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볼일이 있어서 나갔다가 들어오는 길이었다. 겨울이어서 5시만 넘으면 해가 떨어지는 지라 벌써 사위가 어둠에 깔리기 시작했다. 낮에 잠시 따뜻하다 싶었던 공기도 저녁이 되자 쌩하고 돌변하여 엄청 추워졌다. 지하철에서 내려 집으로 향하는 길바닥엔 마지막 떨어진 낙엽이 한두 잎 뒹굴고 있었고 거리의 사람들은 옷깃을 여미고 고개를 숙인 채 종종걸음을 치고 있었다. 이른 점심을 먹은 탓인지 배도 고프고 내 두 다리는 아침에 집을 나설 때의 가벼운 기운은 사라지고 겨우 내 몸을 지탱하며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횡단보도 건너기 전 공터 한쪽 구석에서 반가운 불빛, 익숙한 냄새가 나를 붙들었다. 붕어빵 포차! 와우, 나는 너무 반가워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붕어빵의 계절이 돌아왔구나.”
차가워진 손을 비비며 나는 잰걸음으로 붕어빵 포차로 다가갔다. 다섯 명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맛있다고 소문이 난 모양이었다. 나도 얼른 기다리는 줄에 합류하였다.
붕어빵 기계는 언제 봐도 신기했다.
빵 구이 틀을 빙빙 돌려가며 붕어빵을 굽는 아주머니는 붕어빵이 잘 구워지기까지의 시간을 어쩜 저렇게 정확하게 가늠하는 걸까? 기계적인 손놀림은 리듬을 타듯 일정한 속도로 붕어빵을 툭툭 탄생시켰다. 빵틀에 밀가루 반죽을 붓는다. 이어서 팥 소와 슈크림을 듬뿍 집어넣고 뚜껑을 닫는다. 곧이어 반대편 틀을 빙 돌려와서 뚜껑을 열면 동그랗게 부푼, 노르스름하게 알맞게 구워진 붕어빵이 짠하고 등장한다. 입안에 살짝 침마저 고이는 듯하였다. 그러는 사이사이에 주문받은 붕어빵을 봉지에 넣어 건네주고 또 비어진 빵틀에 가볍게 기름칠을 하고.. 그 연속된 동작이 마치 붕어빵이 기계로 자동 생산되는 것처럼 보였다. 기다리는 동안 내내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붕어빵 가격은 3개에 이천 원. 슈크림 빵은 한 개에 천 원. 작년보다 좀 올랐다. 뭐, 요즘 안 오른 게 없으니.. 하며 나는 팥빵 3개와 슈크림 2개 해서 4천 원어치를 샀다. 봉지에 5개의 붕어빵을 담고 눅눅해질까 봐 봉지를 연 채 걸음을 재촉했다. 걸어가면서 한 마리 순삭 하는 것은 당연한 일. 아, 이 맛이야. 나는 연신 고개를 주억거리며 머리부터 한 입 천천히 베어 물었다. 슈크림이 가장 많이 들어있는 붕어의 볼록한 배 부분을 아작, 하고 베어 물면 적당히 달고 촉촉한 슈크림이 입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그 순간의 기분이란 좀 과장하면 눈물이 날 만큼 행복한 거, 그런 거였다.
처음 한 마리를 먹기 시작할 때는 이제 집에 가면 저녁을 먹어야 하니 하나만 먹어야지. 그리고 뭐 어쨌든 탄수화물 덩어리잖아? 하며 나는 나름 건강한 섭생을 실천하고 있는 나임을 의식하며 맛나게 우물거렸다.
그러나 웬걸, 그런 다짐은 죄책감 일도 없이 바람처럼 날아가고 나는 연달아 붕어빵 2개째를 베어 물고 있었다. 두 번째는 달고 익숙한 맛인 팥빵이었다. 팥빵은 오래전부터 내가 좋아하던 맛이다.
스테디셀러다.
아파트 입구에 다다랐을 때 경비 아저씨가 보였다. 들고 있던 붕어빵 중에 한 마리는 당연히 아저씨 몫이 되었다. 붕어빵 한 마리, 그게 뭐라고 아저씨는 감사하다며 역시나 달게 받아먹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붕어빵을 좋아하는 걸까?
그러고 보니 우리가 사는 동안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이 주위에 너무 많은데 붕어빵은 생명이 정말 긴 것 같다. 맛과 영양이 뛰어난 진기한 먹거리들이 얼마나 많은 세상인가? 그런데 아직도 붕어빵은 인기가 여전하니 말이다. 학창 시절, 학교 근처나 동네 마을 어귀의 붕어빵 포차, 좀 시간이 지나면서 군고구마, 호떡과 함께 붕어빵은 늘 겨울철 우리들의 정겨운 간식거리였고 질리지 않은 기억의 한 조각이 되었다.
그 시절, 길을 가다가 친구랑 사서 나눠 먹던 붕어빵. 남편이랑 연애 시절, 길거리 데이트를 하다가 사 먹던 붕어빵. 아이들 어릴 때 퇴근길에 봉지 가득 사 들고 들어가던 붕어빵. 그 많은 붕어빵들이 떠오른다.
언젠가의 장면도 떠오른다. 초임 교사 시절 나의 일터였던 학교에서 교장 선생님이란 사람은 나에게는 너무 어렵고 크게만 느껴지던 존재였다. 바로 그 우리 학교 교장 선생님, 퇴근길에 우연히 맞닥뜨린 그녀는 길거리 붕어빵 포차 앞에서 붕어빵을 맛있게 먹고 있는 게 아닌가? 지나가던 나를 보더니 불러 세우고는 붕어빵 하나를 건넸다. 학교 안에서 그렇게 꼿꼿하고 빈틈없는 어른이던 사람이 붕어빵을 손에 들고 아이처럼 웃고 있던 모습이라니... 그 순간 그 근엄하기만 하던 교장 선생님은 온데간데없고 그냥 마음씨 좋은 동네 아줌마가 내 앞에서 작은 붕어빵을 맛있게 우물거리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길거리에서 붕어빵을 사 먹던 그 교장 선생님이 좀 멋있긴 하다.
모든 사람이 사랑하는 붕어빵.
2개에 천 원 하던 것이 3개에 이천 원으로 올랐다고는 하나 일단 가격이 저렴하다. 돈이라는 값으로, 그 무게로 갑질하지 않는 음식. 너무 비싸서 먹을 생각, 접근조차 못 하게 하는 고급 요리나 음식이 아니다. 그리고 누구랑 같이 나눠 먹기도 좋게 크기도 부담스럽지 않고 모양도 귀엽다. 단돈 몇천 원이지만 누구에겐가 무언가 가득 건네줄 수 있다.
싸웠던 친구에게 은근슬쩍 내밀며 화해를 시도해 보기에도 유용하다. 부부싸움을 한 다음 날 남편은 붕어빵 한 봉지 가득 사 와서 나에게 안겨주었다. 꿀꿀하게 남아 있던 내 감정이 붕어빵의 부드러운 속살거림에 스르르 녹았음은 물론이다.
붕어빵 포차는 넓은 공간을 차지하지도 않는다. 동네 귀퉁이에 다소곳이 서서 길 가는 우리에게 웃으며 손짓한다. 그 손짓에 홀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초등생 줄 서듯 올망졸망 그 앞에 줄을 선다.
붕어빵.
거대하지 않은, 그러나 따뜻한 온기와 순한 냄새를 품은 그 작은 몸은 우리에게 때로는 손에 잡힐 듯한확실한 행복감을 준다.
그 녀석은 무엇보다 우리에게 큰소리치지 않는다. 윽박지르지 않는다. 그 소소함으로, 그 소박함으로 우리를 숨 쉬게 한다. 오래된 친구처럼, 가족처럼 그 한결같은 변함없음이 우리를 위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