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2.20 북한산 족두리봉·향로봉
오랜만에 혼자 산을 탔다. 친구의 추천으로 가게 된 북한산 족두리봉-향로봉. 길이 낯익다 했더니 2년 전 이맘때 처음으로 북한산에 혼자 갔다 혼쭐났던 코스와 동일한 코스였다.
들머리부터 족두리봉까지는 약 1km로 비교적 짧지만 가파른 암릉이 이어진다. 이름처럼 크고 평평한 ‘마당바위’에서도 발을 떼지 못할 정도로 겁이 많았던 때라 얼마 안 가 '아차' 싶었다. 바위 아래를 내려다보니 머리는 어지럽고 다리는 후들거렸다. 쿵쾅대는 가슴을 몇 번이고 쓸어내렸다.
좀처럼 속도가 나지 않은 내가 안쓰러웠는지 한 아저씨는 자기를 따라오라고 하셨다. 아저씨의 발걸음을 '복사-붙여넣기'하며 간신히 한 걸음씩 내디뎠다. 바위를 지나자 다리가 풀려 평지에서 그대로 넘어졌다. '내려가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2년 만에 간 족두리봉은 '탈 만했다.' 움푹 파인 공간을 찾아 발로 딛고 손으로 잡으며 오르니 어느덧 족두리봉이었다. '위험 구간'이라 적힌 팻말을 지나 기지국이 설치된 꼭대기까지 올랐다. 탁 트인 풍경에 크게 숨을 내쉬었다.
향로봉으로 가는 길, 수직에 가까운 바위를 만나자 또 심장이 쫄깃했다. 하지만 포기하겠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때마침 산에서 만난 귀인이 발을 디딜 곳을 봐줘 무사히 오를 수 있었다.
향로봉에서는 서울의 도심을 조망할 수 있었다. 왼편으로는 북한산의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바위에 걸터앉아 이어폰을 꽂고 노래를 크게 틀었다. 멜로디에 맞춰 구름도 산봉우리도 넘실대는 것만 같았다. 혼자 올랐다는 뿌듯함으로 가득 차 출렁이는 내 마음처럼.
산을 탄다 하면 ‘체력이 좋으신가 봐요’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하지만 난 체력도 담력도 타고나지 않았다. 풍선을 못 불 정도로 폐활량은 부족하고 겁이 많아 롤러코스터는 좋아하지 않는다. 어릴 적 나는 흔한 보행기조차 무서워 타지 못한 아이였다. 지금도 부모님이 주말마다 등산을 가는 나를 신기해하실 정도로 난 산과는 어울리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체력이나 담력에 대한 질문에는 ‘산을 타면서 기르면 돼요’라고 답한다.
‘시작부터 쫄지 말라’고 바위 앞에 걸음을 멈췄던 수많은 순간, 산은 늘 내게 가르쳐줬다. 막상 지나면 아무것도 아님을, 또 다른 바위를 넘을 용기가 생길 것임을 이젠 분명히 안다.
불가능은 없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아무리 산을 좋아해도 지금 내가 엄홍길 선생님은 될 수 없다. 불가능은 있지만 스스로 나의 한계를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