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뽀글 May 02. 2024

여자친구와의 사생활이 노출된다면

그럼 내가 말한 두 번째 제약은 무엇일까? 바로 ‘여자친구와의 사생활이 노출되면 어떡하지’이다. 이것 역시 성과 결부되어 있기는 하지만, 첫 번째와는 조금 성격이 다르다. 어떻게 다른지 정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확실한 건 첫 번째 제약보단 강도는 낮지만, 더 광범위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여자친구가 임신한다면’과 관련된 강박보다는 더 나중에 생겼으며 실제로 불이 붙었던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기가 힘들다. 몇 가지의 부분이 합쳐져서 만들어진 것 같기도 하고..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건으로 돌아가보자. 이 강박 역시 처음으로 불이 붙었던 건 전 여자친구와의 연애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한창 아자르나 랜덤채팅 같이 영상통화나 랜덤채팅을 컨셉으로 하는 앱들이 유행할 때였다. 실제로 주변 친구들을 보면 쉬는 시간에 종종 심심해 아자르를 켜 랜덤으로 모르는 사람과 영상 통화를 하는 장면도 많이 봤었고,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혹은 뭐 심심해서 아니면 나름 말할 수 없는 19금 목적을 위해 그런 어플들을 사용하기도 했다.

전편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나 역시 여자친구와 연애를 할 때는 중3, 고1 정도로 한창 성에 눈을 뜰 시기였고 솔직히 말하면 그런 것들이 안 좋아 보이면서도 또 해보고도 싶고 그런 마음이 들 시기였다.


또 이런 것과 비슷하게 여자친구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랜덤 어플을 이용해 채팅으로 은밀한 부위를 찍어 서로 사진을 주고받거나 아니면 아예 영상통화를 통해 서로의 은밀한 부분을 보여주는 행위도 주변에서 꽤나 접했던 것 같다. 사실 이런 걸 접하면 다양한 생각이 들곤 했다. '와.. 어떻게 모르는 사람이랑 그런 짓을 하지? 그건 진짜 좀 아닌 거 같은데..' 하다가도 또 야한 동영상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실제로 채팅을 하는 사람과 그런 사진을 주고받으면 더 흥분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랬다.


그렇지만 나는 모르는 사람과 뭐 야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건 몰라도 그런 사진이나 영상통화를 하는 건 심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심지어 여자친구도 있는 상황이었고.

근데 이런 행위를 여자친구와 하는 건 나쁘지 않은 행동이라고 생각했다. 연인 사이에 뭐 그런 사진을 주고받거나 영상통화를 하는 건 막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했다. 또한, 개인적으로 내 상황에서는 여자친구와 학생이기에 그렇게까지 자주 만나지 못하고 또 만나서 그런 행위를 하면 항상 걱정하니깐 영상통화를 이용하면 더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시작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어느 순간 전 여자친구와 그런 행동을 하곤 했다. 여자친구의 어떤 부위를 보고 싶다고 해서 사진을 보내준 적도 있고, 서로 영상통화로 보여준 적도 있고.. 여자친구가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그렇게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여자친구가 나에게 본인은 그런 행동을 하는 게 너무 수치스럽고 실제로 만나서 하는 게 아니면 이젠 도저히 안 하고 싶다고 강력하게 화를 낸 적이 있었다. 이 일이 나에겐 몇 안 되는 다른 사람에게 큰 소리를 들은 기억이었으며, 문득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혹시 내가 갖고 있는 여자친구의 은밀한 사진, 영상통화를 하면서 그냥 너무 가지고 있고 싶어 캡처했던 그런 장면이 나도 모르게 내가 이상한 사이트에 올리면 어떡하지?'

물론 나는 안다. 난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걸 극도로 싫어하며 또 걱정쟁이기 때문에 가끔 뉴스에 나오는 여자친구와의 성관계 장면을 야한 사이트에 올리거나 올리려고 협박하는 그런 짓을 할 사람이 아니다. 그렇지만 그때의 기억이 크게 각인된 나머지 내가 그러한 사진을 어딘가에 올린다면 난 그런 무서운 표정과 엄청난 화를 또 당하게 될 테고, 거기서 더 나아가 그냥 그런 사진을 갖고 있는 것만으로도 여자친구에게 피해가 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나는 여자친구의 신체 부위가 야하게 사진에 드러나진 않았는지, 영상통화를 할 때 신체부위가 드러나는 일은 없는지.. 신경 쓰기 시작했고 더 나아가 이제는 완전히 그런 가능성을 봉쇄하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나 혹은 내 여자친구의 휴대폰을 해킹할 가능성까지 염두하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런 알 수 없는 해킹에 대비하기 위해 나는 온갖 말도 안 되는 해킹 가능성과 그에 따른 예방방안을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나를 드러내야 하는 SNS는 극도로 무서워하기까지 했다.


사실 이렇게 솔직하게 글을 쓰면서도 나는 여전히 부끄럽고, 쪽팔리고 ‘이런 글을 쓰는 게 맞나? 사람들이 내 글을 보고 불쾌해하고 나를 변태로 생각하면 어떡하지..’이런 생각도 든다. 근데 이런 '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불편하고 쪽팔리고 숨겨야 하는 일이라고 계속 생각하는 게 나의 문제인 것 같다. 그래서 이겨내보고 싶다. 

나는 여전히 현재도 이런 일이 일어날까 봐 매사에 조심하고 나만의 이상한 루틴대로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이 글이 내가 강박증을 이겨낼 수 있는 중요한 초석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나와 아주 비슷한 생각으로 고통을 받는 강박증 환자들 혹은 나와는 조금 다르지만 나름 비슷한 두려움을 느껴본 적 있는 모든 이들이 내 글을 읽고 ‘나도 이러한 이야기를 더 이상 숨기지 말고 밖으로 꺼내볼까?’라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이전 05화 여자친구가 임신한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