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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리 May 10. 2022

ep.07 서울을 걸어야 하는 이유

2022.04.24 북악산 탐방로, 05.01 서울숲•남산길

서울은 걷기 좋은 길이 많다. 북악산 탐방로와 서울숲남산길도 추천할 만한 트래킹 코스  하나다.


북악산 남측 탐방로 초입에서 받은 출입증과 숙정문.

54년 만에 개방한 북악산 남측 탐방로는 삼청공원에서 시작해 청운대, 숙정문을 지나 다시 삼청공원으로 회귀하는 코스다. 경사진 곳이 거의 없고 볏짚이 잘 깔려있어 누구나 거닐기 쉽다.


이날은 운이 좋아 숙정문에서 문화해설사를 만났다. 유교 국가였던 우리나라는 ‘인의예지’의 뜻을 담아 사대문을 만들었는데 숙정문은 ‘지(북대문)’에 해당한다고 한다. 흥인지문(동대문), 돈의문(서대문), 남대문(숭례문)과 달리 사람이 드나들지 않아 길이 나 있지 않고 평소 거의 닫혀있다가 기우제를 지낼 때만 문이 열렸다. 왕이 기우제를 지내면 비는 100% 내렸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재밌었다. 제사 준비와 제사를 반복하며 한 달 동안 길게 지내는 만큼 비가 오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숙정문의 현판이 박정희의 친필이라는 것도 이날 처음 알았다.


서울숲•남산길을 걸으며 만난 한강과 신호등 옆 안내 표지판

서울숲•남산길에서는 다채로운 서울 풍경을 만날 수 있었다. 남산에서 시작해 매봉산, 응봉근린공원, 대현산, 응봉산, 서울숲으로 끝나는 약 8.4km의 코스로 제주 올레길과 흡사했다. 오름과 마을, 바닷가를 걷는 제주 올레길처럼 길도 풍경도 바뀌어 지루할 틈이 없었다. 숲을 걷다가 주택가를 통과하면 한강이 나오고 한강대교를 건너면 서울숲이다. 매봉산과 응봉산 팔각정에서 보는 한강뷰는 늘 그렇듯 멋졌고 나무계단과 정자, 신호등 옆 등 곳곳에 붙은 안내 표지판을 찾는 것도 보물 찾기를 하는 것만 같았다.


서울에 올라온 지 10년이 넘었다. 이사를 다니며 동과 서에서 모두 살아봤고 익숙한 동네들도 많은데 북악산 탐방로나 서울숲•남산길에서 만난 서울은 새로웠다. 지하철과 버스로 역과 역을 빠르게 이동하며 놓쳤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서울을 걸었기 때문에 만날 수 있었다.


가장 특별했던 여행을 꼽자면, 제주에서 매일 한 마을을 정해 정처 없이 떠돌았던 여행이 떠오른다. 제주에 집이 생긴 후로 수없이 제주에 갔지만 그날 제주를 걸으며 ‘관광지 제주’가 아닌 사람이 사는 ‘진짜 제주’를 봤다.


서울도 마찬가지다. 걸어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걸어야 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어차피 빠르게 흘러가는 이 서울 도심에서 나 하나쯤은, 한 번쯤은 느리게 걸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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