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는 교실 안의 피그말리온

by 최고의 교사

신규교사의 열정과 사랑이 넘치던 2017학년도.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을 맡으며 겪었던 일이 떠오른다. 우리 반이었던 그 학생 덕분에 교사로서 한층 더 성장하고, 교육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다혈질이고 크고 작은 사고를 일으키던 그 학생은 학기 초부터 나와 마찰을 일으켰다.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을 담임교사로서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생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서 지적은 하지만 학생이 언젠가 변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묵묵히 지도했다. 하지만 나의 노력에 대한 성과는 드러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크고 작은 문제가 지속되는 와중에 결국 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그 학생이 선생님께 물리적인 위협을 가한 것이다. 그 결과 그 학생은 징계위원회에 회부되었고, 징계의 최고 단계인 ‘퇴학’ 처분을 받았다. 나는 징계위원회에 학급 담임 자격으로 참여하여 선처를 바라고 학생을 옹호했지만 결국 징계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학생은 고민 끝에 타 학교로 전학을 선택했다.

타 학교로 전학 후에도 서로 꾸준히 연락을 지속했다. 나와 함께 지낼 때 잘못한 행동에 대해 지적을 자주 받긴 했지만, 본인을 끝까지 믿어주고 자신의 편이 되어준 담임에 대한 고마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지내던 어느 날. 그 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나는 마음이 너무 아파 무너져 내릴 것만 같았다. 전학 후 그 학생이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결국 징계를 받게 되었고, 그래서 자퇴를 했다며 나에게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학교와 새로운 환경에서 잘 적응할 거라 믿었는데 예상하지 못한 결과를 듣게 되어 참담한 심정이었다. 한편으로는 내가 믿어왔던 교육적 신념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문제가 있거나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을 믿고 지지해 주면 변할 것이라 믿었는데 섣부른 판단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은 마음이 매우 복잡했다.

자퇴 후에 그 학생은 나름대로 잘 지냈다. 나와 연락도 꾸준히 하고 본인의 진로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와 반대로 나의 교육적 믿음은 조금씩 옅어져 가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내가 맡았던 1학년 학생들이 2학년이 된 어느 봄날. 그 학생이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다. 검정고시를 준비한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학생의 결정을 축하해 주며 지지해 주었다. 학생의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나의 교육적 믿음이 다시 선명해지는 순간이기도 했다.

2018년 겨울 내가 맡았던 1학년 학생들이 3학년으로 진급하기 바로 전, 12월 어느 날. 그 학생이 종이 한 장을 들고 나를 찾아왔다. 그 종이는 바로 ‘검정고시 합격증’이었다. 나는 너무 뿌듯해서 학생을 꼭 안아주었다.

그 후에는 대학 진학에 대한 목표가 생겨 나에게 주기적으로 전화를 하며 입시에 대한 정보를 얻었고, 스스로 수시와 정시에 대해서 알아보는 적극성을 보였다. 물론, 누구나 알고 있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본인이 만족하는 대학교에 입학하여 일과 학업을 병행했다.

그 학생과 함께하는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교육에 대해 많은 생각의 변화가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교육의 정의가 흔들리기도 했다. 교사의 교육적 신념과 조치에 대한 결과가 즉각적으로 드러날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학생이 변화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도하면 언젠가는 그 믿음의 결과를 드러낼 것이다.

나는 그 학생과 보낸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깨달은 점이 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바로 윗 문단에 있는 단어 ‘언젠가는’이었다. 즉, 교육의 효과는 행동주의적 관점처럼 어떤 조치가 투입됐을 때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교사는 묵묵하게 학생을 신뢰하고 지지하고 지원하면서 학생이 변화하길 기대하고 기다린다면 ‘언젠가는’ 학생이 변할 것이다.

이런 말이 있다. 교사는 학생을 마음으로 조각하는 교실 안의 피그말리온이다. 피그말리온은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여인을 조각하고 그 조각상과 사랑에 빠졌다. 그의 간절한 사랑에 조각상은 실제 여인이 되어 그 둘은 행복하게 살았다.

어쩌면 교사도 피그말리온과 같은 존재가 아닐까. 학생은 한 사람의 인격체로 존재하기 때문에 실제로 조각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사가 학생에 대해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인격적으로 대우하며 신뢰하고 멋진 성인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는다면, 학생 또한 선생님의 신뢰와 사랑을 느끼고 본인도 모르게 조금씩 바뀔 것이다.

나는 앞으로도 이와 같은 교육적 신념을 바꾸지 않고 학생들을 교육할 것이다. 물론, 앞으로 다양한 학생과 다양한 관계를 맺고 지내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나의 교육적 신념은 변할 것이다. 아마 성장하는 쪽이겠지. 그래도 그 기저에는 학생에 대한 신뢰와 학생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학생을 지도하는 교실 안의 피그말리온이라는 생각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렇게 소중한 경험을 하며 성장하고, 나와 만나는 학생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교사라는 점에 대해 감사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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