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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소리 Sep 12. 2022

ep.11 태풍에 맞서는 법

2022.08.01 내변산

하필 여름휴가 첫날부터 태풍 송다가 북상했다. 변산반도에 가까워질수록 비바람은 거셌다. ‘첫날 산, 이튿날 바다’로 일정을 짰지만 첫날부터 계획은 틀어졌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무리 초록창에 날씨를 검색해봐도 비 예보는 바뀌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마지막 날까지 등산은 어려워 보였다.


반 포기 심정으로 하루를 보내고 맞은 이튿날, 친구는 이른 아침부터 지금 산에 가야 한다고 재촉했다. 내가 자는 사이 초록창보다 더 믿음직스럽다는 노르웨이 기상청을 포함해 여러 사이트를 뒤졌는데 비 예보가 사라졌다고 했다. 오후부터 다시 비가 온다는 친구의 말에 서둘러 준비하고 내변산으로 항했다. 해가 고개를 내미는 잠깐의 시간을 놓칠 수 없었다.


내변산 능선(오른쪽)과 내소사 전경.

내변산은 전북 부안에 있는 국립공원이다. 관광객들에게는 내변산 안에 있는 사찰, 내소사가 더 유명하다. 내소사에서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면 등산로가 나오고 들머리부터 1시간 정도 오르면 정상이다. 해발 424m, 서울 북한산보다 낮아 초보자도 큰 부담 없이 오를 수 있다.


거짓말처럼 이날 비는 오지 않았다. 마치 처음부터 태풍은 오지 않았던 것처럼, 날이 개 모든 풍경이 선명했다. 서해의 드넓은 갯벌부터 굽이굽이 흐르는 직소폭포의 물줄기, 내소사의 기와지붕까지. 절은 늘 올려다봤기에 산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생경했다. 산길을 걸으며 여러 각도로 보니 같은 절도 다르게 보였다. 절에도 다양한 모습이 있다는 걸 이날 알았다.


올해 여름은 유독 날씨가 변화무쌍했다. 월악산을 가려고 단양으로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가 장마 때문에 취소하고 목적지를 마니산으로 바꿨는데, 장마전선이 당일 북상해 마니산마저 포기한 날도 있었다. 비를 피하려 아무리 꾀를 써도 슈퍼컴퓨터조차 정확히 예측하지 못하는 날씨를 내가 알 순 없었다. 그저 해가 뜰 때까지 ‘잘 시간을 보내는 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태풍 속에 있을 땐 해는 보이지 않는다. 소용돌이가 쓸고 가 와장창 무너진 세상만이 전부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보이지 않을 뿐 사실 해는 늘 뜨고 진다. 태풍이 지나가면 어느 때보다 강렬한 빛을 뿜어낸다. 그러니 지금이 설령 태풍 한가운데일지라도 그리 슬퍼할 필요는 없다.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테니,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 ‘보이지 않는’ 쨍하고 싱그러운 풍경을 떠올리며, 단단히 등산화 끈을 조이고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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