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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주 Jun 19. 2023

납작 만두

서브인 듯 메인 같은 너

고등학생때와 대학생 때는 주식이 떡볶이었다. 최소 주 3~4회는 떡볶이를 먹었다. 내가 살던 20대 중반까지 나고 자랐던 대구에서는 고등학교 분식점이든, 대학교 앞 포장마차든 어디든지 떡볶이가 가는 곳에는 단짝처럼 따라다니는 떡볶이의 친구가 있었다.

바로 납작 만두이다. 우리는 이것을 '납짝만두'라고 발음했다. "납작""납짝"은 다르다. 납짝이 납작보다 훨씬 더 납작한 느낌이다. 그렇다. 이름처럼 납작한 이 만두의 속에는 거의 아무것도 안 들어가 있다. 거의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만두를 뜯어보면 당면 몇 줄과 파 몇 줄은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진짜 거의 아무것도 안 들어갔다고 말하는 게 맞지만 그렇다고 아예 아무것도 없는 것은 아니다. 들어간 듯 만듯해야 진짜 납작 만두다. 대기업에서 만든 냉동식품으로도 납작 만두라는 제품이 나와 사 먹어봤지만 소가 너무 많이 들어있어 예전에 먹던 그 맛이 아니라며 실망한 적이 있었다. 납작 만두는 진짜 납작해야 한다.

대구 교동 납작 만두이다. 예전에는 이 교동시장 골목을 지나가면 만두를 굽는 할머니들이 호객행위를 많이 했었는데, 사실 어릴 때는 이렇게 납작 만두만 시켜서 먹어본 적은 없었다.



  대구에서는 이 납작 만두를 아주 흔하게 볼 수 있다. 일단 떡볶이를 먹을 때 떡볶이 위에 납작 만두를 토핑처럼 올려서 먹는 것이 기본이다. 쫄면과 함께 먹기도 하며, 비빔만두라는 메뉴는 납작 만두에 채소무침(쫄면소스와 같은 소스에 무침)싸 먹기도 한다. 또 대구 10미로 유명한 반고개 무침에도 납작 만두를 싸 먹어야 하고, 대구 10미납작 만두가 단독으로 올라가기도 하니 대구 10미에는 납작 만두가 두 번 들어가는 격이다. 그렇게 납작 만두는 모든 음식의 단짝처럼 친근한 음식인 줄 알았고, 다른 지역에도 당연히 이렇게 먹는 것인 줄 알았다. 서울에서 교사임용 학원을 다니던 때, 서울 어느 분식집에서 메뉴를 살피다가 비빔만두를 시켰다. 나는 당연히 비빔만두를 시키면 납작 만두가 나오는 줄 알았지만, 작고 통통한 한 튀긴 만두와 채소 무침이 같이 나와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나에게 비빔만두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납작 만두였던 것이다. 


  만두는 자고로 터질 것 같이 통통하게 넣어 여러 가지 재료들의 즙들이 만들어내는 조화의 향연이라며 만두소가 거의 들어있지 않은 납작 만두를 무슨 맛으로 먹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납작 만두란 너무 당연히 아는 맛있는 맛이다. 밀가루와 기름의 조화. 납작 만두는 6.25 전쟁 후 먹을 것이 없을 때 비교적 구하기 쉬웠던 간편한 재료로 만들어 먹었던 것으로 시작되었다고 한다.  전을 먹을 때도 바삭하게 익은 밀가루 부분을 맛있게 먹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주변에서 밀가루만 기름에 부쳐 먹는 사람도 만난 적이 있다. 그 탄수화물과 지방의 조화, 겉바속촉의 맛은 다 아는 맛인 동시에 중독적인 맛이다. 또한, 이것만 혼자 먹기보다는 다른 양념이 강한 음식들과 같이 먹다 보니 토르티야나 난에 다른 음식을 싸 먹는 개념처럼 더 달고(밀가루 탄수화물의 맛), 고소한(튀김 기름의 고소한 맛) 풍부한 맛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왼쪽사진: 납작만두만 시키면 납작만두 몇줄 위에 양파, 쪽파 등을 굵게 썬 양념(간장)을 뿌려준다. 채소들과 함께 싸먹으면 된다. 오른쪽 사진;  떡볶이 국물이 푹 적셔진 납작만두


 납작 만두를 부칠 때는 어느 정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처음 부쳐 보는 사람에게 냉장된 납작 만두를 주면서 만두를 부쳐달라고 하면 아마 납작 만두를 하나씩 하나씩 떼면서 굽다가 납작 만두를 너덜너덜하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납작 만두는 보통 5~6개가 한 줄인데 이것을 한꺼번에 부친다. 기름을 넉넉하게  두르고 부쳐야 한다. 기름이 납작 만두 사이사이에 베이게 되고, 어느 정도 익으면 납작 만두가 잘 떨어진다. 가게마다 다르지만 하나하나 납작 만두끼리 붙어 있는 면까지 바삭하게 잘 부쳐 주는 가게도 있고, 붙어 있는 그대로 주는 가게도 있다. 붙어 있는 그래로 음식이 나오면 젓가락과 손가락을 사용하여 정성스럽게 떼서 먹으면 된다.


나는 대구를 떠나서 다른 지역에서 산지 16년 정도 되었다. 지금은 우리나라도 잘 살게 되어 밀가루와 기름만으로 만들던 납작 만두보다 훨씬 맛있고 화려한 음식들이 많다. 손쉽게 세계 여러 나라 음식을 접할 수 있고, 건강하고 맛있는 음식들도 많다. 그렇지만 가끔 이 단순한 음식이 그리울 때가 있다. 메인으로 납작 만두를 먹든, 떡볶이에 찍어 먹든, 납작 만두가 먹고 싶은 날이 있다. 단순하면서도 다른 음식을 보충해주기도 하는 이 음식은 나에게도 아무 생각 없이 떡볶이와 함께 납작 만두를 먹으며 재잘거렸던 그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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