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의 시작.
2013년 1월.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 공인 성적(토익, 토플 등)이 필요했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즉시 영어 학원을 다니며 취업 준비를 했다. 직장을 얻기 위한 과정도 수험생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와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들어가고자 하는 기업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쳐서 채용시험이 진행되는지 공부해야 했다.
공부하는 과정이 수험생활과 비슷하긴 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편안했고 덜 힘들게 느껴졌다. 새로운 상황에 대한 도전이라 덜 힘들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취업 스터디 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니 오히려 재미있었다. 면접을 보고 떨어지는 과정 속에서 좌절을 경험하긴 했지만 새롭게 또 도전할 수가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얻게 된 첫 직장은 을지로에 있는 중견기업이었다. 채용 공고 상으로는 1명을 선발한다고 했지만, 최종 면접 대상자 3명 모두를 채용했다. 회장의 명령이었다. 면접 대상자가 모두 마음에 들어 채용 지시를 내렸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오랜 노력 끝에 얻어낸 성취라 정말 기뻤다.
설레는 마음을 안고 출근한 첫날, 뭔가 삐그덕 거리는 느낌을 받았다. 갑작스럽게 채용됐기 때문에 자리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일주일 동안 본사로 출근하며 자리가 결정될 때까지 대기해야 했다. 그 일주일의 시간이 정말 힘들었다. 출근은 하지만 할 일이 없으니 시간은 더디게 흘렀다. 어디로 발령이 날지 몰라 마음이 싱숭생숭했다.
일주일의 시간이 흘렀고 담당 부장님으로부터 울산으로 가라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울산에 자리가 있으니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일을 배우며 지내다가 나중에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겨준다는 내용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울산에 내려가 한 달 동안 일을 배우며 시간을 보냈다.
한 달만 버티면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길 수 있다는 믿음으로 타지 생활을 버텨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생각은 '어쩌면 울산에서 계속 지내야 될 수도 있겠구나'로 바뀌었다. 회사에서 나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도 많은 고민을 했다. '어렵게 취직한 자리인데, 그냥 버텨봐야 하는 건가? 정말로 한 달 뒤에 수도권으로 자리를 옮겨줄 수도 있을 테니까', '수도권에 자리가 쉽게 나지 않을 텐데, 그냥 울산에서 계속 있으라고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결국 사직서를 제출했다. 아무 연고도 없는 울산에서 지낼 자신이 없었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을 위해서라면 몰라도 이런 상황은 자신이 없었다. 퇴직 후에 조금 쉬고 다시 취업 준비를 했다. 한번 취직했던 경험이 있어서 취업에 대한 자신이 있었다.
채용공고를 확인하고 면접 연습을 하고 자기소개서를 다듬었다. 채용공고를 확인하던 중 과거에 관심을 갖고 있었던 체육행정 단체 계약직 공고문을 확인했다. 관심을 가지고 있던 곳이라 곧바로 준비를 시작했다.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지원서 준비는 어렵지 않았다. 면접을 무난하게 마무리하고 당당히 채용됐다. 그때가 2013년 9월 14일이었다.
내가 배운 체육전공을 활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기쁜 마음으로 출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일에 대한 회의감이 들었다. 아침 9시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행정업무를 하다가 저녁 7시에 퇴근. 이 일상이 반복됐기 때문이다. 내가 배운 전공을 활용한다기보다는 어떤 기계의 부속품이 된 느낌이 들었다. 취업으로 방향을 선회했는데 한 곳에 진득하니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닌다는 생각이 들자 고민이 됐다. 부모님께 면목이 없었다. 그래도 고민했다. 내 인생의 30%을 차지하는 직장생활인데 돈을 위해서 아무 곳에서나 일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고민 끝에 대학원 진학으로 방향을 바꾸고 2014년 2월에 체육단체를 그만뒀다. 2014년 3월부터는 대학원에 다니며 행정조교로 일하면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자 나도 모르게 체육교사에 대한 열망이 조금씩 되살아났다. 시간이 지날수록 열망은 점차 커졌고 다시 한번 체육교사가 되기 위해 도전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