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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한 Jan 20. 2024

'거리공연자'라는 직업에 대하여

풍각쟁이 아닙니다 아니 맞습니다

 사람은 만나면 보통 직업을 묻는다. 나이나 출신 대학 등보다 부드럽게 느껴지고, 상대의 많은 것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 위험하지 않은 질문을 ‘직업’이라고 여기는 모양이다. 그러나 내게는 가장 위험한 질문이다. 상대의 가벼운 질문을 무겁게 받아쳐야 한다.


“어떤 일 하세요?”

“연주잡니다.”

“오.. 어떤 악기 하세요?”

“어.. 해금이요.”

해금?? 우와  해금소리 엄청 좋아해요! 구슬프고 마음을 울리잖아요.”

“(내 트로트 연주를 들으면 까무러치시겠군) 아..네, 맞아요!”

“그러면 어디 소속이에요? 국립국악원에 계세요?”

“(국립국악원에 계시는 분들은 구름 타고 출퇴근 하신다고  정도로 엄청난 건데..)  아니요.”

“그럼 어디 소속이에요?”

“프리랜서예요.”

“오 그럼 팀이 있으신가요?”

“어.. 팀은 없고 그냥 혼자 다녀요.”

“(상대는 대부분 여기에서부터 시들해지기 시작한다)그게 가능해요?? 어디에서 공연하시는데요?”

보통 거리공연을 합니다.”

“(여기서 완전히 실망한다)? 그걸로 먹고살  있어요?”

“(훌륭하게 맞는 말이지만 거리공연자도 어떻게든 먹고 살아요.)  . .. 그쪽은 어떤  하세요?(허둥지둥)”      

 이런 식으로 혼자서만 탈탈 털리고 나는 만신창이가 된다. 상대에게 악의가 없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매우 피곤해진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조금 민망하다.

 

  직업을   그럴싸하게 꾸며 말해야겠다는 다짐을  계기가 있다.  남자친구의  댁 인사갔을 때의 일이다. 보이고 싶어 커다란 꽃다발도 사고 쌀케이크도 주문 제작해서 들고 갔다. 형과 형의 아내(만일 혼인하면 이분이 나의 형님이 되시겠지) 반가이 맞아주셨다. 저녁과 케이크를 먹은  남자들끼리는 잠시 어디 가고, 나와 아내분이 남았다. 이분이 다정히 물어보셨다.


“해금을 켠다고 들었는데, 그럼 국립국악원 같은 곳에 계세요?”

아... 남자친구가 아무 말도 안 해두었구나. 그럼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지.

“아아 네, 그건 아니고 프리랜서예요.”

“그럼 어디에서 연주하세요?”

그때부터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주로 거리공연을 해요.”


 그분의 낯빛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나는 당황해서 아무 말이나 지껄였다. 거리공연을 하지만 이게 오디션을 봐서 합격해야 연주할 수 있고 돈은 열심히 벌고 있으며 나름 인기도 많다고. 눈물이 핑 돌았지만 말하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분은 아아 네.. 하시고선 어머 내 정신 좀 봐 뭘 해야 하는데 하며 일어섰다. 곧 해맑은 표정의 전 남자친구가 돌아왔고 난 그 집을 나서자마자 눈물을 콸콸 쏟았다. 미리 내 직업을 설명하지 않은 전 남자친구가 미웠고 이런 직업을 가진 내가 미웠다.      


 이제는 누가 직업을 물어보면 이렇게 말한다. “문화재단에 소속되어서 사람들 많이 다니는 공원이나 문화소외지역으로 파견되어서 연주하고요, 공연비는 문화재단에서 받아요.”라고. 좀 그럴싸해 보이면서 딱히 거짓말도 아니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돈에 대한 궁금증도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다. 거리공연자도 단박에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이 되었으면 하지만, 아마 꽤나 요원한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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