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편지한줄 Oct 25. 2023

사랑하는 막냇동생 동환이에게

일반부 동상 - 임세린

안녕, 동환아. 누나야.

요즘 날씨가 참 덥지? 여름 내내 비가 올 거라던 예보가 무색할 만큼 햇볕이 강하게 내리쬐는 날들의 연속이야.

그러고 보니 네가 태어난 날도 꼭 이렇게 더운 여름날이었지.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하늘에 해는 쨍쨍하고 진한 녹빛으로 물든 나무에 붙은 매미들이 맴맴 울어대던, 어느 한여름날.그날은 원래 아주 평범한 하루였어.

학교에 가서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수업 시간에 꾸벅꾸벅 졸기도 하던 그런 일상적인 날 말이야.

그런데 학교를 마치고 나니 동생이 태어났다고 얼른 병원으로 오라는 거야. 설렘, 낯섦, 기대, 복잡함이 한데 섞인 묘한 감정으로 널 보러 갔지.

세상 밖으로 갓 나온 아기를 보는 일은 누구에게나 경이로운 경험일 거야.

누나에게도 마찬가지였어.

넌 생각보다 아주아주 작아서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어.

퉁퉁 불은 요 조그마한 아기가 우리 가족의 구성원이 되다니.

숫자는 하나 늘어났을 뿐이지만 행복은 수만 배 더해졌어.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던 누나에게 네 존재는 그 자체로 커다란 기쁨이었어.

학교 마치면 누구보다 먼저 교문을 나서서 집으로 달려왔지.

아침에도 한참을 들여다봤는데도 네가 또 보고 싶어서 말이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누나의 새끼손가락을 겨우 집을 만큼, 손수건 한 장을 이불로 할 만큼, 넌 작고 소중한 존재였단다.

가만히 누워 꼼지락거리기만 하던 네가 뒤집기를 하고 온 집안을 배로 밀며 기어다니고 아장 걸음마를 시작했던 그 모든 마법 같은 순간이 지나고 어느새 너는 "엄마", "아빠"에 이어 "누나"라는 단어도 말할 수 있게 됐지.

그렇게 너는 아기에서 어린이가 되었어.

네가 꼬꼬마이던 시절, 누나 졸업 사진 찍는데 따라왔던 거 기억나니?

뽀얗고, 도독하게 오른 볼살로 넌 누나 친구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했었지.

누나 사진 찍는 동안 다들 널 돌봐주겠다고 성화였어.

누나들에게 둘러싸여 기분 좋은지 넌 연신 방긋거리며 낯도 가리지 않고 누구에게나 가서 안겼지.

너는 누나랑 산책하러 나가는 걸 그렇게 좋아했지.

주말마다 누나는 작은 네 손을 꼭 잡고 이곳저곳 나다녔어.

그래봤자 우리 동네가 전부였지만 말이야.

우리의 또 다른 산책 동무는 어느 생일엔가 내가 사준 강아지 인형이었지.

너는 항상 인형을 품에 안은 채로 밥도 먹고 놀이터도 가고 아이스크림도 먹고 도서관도 가고 골목골목 탐험도 했어.

그중 우리가 자주 갔던 두꺼비 생태 체험관 기억나니? 집에서 나와 실개천을 따라 걷다 보면 나오던 곳 말이야.

그곳에는 다양한 종류의 개구리와 두꺼비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지.

이름이 쓰인 버튼을 누르면 종마다 울음소리도 들을 수 있었어.

그런데 항상 황소개구리 버튼을 누를 때마다 넌 울음을 터뜨리곤 했지.

우르릉거리는 울음소리가 어린아이인 너에겐 무서웠나 봐.

어느덧 너는 어린이에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고, 누나도 대학교에 가게 되어 우리가 같이 보내는 시간은 적어졌어.

그래도 방학만큼은 즐거운 시간을 많이 보내곤 했지.

여름 방학 때 누나랑 같이 강아지 카페에 갔던 거 기억 나?

개에게 가까이 다가가 쓰다듬고 안아본 적은 처음이라 낯설어하면서도 좋아했잖아.

그 이후로 넌 방학 때마다 계속 누나한테 가자고 졸라댔지.

어느 겨울방학엔 네가 하는 핸드폰 게임에 누나도 빠져버려서 하루 종일 같이 게임도 했었지.

나는 'QUEEN', 너는 'QUEEN 동생'이라는 별명으로 우린 이차원의 전쟁터를 마구 누비고 다녔어.

물론 우리가 제일 잘하는 건 불나방처럼 싸움판 한가운데 뛰어들어 바로 탈락하는 거였지만 말이야. 하하.

언제까지나 어린애로 남아있을 것만 같던 네가 벌써 11살이 되었네.

요즘 넌 너무 훌쩍 커버려 가끔은 날 놀라게 해.

저번에 햄버거 먹고 싶다고 하길래 누나는 기프티콘 보내주면서 네가 마냥 좋아할 줄 알았더니, 넌 "누나. 나 너무 누나한테 기대는 거 같아. 다음부터 이런 거 주지 마."라고 했었지.

세상에... 애기가 그런 말도 할 줄 알다니.

아니, 사실은 이제 더 이상 아기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겠지.

아이들의 시간은 항상 어른보다 빨라.

너는 계속 이렇게 금방금방 자라나겠지.

사랑스럽고 천진한 아이의 모습은 점점 지워지고 그 자리를 다른 모습들이 채워가겠지.

그것은 어른으로 향하는 길에서 맞이해야 할 다양한 도전과 성장의 순간들일 거야.

네 누나와 형이 그랬듯 너도 네 나름대로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하고 그 나이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과 아픔을 모두 경험해 나가며 어느 순간 어른이 되겠지.

그렇게 지나가다 힘들면 언제든 누나에게 기대도 돼.

동환아, 우리 집의 귀염둥이 막내로 찾아와 줘서 고마워.

초등학교 4학년이라 머리도 좀 컸는데 여전히 여자친구보다 누나가 더 좋다고 해줘서 고마워.

가족 중에 누가 제일 좋냐 물으면 항상 누나라 대답해 줘서 고마워.

그러니까... 이제 적당히 까불거려 말 좀 잘 듣자? 하하!

이 개구쟁이야, 앞으로도 우리 집 행복한 막내둥이로 만들어 줄게. 사랑해.


동환이를 아끼고 사랑하는 누나 씀 

이전 18화 구두쇠 남편에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