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퉁 이과
부모님으로부터 허락을 받았다. 마지막 장애물은 담임선생님께 이야기하고 자퇴를 하는 일이다. 그다음 날 나는 개선장군처럼 의기양양하게 담임선생님께 상담을 신청했고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를 꺼냈다.
“선생님. 자퇴하고 싶습니다.”
담임선생님은 매우 당황했다. 나는 성실하게 학교를 다니며 공부하고 있었다. 자퇴와 전혀 관련 없어 보였던 학생인 내가 자퇴 이야기를 꺼냈으니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자퇴를 하고자 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부모님께 허락을 받은 상태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담임선생님은 내가 하는 이야기를 모두 듣고 말했다.
“그래 알겠다. 혹시 방법이 있을지 모르니 잠시만 시간을 두고 생각해 보자.”
나는 일분일초가 아쉬운데 잠시 기다려보라는 말에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모든 일에는 절차가 있으니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담임선생님은 교무실로 나를 불렀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군!'이라는 생각을 하며 교무실로 향했다. 고등학생 신분이 오늘로써 끝이라는 생각이 들자 설렘과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담임선생님과 한참을 말없이 앉아있었다. 나는 통보를 기다리는 중이었고 선생님은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생각을 정리하는 듯 보였다. 짧은 시간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굉장히 오랫동안 침묵하고 앉아있는 것처럼 느껴져 숨이 막혔다. 침묵을 깨고 먼저 이야기를 꺼낸 건 담임 선생님이었다. 천천히, 아주 또박또박 이야기를 꺼냈다.
“너의 자퇴에 대한 이야기를 학교에 꺼내며 전과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확인해 봤어. 이미 너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친구들이 몇 명 더 있다고 하더구나. 학교에서 너희들이 조금 덜 힘들게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해 줬어. 문과로 전과는 불가능 해. 단, 학급 친구들이 과학탐구 이동수업을 갈 때 너는 사회탐구 수업을 들으면 돼. 즉, 이과이긴 하지만 사회탐구 수업을 듣는 거야. 물론, 어려운 점도 있어. 수학은 문과 수학이 아닌, 이과 수학을 해야 하기 때문에 공부의 양과 난이도는 문과 친구들보다 조금 더 많고 어려울 수는 있지. 이제 너는 선택해야 해. 학교에 남아서 공부를 할 것인지 아니면 자퇴를 하고 스스로 공부를 할 것인지”
담임선생님의 이야기는 솔깃할 수밖에 없었다. 공부량이 많긴 하지만, 내가 고민했던 부분(친구들과 헤어지는 문제, 대입과정을 스스로 준비해야 하는 부담감 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담임선생님께 고민해 보겠다고 이야기하고 하루 동안 진지하게 고민하고 결론을 내렸다. 학교에 남기로.
고등학교 3학년으로 진학하고 반 배정이 됐을 때, 나와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학생은 나 포함 6명이었다. 친구들은 우리 6명을 ‘짝퉁 이과’라 부르며 놀렸다. 비방이 아닌 애칭이었다. 이 별명은 졸업한 지 1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친구들로부터 불린다. 매우 정겹다.
우리는 끈끈하게 뭉칠 수밖에 없었다. 사회 탐구 과목도 함께 듣고 이과반이라는 구성원 속에서 존재하는 특별한 사조직(?)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별하고 기억에 남는 1년을 보냈다. 진로를 선택하고 다양한 장애물을 만나 해결방법을 고민하고 극복하다 보니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는 나의 염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이 에너지를 동력 삼아 최선을 다해 1년을 보냈고 결국 원하고 꿈꾸던 체육교육과에 입학할 수 있었다.
맹자(孟子)는 ‘하늘이 큰 일을 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그 사람을 시험해 보기 위해 곤란에 처하게 한다.’라고 말했다. 즉, 어떤 사람이 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기 위한 시련을 겪는다는 말이다. 큰 어려움 없이 순탄한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과 한계를 모르고 지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면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숨겨진 능력을 파악하여 한 단계 성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혹시 지금 매우 어려운 삶을 살고 있어서 힘들고 지친 사람이 있다면, '내가 장차 큰 일을 하기 위해 지금의 시기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며 자신의 능력을 발휘해 이겨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