식을 떼어놓으려던 이 사건과 ‘불멸의 연인’을 비교해보면 안토니 앞에서는 얼마나 순하디 순한 양 한 마리였는지 짐작하게 된다.


안토니 브렌타노의 아버지는 오스트리아의 유명한 정치가였다. 그래서 당시의 혼인문화가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녀의 결혼 역시 사랑의 감정보다는 아버지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집안의 교류, 교환에 가까웠다. 겨우 18살에 15살 많은 상인에게 팔려가듯이 결혼한 그녀의 삶이 사랑으로 가득하였었다고 보긴 어려울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32살이 되던 해,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빈으로 돌아온 안토니는 베토벤을 만나게 된다.


사랑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결혼 생활과 아버지의 임종 앞에 그녀의 슬픔을 달래준 사람은 베토벤이었다. 그녀 역시 베토벤과 같은 낭만적 기질이 넘쳐나는 사람이었나 보다. 하지만 베토벤은 그녀의 행복을 바랐고, 이미 가정이 있는 그녀의 행복을 깨고 싶지 않아 했다. 실제로 안토니의 남편은 가정에 충실한 편이었다. 심지어 안토니가 베토벤의 음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베토벤에게 선뜻 거액을 빌려주었고, 빚에 대해 독촉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보내지 못한 편지에는 넘쳐나는 사랑과 함께 이별에 대한 아픔이 가득하다.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이미 당신에 대한 그리움이 밀려오고 있소. 내 불멸의 연인이여. 운명이 우리의 소원을 들어줄 것을 바라면서 나는 때로는 기쁘고 때로는 슬프다오. 당신과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아가게 될는지.


당신의 품에 안겨 내 영혼을 정령의 나라로 보낼 수 있을 때까지 나는 방황하기로 결심했소. 아아, 슬프지만 그럴 수밖에 없으니 어쩌겠소. 사랑하는 사람들이 왜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것인지.


지금까지 베토벤의 괴팍함과 그 반골적인 기질에 대해서는 비호감을 느꼈지만, 이 ‘불멸의 여인’만큼은 나도 마음이 너무 아프다. 차라리 조카 카를처럼 2년 동안 재판을 끌었으면 또 모를까. 베토벤은 진정으로 안토니를 위한 선택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고, 그 선택에 자신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서로 사랑을 키울 수밖에 없었다.


사랑을 하다 보면 상대에게 가장 좋은 선택이 나에게도 가장 좋은 선택일 수 없는 순간이 온다. 하지만 베토벤처럼 상대를 사랑하기에 떠나보내야 하는 사랑이야말로, 역설적이게도 나보다 상대방을 우선시한 가장 진정한 사랑이 아닐까.


기록으로 남은 베토벤의 사랑 이야기는 여기까지이다.


또한 낭만적인 베토벤도 여기까지이고, 다음에는 또다시 이 괴팍한 작곡가의 말년에 대한 얘기로 돌아올 예정이다.

심지어는 난청도 더 심해졌다!


얼마나 주변인들을 괴롭혔을지는 다음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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