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하나만 꼽으라고 하면 "딱 이거!"라고말하기가 어렵다. 나는 대부분의 음식을 잘 먹는 편이다. 하지만 이것만 삼시세끼 한 달 동안 먹어도 질리지 않는 음식이 있냐고 물으면 나는 몇 가지를 대답할 수 있다. 나는 햄버거나 샌드위치, 김밥 이런 종류를 좋아한다. 적고 보니 다들 패스트푸드 같은 느낌이 든다. 그렇다고 완전한 초등학생 입맛은 아니지만, 내가 먹고 싶어 하는 음식은 대부분 저런 종류일 때가 많다. 근데, 최근에 좋아하는 음식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이 음식을 좋아한다고 하면 좀 더 할머니 입맛같이 보일지도 모른다. 그것도 경상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다.
뽀얀 국물에 찹쌀도너츠 동동 띄운 콩국이다.
콩국이 어느 예능에서 대구 음식으로 소개되어 나의 지인들이 하나둘씩 이 콩국을 먹는 것을 보고 나도 처음 먹게 되었는데 대구에 살 때는 듣도 보도 못한 음식이다. 제일 처음 비슷한 음식이라고 먹어본 것은 2017년 중국에 여행 가서 아침으로 먹었던 또우장과 요우티아오였다. 경상도에서 먹는 콩국과 좀 다른 점은 경상도식은 기름에 튀긴 찹쌀도너츠을 넣어 먹는 것이라면, 중국식은 요우티아오라는 구멍 숭숭 뚫린 튀긴 빵이랑 콩국을 같이 먹는 것이다. 같이 먹는 빵은 다르지만 따뜻한 콩국을 먹는다는 것은 아주 비슷하다. 경상도 콩국의 유래로 대구에 사는 화교들이 만들어서 먹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대구지역 공단에 중국인들에게 만들어 팔면서 경상도에서 먹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따뜻한 콩국은 경상도 사람들이 즐겨 먹는 음식이 되었다.
대구의 음식으로 알려져 있지만 대구뿐만 아니라 경주, 부산, 마산 등 경상도에서 많이 먹는다고 한다. 찾아보니까 대구뿐만 아니라 다른 경상도에서도 추억이 깃든 유서 깊은 음식이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경남이어서 그렇겠지만 내가 경상도식 콩국을 접하게 된 곳은 마산이다. 마산 쪽에서는 주로 시장에 노점상에서 콩국을 판다. 중국에서 아침으로 먹었을 때와 다르게 마산식 콩국을 처음 접했을 때 정말 나에게는 혁명적인 충격이었다. 중국에서 아침으로 먹었던 콩국맛은 '솔직히 먹을만하네.', '아침으로 든든하네.' '내일 아침도 이걸로 먹을까?' 정도의 반응이었다면 마산식 콩국을 처음 접했을 때는 콩국과의 운명을 느꼈다. 콩국과 나는 어차피 만나게 될 운명이었던 것이다. 내가 경상도에 살고 있는 것도 어쩌면 다 콩국을 먹기 위해서일지도 모른다는 운명을 가장한 만남을 외치고 있었다(마음속으로).
추운 겨울에 '따뜻한'도 아니고 '뜨끈한' 콩국을 먹어야 한다. 뜨거워서 후루룩 마실 수 없을 정도의 뜨끈함과 수저로 떠먹는 담백하고 달고 짠맛이 어우러지는 콩국과 콩국을 머금은 묵직한 콩국을 같이 퍼먹어야 한다. 입에서 나는 따뜻한 기운을 느끼며 한 그릇 하면, 작은 그릇에 담아줘서 양이 작을 줄 알았지만 배가 따뜻하고 든든하게 채워진다. 나는 지난겨울에 그 콩국이 너무 좋아서 10인분을 포장해서 쟁여놓고 먹고, 콩국이 떨어지면 금단증상으로 못 견뎌하다가 집에서 콩을 삶아서 직접 만들어 먹기도 하였다. 이렇게 맛있는 콩국은 만드는 방법도 간단하다. 콩을 반나절 정도 불려서 30분 정도 삶고, 삶은 콩의 껍질을 대충 걸러내고 믹서기로 콩 삶은 물과 물을 조금씩 섞어가며 내가 원하는 농도에 맞게 갈면 끝이다. 내 입맛에 맞게 소금과 설탕을 조금씩 넣는다. 내가 만든 콩국도 맛이 있다. 예전에는 콩국을 따뜻하게 먹을 수 있다는 발상자체를 못했기 때문에 콩을 갈아서 해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차가운 콩국수 밖에 없었지만(콩국수도 좋아한다.) 지금은 더 내가 좋아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단지 집에서 만든 콩국이 아쉬운 것은 찹쌀도넛다. 이 찹쌀도너츠가 특이하다. 파는 콩국에는 요우티아오처럼 길쭉한 모양의 빵을 서걱서걱 잘라서 넣어 준다. 근데 완전히 우리가 아는 식감의 쫀득한 찹쌀도너츠는 또 아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쫀득한 느낌의 도너츠라고 해야 맞을까? 아무튼 이 도너츠 느낌을 낼 수 있는 빵을 제과점에서는 찾을 수가 없었다. 식빵, 모닝빵, 소금빵, 바게트, 찹쌀도너츠(제과점에서 파는 찹쌀도넛은 너무 기름졌다.), 구운 떡... 여러 가지 조합을 넣어서 먹어봤지만 파는 콩국 속 도넛 만한 식감과 맛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나는 가득 만들어놓고 밥이나 떡, 오트밀과 같이 먹기도 한다.
이 음식을 좋아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나의 해장루틴이 되고 나서부터이다. 따뜻한 콩국은 콩을 갈아서 만든 음식이기 때문에 필수아미노산이 풍부한 음식이라는 생각에 해장으로 좋은 음식 같다는 느낌이다. 실제로도 최근에 나는 술을 마신 날이면 마산역(술 마신 다음날은 기차를 타고 출근하기 때문에) 앞에 콩국 파는 곳을 찾아 해장으로 먹는 루틴이 생겼다. 이른 아침에 노상에 앉거나 서서 먹는 콩국을 한 그릇 먹으면 속이 시원하게 풀리는 것 같다. 위에도 부담이 없고, 보양식을 먹은 것처럼 몸도 따뜻해진다. 회전율이 엄청 좋은 콩국가게는 대부분 새벽 시장을 찾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많은데, 다들 앉으면 주문이라고 할 것도 없이 주인이 흰색 에나멜 그릇에 콩국과 찹쌀도넛, 소금, 설탕, 콩가루를 순식간에 넣고 앉은 사람에게 건넨다. 그럼 다들 그걸 당연하다는 듯이, 식탁이라고 할 것도 없이 손으로 들고 수저로 퍼 먹는다. 그 식사시간은 모두 다 길어봤자 5분 남짓이다. 일어서며 셀프로 그릇을 치우고 3,000원을 건네고 사라진다. 그러니 한 시간에 몇 명의 손님이 왔다 갈까? 나는 한 시간 동안 붕어빵을 구워서 파는 것보다 콩국을 파는 그릇수가 더 많을 것 같다고 세어본다. 나는 다소곳이 할머니 할아버지들 사이에 앉아서 콩국을 기다린다. 그 사이에서 끼여서 먹는 콩국은 어른의 맛 같기도 하다. 노상 의자에 앉으면 아무 말이 없어도 주문이 된다. 사장님은 그릇에 바로 도너츠와 콩국을 담아서 바로 음식을 서빙하고, 손님들도 아무 말 없이 음식을 계산하고 그릇통에 담는다. 이들의 행동은 어딘지 모르게 프로페셔널해 보인다. 여기서는 말을 많이 하지 않아야 한다.처음에는 나도 어리바리하게 물어보기도 헸지만 단 두 번의 경험으로 전문성을 획득하게 되었다. 이 노련한 사람들 틈에서 먹는 콩국은 해장을 하면서도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그런 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