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에서 만난 사람들
지금은 팬카페 <은한철도 999>에 일정을 올리지만 예전에는 모두가 볼 수 있는 인스타그램에 일정을 올리곤 했다. 일정은 듬성듬성했고, 보고 찾아오는 이도 거의 없었다.
청계천 광교에서 연주한 날이었다. 인적이 그리 많지 않아 앰프도 없이 커다란 돌 위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은 흰 새처럼 잠시 보다가 떠나고, 이른 오후 선선한 가을바람과 청계천 물소리만 오래 곁에 있었다. 마음을 비우고 눈을 감고 가을에 어울리는 곡들을 연주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즐기는 풍류다.
문득 눈을 떴다. 중년 남성과 그 아들인 듯한 분이 서서 연주를 듣고 있었다. 통행에 방해되지 않게 약간 멀리에서, 그러나 서로 대화도 하지 않고 매우 집중해서 듣고 있었다. 해금 소리가 두 분의 귀에 오롯이 빨려 들어가는 것을 느낄 정도였다. 순간 우리는 스치는 사람들 속, 붙박이가 되어 우리만의 음악회를 열었다.
연주를 마쳤다. 두 분이 다가와 작은 선물을 건넸다. 감사한 마음을 다 담지 못했다고 하셨다. 아니 내가 감사해야 하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아드님이 말을 이어갔다. 바이올린을 하는 학생인데, 한동안 깊은 슬럼프와 우울감으로 바이올린을 보기도 힘들었고, 결국 방 밖으로 나가는 것도 두려워졌다고 한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로 나를 보았다. 행복하게 연주하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싶어졌고, 방 밖으로 나갈 힘도 얻었다고 한다. 아버지께 나를 꼭 만나고 싶다고 해서 일부러 기차를 타고 여기에 오셨단다. 서울 지리에 익숙지 않아 온 청계천을 다 뒤졌고, 중간부터 듣게 되어 너무 아쉬웠다고. 하지만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하셨다.
어떤 일이 생길지 예측할 수 없는 거리공연이지만, 이런 감사한 분들을 마주하는 건 생각지 못한 축복이다. 나의 작은 해금소리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