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랑 쇼핑을 하던 중, 너무 마음에 들고 예쁜 가방을 찾았다. 고민.. 또 고민.. 하다가 결국 구매했다. 근데 나는 물건을 하나 살 때마다 엄청난 에너지가 든다. 바로 내 첫 번째 강박증상인 정액이 묻으면 어쩌지 하고 확인하고 걱정하는 행동 때문이다. 물건을 살 때마다, 다른 사람이 터치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내가 그 물건을 사려고 마음을 먹으면 화장실에 가서 손을 깨끗이 씻고 와야 한다. 나도 왜 그런지 모르겠다…근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내가 산 옷이나 가방 같은 거에 정액이나 더러운 게 묻어있을 것 같고, 그게 내 여자친구나 소중한 이에게 피해를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참 바보 같지?
그런데 오늘 아침에 어제 산 가방에 흠은 없는지, 이상한 부분은 없는지 체크하려고 비닐봉지를 뜯었다. 그러고 가방을 처음 여는데, 너무 순간 짜증과 스트레스가 몰려들었다. 새 가방의 끈 부분에 이상한 머리카락이 붙어있는 거다. 보자마자 떼긴 뗐는데, ‘그게 뭐지..’라는 생각부터 ‘아 떼지 말고 잘 확인했어야 하나?’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하.. 난 그런 걸 보려고 해서 그러는 건지 유독 그런 게 너무 잘 보인다. 남들 같으면 ‘뭐야? 왜 이런 게 묻어있담’하고 그냥 훅 털어버리고 지나갔겠지만 난 그게 잘 안된다.
아마도 나에게 있어 오염 = 정액 = 임신 가능성 or 오염 = 다른 사람의 나쁜 의도 = 나에게 올 피해
인가보다. 오늘도 이런 생각이 든 이후, 거의 2,3시간 동안 기분이 나쁘고, 또 여자친구나 엄마한테 괜찮은지 계속 물어보고 확인받고… 여기에 내가 왜 이만큼의 시간과 감정을 쏟는 건지 모르겠다.
대체 넌 뭐가 무서운 거야?
자.. 생각해 보자. 그게 내 머리카락이 아니라 다른 이의 머리카락이라면 뭐가 문제일까? 다른 사람이 썼다는 증거일까? 다른 사람이 이 가방을 잠깐 열어보고 확인했다가 반품한 거라면 그게 왜 걱정돼?
아… 누군가 그 가방을 일부러 더럽혔을 거 같거나 해코지해놨을 거 같아? -> 그 사람은 대체 아무 이유 없이 왜 그런 짓을 할까…
아니면 다르게 생각해서 그 털 같은 게 머리카락이 아니고 다른 거면 어떡하지? 정말 이해 안 되겠지만, 막 다리털이나 겨드랑이털이나 아니면 심지어 막 중요부위의 털이었던 거야. 그러면 가방에 정액이 묻어있는 거 같나? 아.. 그래서 이걸 또 임신 가능성을 묶는구나 그래서 걱정이 되는 거지. 근데 거기에 묻어있다고 해도 그게 여자친구나 다른 사람한테 묻으면 피해를 받나 그 사람들이?
이렇게 쭉 종이에다가 글을 써보았다. 그리고 문득 화가 났다… 왜 나한테 이런 일이 일어나서..
그랬더니 그런 나를 보며 여자친구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오빠가 하는 일들 중에서 완벽한 건 없어.
지금까지 나와 지내며 한 행동 중에
계획대로 다 이루어지고 어떤 변수도 없었던 적은 없지. 오빤 그저 있지도 않은, 처음부터 존재하지도 않는 “완벽”을 찾는 것뿐이야.
그러니 완벽하지 않은 순간이 오면
난 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거지..
순간 머리가 띵했다.. 그러게 분명 “기쁨 찾기 놀이”를 하자고도 하고, 그렇게 강박증도 이겨내고 싶은데 왜 자꾸 나는 외부환경에 이렇게 속 쓰려하고 아파하는 걸까? 오늘의 기쁨은 여기서 찾아보려고 한다. 가방에 머리카락이 묻어있어 줬기 때문에 난 오늘도 내가 얼마나 외부 환경을 탓하고 그걸 내 운으로 연결 짓는지 통찰해 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