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휴직이 끝나가고 있다
그믐 한가운데 놓인 것 같을 때,
한없이 자비로운 자연 앞에 서있는 게 참으로 위로가 된다.
한없이 유한한 인간, 그래서 빛나는 인생
아기가 태어나고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 아기와 함께 외출한 경험들로 미루어 보았을 때 우리 아기는 매우 순한 편이었고, 아내와 종종 "어쩌면 우리 가족여행 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며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하필 내게 올해까지 사용할 수 있는 계열사 리조트 할인쿠폰이 있었고, 교회 친구 남매와 이야기해서 단숨에 경주 스위트룸을 예약했다. 무려 50만 원가량의 숙소였다.
너무 급하게 준비한 경향이 있는데, 아마도 스스로 여행이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급히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닐까 싶다. <서울 자가에 대기업 다니는 김 부장 이야기> 드라마를 너무 재밌게 시청하고 있지만, 동시에 드라마를 볼 때마다 왠지 우울해지는 이 감정은 아마도 "인생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날로 발전하는 AI기술들, 불안정한 일자리문제, 주거대출과 미래계획들. 홀몸이 아니라 아기까지 있는 나는 이제 책임감이 이전과는 전혀 다르다. 주변 친구들의 이야기는 점점 아파트 이야기로 바뀌어가고 있고, 소유에 대한 이야기로 좁혀지고 있다. 세상이 만들어놓은 프레임에 쫓기는 인생을 살지 않을 거라고 나는 수없이 다짐해 왔지만, 매번 무너질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나의 5년, 10년 후를 잘 준비하고 싶은 마음들이, 현실에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드러났다.
여행은 오래전부터 이런 나약한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용기를 내게 해주는 일종의 솔루션이었다. 이런저런 고민이 들 때면 나는 여행으로 도망치곤 했고, 도피처에서 용기를 얻고 다시 현실로 돌아와 꿈을 꾸곤 했다. 꿈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지만 현실에 당당히 기죽지 않고 마주설 용기 같은 것이었다. 아마 내 무의식은 그런 용기를 찾고 있었던 게 아닐까. KTX는 3시간 만에 경주역에 도착했고, 우리는 렌트를 해서 리조트로 향했다. 회사에 미안할 정도로 저렴한 비용을 지불하고, 훌륭한 스위트룸에 묵었다. 창밖에는 산의 능선들이 춤을 추듯이 그림을 그리고 있었고, 동서남북으로 가득한 산들을 둘러보니 서울살이에 분주했던 조급함이 차분히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60평가량의 숙소에서 잠시 눈을 붙였다.
그리고 저녁, 우리는 첨성대를 향했다. 대릉원 안으로 서서히 걸으면 걸을수록, 노란 조명이 비추는 첨성대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까만 하늘, 넓은 초원 위로 우뚝 서있는 첨성대 앞에 다다랐다. 첨성대는 신라시대에 별의 운행을 관측하는 기구였다고 한다. 첨성대 앞에 서니 <로이킴의 북두칠성>이라는 노래가 떠올랐다. 그리고 아내가 내게 하늘을 보라고 이야기하며, 북두칠성과 별자리들을 계속 이야기했다. 나와 아내, 그리고 아기는 함께 북두칠성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내 오랜 여행의 촉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 순간이 내가 또 용기를 얻어가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것을. 무력하고 나약한 나라는 존재에,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이야기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인생은 빛나는 거야". <로이킴 - 북두칠성>이라는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수많은 나무들을 바라봐
아무도 알아주진 않지만 우뚝 서있잖아
집에 가는 길엔 나를 그리며
하늘을 바라봐 줄래
북두칠성이 보이니
빛나는 별들을 천천히 이어가며 나를 기다려주길
북두칠성이 보이니
네가 있는 곳이 어디든 난 따라가 그 길을 비춰줄게
<로이킴 - 북두칠성 노래 中>
마치 신의 존재가 내게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았다. 인간의 존재는 유한하고, 무력하고, 나약하고, 고되고, 고통스러운 존재이지만, 그래서 인생이라는 짧은 여행이 아름다울 수 있다고, 어둠이 진할수록 빛은 더 반짝거리는 거라고. 자연의 위로, 바로 내가 이곳에 온 이유였고,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였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은 아마 죽을 때까지 계속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또 알 수 없는 힘에 의해 당분간 다시 두려움 앞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경주 첨성대 앞에서 북두칠성을 바라보던 그 장면이 당분간은 내게 계속 이야기해 줄 거다. 인생은 아름다운 거라고, 너와 가족들이 함께 바라보고 있던 그 북두칠성은 몇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 있을 거라고, 너와 네 가족들을 이어주는 그 연결선이 또 하나의 북두칠성이 될 거라고. 그렇게 우리 가족은 경주에서의 추억을 가슴 깊이 간직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