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 아빠의 조급한 알바구직

나도 그래, 너만 그런게 아니야

by 물밖의물고기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에, 알록달록 나뭇잎들이 쏟아내려도

인생은 영화처럼 크래딧이 올라가지 않는다.

계속 살아가야 한다.


육아휴직을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이 되어간다. 남은 기간도 4개월. 딱 절반 정도의 시간을 소진했다. (왜 이렇게 시간은 빠른걸까?) 아마도 시간의 흐름을 "소진"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내겐 꽤 의도적인 표현이다. 나는 육아휴직 총 시간 안에 이루고 싶은 게 있었고, 카운트다운이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이 꽤나 초조하다. 오늘도 "소진"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불안감과 그동안 내가 뭐 했지 하는 허탈함에 대낮 아메리카노 한 잔에 과한 의미를 부여한다. 이 쉼이면 충분해라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심연 깊은 곳에서 째깍거리는 시계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해마(뇌)에도 입력되지 않는 To Do List나 Bucket List를 계속 정리하고 중얼거리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가만히 쉬는 것을 잘 못했던 것 같다. 아마도 내 인생의 원동력이 초조함과 조급함이었을지도 모른다. 20살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고 여행을 사랑하게 되면서, 나는 이 초조함과 조급함이라는 괴생명체들과 싸워가기 시작했다. 나답게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것이라고, 세상이 제시한 천편일률적인 길을 따라가기에는 인생의 시간은 너무 짧고, 죽음이 눈앞에 있다고.. 스스로 초조해지거나 조급해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써왔다. 나다움을 찾기 위해서 고된 환경 속에서도 부지런히 경험을 추구했고, 왜 사는지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왔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아보니 괴생명체들과 진짜로 싸워온 건 내가 아니라, 부모님이었다. 부모님의 날개 아래에서 한없이 방황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부모님의 곁을 벗어나, 가정을 꾸리고 가정의 생계와 미래를 그려가니 수많은 괴생명체들이 눈 앞에 보인다. 앞으로 내가 이걸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이 조급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진다는 걸 누구나 한 번씩은 경험했을 것이다. 내가 육아휴직 시작 때부터 기획하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개인적인 프로젝트들은 모두 장기적인 프로젝트들이다. 당연히 지금 당장 수익으로 연결될 일은 없다. 그런데 육아휴직 급여가 줄어들기 시작하고(4개월부터 육아휴직 급여가 줄어든다.), 미국주식이 급락하고, 집 재계약시점이 다가오다 보니 초조함이라는 괴생명체가 눈앞에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이 초조함을 느끼기 시작하면 아주 단기적이고 즉각적인 방법을 찾게 된다. 그래서 근 5~6년 만에 알바몬과 알바천국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이 마음이 닿았을까. 카페에 지원서 몇 개 넣자마자 바로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런데 웬걸, 구체적으로 알아보니 육아휴직 중 아르바이트를 하는 데에는 제약이 너무 많았다.


육아휴직자는 주 15시간 미만, 월 150만 원 이하로 일하면 된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르바이트 고용보험 가입 유무, 회사 내부 허락 필요, 고용노동부 월별 근로서류 제출 등 귀찮은 일이 많았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부정수급으로 간주되어 육아휴직급여가 제한될 수도 있다. 나는 인사팀 친구에게도 물어보고, 고용노동부에 다 물어본 뒤, 가능하겠다 싶었다. 그런데 진짜 내적갈등은 그 때 시작되었다.


내가 이 시간을 이렇게 보내려고 한 게 맞을까, 분명히 돈이 아니라 시간을 사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초심을 잃어버리는 건 인간의 아주 뻔한 습관이 틀림없다. 몇십만 원 벌어보겠다고 육아휴직 때 일을 하는 게 맞을까 싶다가, 아내의 한 마디에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 돈 없이도 잘 살 수 있고, 여보가 스트레스 안 받으면 좋겠어." 이때 깨달았다. 아무도 나를 초조하게 만들지 않았는데, 나 혼자서 초조함의 벼랑 끝으로 스스로를 몰아넣고 있었다는 것을. 그저 내가 이 육아휴직 시간 중 단 돈 몇 만 원이라도 벌어서, 시간을 헛되게 보내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정감을 느끼고 싶었던 것 같다.


정말 죄송스럽지만, 면접을 정중히 취소요청드리고 스스로 한결 자유로움을 느꼈다. 더 길게 보고, 더 멀리 보는 사람이 되자고 다짐하면서 스스로가 준비하고 있는 프로젝트에 집중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남편이자 아빠로서 더 좋은 가장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진중히 고민하고,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 촘촘히 정비하는 것이 더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다시금 발견했다.


초보아빠이자, 한 인간으로서 정답이 없는 주관식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다. 참으로 어려운 여정이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러하다는 게 참 위로가 된다. 답이 없는 인생에서 모두가 각자의 방식대로 헤매고 있고, 그 헤매는 과정이 일종의 여행이라는건 즐거운 고통이다.


내 인생의 꿈 중 하나는 "타인을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는 일이었다. 그래서 위로를 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면서 NGO단체에서 일해 보기도 하고, 인생 여정 곳곳에서 위로를 실험해보기도 했다. 아마도 과거의 나는 눈에 띄는 거창한 위로를 전하는 인생을 상상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야 부끄럽게나마 깨닫는 것은, 위로는 거창하지 않은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저 나와 같은 길을 걷고, 나와 같은 고민을 가진 이들에게 "나도 그래, 너만 그런 게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익명의 원격악수 따위가 위로 같은 게 아닐까, 현시점에서는 그 정도로 내 꿈을 정리하게 된다.


아무래도 브런치를 시작하길 잘한 것 같다. 글을 써 내려갈수록 선명해지는 건 내 갈등의 근원이다. 심장 깊은 곳에서 끊임없이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두 가지의 자아. "나다운 나"와 "나답지 않은 나", 죽을 때까지 피 터지게 싸우다가 잠잠해졌다가 다시 되살아나는 끝나지 않을 싸움일 것이다. 그럼에도 글을 쓰다 보면 그 과정에서 성장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나의 방황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된다면 훗날 죽음을 마주하는 날, 잘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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