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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MIND Apr 26. 2022

마음


 무엇으로 만들어졌는지 기억나지 않는, 따라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천장이 보인다. 고개를 돌리자 얼굴을 모르는 다른 아이들이 자고 있다. 유치원의 낮잠 시간이다. 소리는 잠들어 있다. 아무도 일어나지 않는다. 최초의 기억이다.


 마음이 불안정할 때면 최초의 기억을 떠올린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을 감싼다. 불안은 의식으로부터 멀어진다. 천장의 소재도, 아이들의 얼굴도, 세월에 의해 퇴화된 지 오래건만, 어째서 나는 이토록 낡은 기억을 붙잡고, 불안한 현재와 정해진 것 없는 미래에 흔들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려 하는 걸까. 도대체 마음이란 무엇일까.


 어린 시절,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와 닮은 손과 발, 팔과 다리, 머리와 가슴을 가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나처럼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을까? 내가 온전히 느낄 수 있는 나의 것, 테두리를 만져볼 수 있는 것, 감정의 변화와 이동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뿐이었다. 붙기만 하면 싸웠던 동생이 없었더라면 이러한 생각은 보다 늦게 떠올랐을 것이다. 동생과 나의 싸움이 끝나고 중재의 시간이 시작되면 어머니는 늘 마음에 대해 이야기했다. 마음은 누구나 있다. 서로의 마음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어린 나는 어머니의 말을, 그리고 어머니의 마음을 잘 이해할 수 없었다. 확실하다고 느껴졌던 것은 오로지 나의 마음뿐이었으므로.


 사회생활의 시작은 학교였다. 교실이라는 하나의 공간에서 같은 높이의 의자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듣는 같은 나이의 친구들에게는 나와 같은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나와 함께 점심을 먹는 친구,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친구 모두 나와 같은, 그러나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피어났다.

나이를 먹고 머리가 커지자 마음의 존재를 확신하게 되었다. 감정 표현과 행동은 타인이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중요한 근거였다. 나 또한 마음을 통해 감정을 느끼고, 마음에 의해 행동을 했으므로. 그런데 마음에는 한 가지 모양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같은 장난을 쳐도 화를 내는 친구가 있었고 웃으며 넘기는 친구가 있었다. 두 친구 모두 분명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서로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마음에 대한 일련의 가설들이 세워지고, 그러한 가설들이 거짓보다는 참에 가깝다는 귀납적인 결론이 도출되자 나는 타인에 대한 마음을 들여다보기를 멈추고 다시 나 자신의 마음에로 돌아갔다. 기숙사 고등학교에서의 경쟁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의 경쟁이 아닌, 공부하기 싫어하는 나의 마음과의 경쟁이었다.


 돌아보면 고등학교 때까지의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마음과 타인의 마음을 동시에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나의 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던 때에는 타인의 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고, 타인의 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있던 때에는 나의 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지 못했다. 고로 확신을 가지지 못한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어느 마음에도 확신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마음은 눈 먼 방랑자가 되어 떠돌고 있다. 마음을 확신하지 못할 만큼 불안에 떠는 마음은 잠에 들지 못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을 제외한 모두가 잠에 든, 그리고 자기 자신 또한 곧 잠에 들 최초의 기억을 회상하며 불면증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러나 잠이 곧 평온함일까. 악몽이 마음의 잠을 괴롭히지는 않을까. 마음은 어느 길을 택할지 고민한다. 밤이 길어진다. 마음 대신 몸이 하루의 잠을 결정한다. 낮이 가고 밤이 오면, 마음은 똑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마음이란 무엇일까.



Artist 'PJ' with Gallery MI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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