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에서 나고, 자라고 살고 있는 나는 어릴 때부터 이 음식을 자주 먹었다. 하지만 이 음식은 경상도 사람들 사이에도 호불호가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내 주변에 경상도 사람들은 이 단풍콩잎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깻잎을 한국 사람들만 먹는 것처럼, 콩잎은 경상도 사람만 먹는다. 이 콩잎김치의 비주얼을 처음 보는 사람들은 이것이 낙엽, 나뭇잎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보기에는 나뭇잎 같지만 이 맛을 아는 사람은 계속해서 생각이 난다.
엄밀하게 따지면 콩잎반찬은 나뭇잎처럼 생긴 단풍콩잎김치랑, 콩잎물김치로 나눌 수 있다. 나뭇잎 콩잎김치는 낙엽이 물들어가는 늦가을부터 겨울까지 많이 먹었고, 파릇한 콩잎물김치는 여름에 먹는 반찬이다.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이 콩잎김치를 좋아하는 사람은 이반찬만 있으면 일주일 동안 밥과 콩잎김치만 해서 밥을 먹을 수 있다. 이것의 호불호를 가르는 것은 콩잎을 삭히기 때문에 나는 냄새 때문일 것이다. 콩잎김치는 겉모습이 나뭇잎같이 생겼지만 겉모습만 나뭇잎 같은 것이 아니라 진짜 노랗게 단풍이 든 콩잎으로 만든다. 보통 10월 콩을 수확하는 시가에 콩잎을 딴다고 한다. 그래서 내가 이 김치를 늦가을에 먹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노랗게 물든 콩잎김치를 단으로 묶어서 소금물에 한 달 정도 넣어서 삭힌다. 그렇게 삭히면 콩잎에 쿰쿰하고 달큼한 맛도 들고, 불투명하던 노란 콩잎도 반투명해진다. 그 삭힌 콩잎을 물에 담가서 삭힌 냄새를 어느 정도 빼고 김치 양념을 한 잎 한 잎 발라서 만든다. 이런 음식을 먹을 때는 항상 이런음식을 어떻게 만들게 되었는지 너무 신기하다. 여러 가지 우연과 시도가 겹쳤겠지만, 요리는 정말 오래되고 유용한 발명품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모든 식재료를 김치로 담가 보지만, 이렇게 노랗게 된 콩잎으로 김치를 만들 생각을 누가 했을까.
콩잎김치의 최고의 궁합은 갓 지은 밥일 것이다. 갓 지은 밥은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기 때문에 어떤 반찬이랑 먹어도 맛있다. 하지만 집에 콩잎김치가 있는 것을 알고, 갓 지은 뜨끈한 밥을 본다면 수저에 크게 한 수저 떠서 콩잎김치를 척 걸쳐서 먹고 싶은 생각이 든다. 콩잎김치의 매콤함과 쿰쿰한 냄새가 쌀밥의 달큼함과 함께 어우러지는 맛은 아는 사람만 아는 맛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이지만 나에게 콩잎김치는 할머니의 손맛이다. 엄마도 콩잎김치를 담가 주셨지만 할머니가 더 자주 콩잎김치를 담가주셨던 것 같다. 지금 우리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신다. 그래서 내 얼굴도 잊었다가 기억했다가 한다. 할머니는 지금은 콩잎김치를 담그지 못하신다. 그래서 나는 콩잎김치를 보면 좀 더 젊고 건강하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가을이면 벽에 기대어 말려놓은 콩을 두들기고, 콩잎을 따서 콩잎김치를 담으시던 할머니를 떠올린다. 지금은 할머니가 콩잎김치를 담을 수 없기 때문에 그립기도 하고,쓸쓸하기도 하다. 콩잎이 푸른빛을 잃고 노랗게 시들어가는 것이 아쉬워 그 잎을 따다가 김치를 담근다. 가을이 깊어가고 곧 겨울이 오면 우리는 가을이 가는 아쉬움을 대신해서 콩잎 김치를 먹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