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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아멘타불 Sep 24. 2022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말했다

살아있는 사람한테 가위눌릴 수도 있는 거임? 엄마도?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말했다. 만약 여러분이 이 고통의 시기를 감내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챔피언이 될 것입니다. 과연, 세계적인 보디빌더다운 힘찬 메시지! 다니엘은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그 명언을 입에 달고 다니다시피 했다. 헬스장을 찾는 손님들에게는 물론, 동료 PT 강사들에게까지 그의 에너지를 전해주었다. 다니엘은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진심으로 동경했다. 헬스장 PT 강사가 된 것도 작은 동경의 불씨에서 시작된 것이니까. 누구든 롤모델의 말이라면 믿고 싶어지지 않나. 그러니까 이건 어쩌면 일시적인 고통의 시기일 뿐이고, 다니엘이 감당해야 할 몫인지도 모른다. 설사 그게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유령에게 가위눌림을 당하는 것이어도.

 다니엘은 자신이 지내는 헬스장 쪽방을 둘러보았다. 다니엘은 방을 따로 구할 필요 없이 헬스장 쪽방에서 지낼 수 있는 점에 늘 감사했다. 고작 가위눌림으로 이곳을 떠날 순 없었다. 다니엘은 헬스장 벽면에 걸린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포스터를 떼어버렸다. 그리고 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스님, 저 요즘 가위에 눌려요. 그런데 남자예요. 네, 심지어 살아있어요. 레그 프레스도 무사히 하던 걸요.


 이모와는 바닷가 한방카페에서 만났다. 이모는 다니엘이 태어나기 전 출가를 한 비구니였다. 다니엘은 영적인 문제라면 다른 사람보다 이모에게 묻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를 닮은 유령이니 어쨌거나 서양 놈일 텐데, 동양의 부적이 통하는가 따위는 차치하더라도 말이다. 두 사람은 물에 발을 담그고 족욕을 했다. 적당한 수온,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평화로운 바다. 그동안 통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한 탓인지 졸음이 밀려왔다. 그런 다니엘에게 이모가 먼저 말을 걸었다. 요즘은 잘 지내니, 헬스장은 잘 되고 있니, 같은 지극히 일상적인 대화들. 이모의 매끈한 두상만 아니었더라면 화목한 가족의 한 장면처럼 보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머잖아 그 일상적인 대화 주제는 동이 났다. 두 사람은 살갑게 대화를 나눌 만큼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니, 무엇을 말하면 좋을지 알 수 없었다. 30년 전, 이모는 다니엘을 임신한 엄마를 두고 출가해버렸다.

 어떤 관계에서 떠남과 남겨짐이 존재한다면, 다니엘의 엄마는 항상 남겨지는 쪽이었을까. 그녀의 부모는 일찍 세상을 떠났고, 다니엘의 아빠는 임신 소식을 듣곤 잠적했다. 그리고 그녀의 하나뿐인 동생. 엄마가 지극히 아끼고 보살폈던 그 동생은 부처의 뜻을 따르겠다며 엄마를 두고 산으로 들어갔다. 모두가 떠났지만 엄마에게는 다니엘이 남아 있었다. 엄마는 다니엘을 혼자서 키웠고, 아마도 다니엘에게 최선을 다했다. 그와 동시에 엄마는 이따금 다니엘을 때렸고―아마 다섯 살 때부터였을 것이다―, 집에 돈이 없고 자신은 힘이 없다며 자주 죽는소리를 했다. 다니엘은 엄마를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게 잘 안 되자 다니엘은 엄마의 미래를 위해 병원이라든가 상담 센터에 가려고 했지만, 그럴 때마다 엄마는 창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다고 말했다. 다니엘은 울고 있는 엄마를 보면 미안하다고 말했다. 엄마는 다니엘의 사과를 들으면 울음을 멈추고 눈썹을 찡그렸다. 다니엘은 자신에게 아빠가 왜 없을지, 그런 것들은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엄마에게도 다니엘이 나쁜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매개체일까 따위의 생각은 가끔 했다. 다툼의 끝은 언제나 모자의 포옹으로 끝났다. 엄마가 있었으니까 지금까지 살아온 거야. 그렇지? 엄마는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고 스무 살이 되던 해 다니엘은 집을 나왔다.


 다니엘은 이모에게 모든 것을 털어놓았다. 헬스장을 오픈하긴 했지만 집세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어 헬스장에 달린 쪽방에서 지낸다는 것, 최근 자꾸 가위에 눌려서 그런 문제에 대해 상담하고 싶다는 점. 이모는 다니엘에게 부적을 쥐여 주었다. 달마도사가 그려진 부적인데 아무 무당에게 부적을 써 달라고 하는 것보다는 이러는 편이 낫다고, 효과는 확실할 거라고 당부했다. 더불어 이모는 한국에 들어온 한자로 된 부적 중에는 중국에서 기원된 게 있고, 인도에서 기원된 게 있다고, 불가류 부적은 인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요즘은 불교니 달마도사니 하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지는 바람에 사이비들이 그것을 악용하기도 하는데 만약 부적을 쓸 일이 있다면 조심해라, 그런 말까지 덧붙였다. 이모는 혹여 이런 쪽에 무지한 다니엘이 사이비에게 걸려 덤터기라도 쓸까 봐 걱정하는 눈치였지만, 사이비든 아니든 다니엘이 이모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만은 다를 게 없어서 다니엘은 헛기침을 하며 눈치껏 화제를 돌렸다.

 왜 한방카페에서 보자고 하셨나요? 그것도 이런 바닷가에서…….

 방금까지 부적에 대해 연설하던 것이 무색하게, 이모는 다니엘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이모는 창문 바깥을 바라보았다. 파도가 끊임없이 몰려오고 하얗게 부서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모는 다니엘이 예상하지 못했을 답을 내놓았다.

 비구니는 비구에 비해 지켜야 할 규율이 많으니까.

 다니엘도 들어본 적이 있다. 남자 승려인 비구보다, 여자 승려인 비구니가 지켜야 할 규율의 가짓수가 훨씬 많다는 것을. 하지만 그게 만남의 장소가 바닷가 한방카페가 되어야 한다는 데에 대한 답변이 되진 못했다. 어느덧 이모는 물에서 발을 빼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있었다. 이모는 비구니가 되기 위해 자신의 삶에서 무엇을 닦아내야 했을까.

 가끔은 이런 것도 괜찮지 않니?

 다니엘은 종교인의 말이란 도통 이해할 수 없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 피가 섞인 가족임에도 멀게 느껴졌다. 다니엘은 머리카락이 없는 이모의 두상을 바라보았다. 이모에게 머리카락만 있었어도, 또는 만나기로 한 장소만이라도 한방카페가 아니었더라면 사찰에 방문한 기분은 느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다니엘은 이모를 이모로 대해야 할지 스님으로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긍정도 부정도 아닌 애매한 태도로 고개를 주억이고 말았다.


 부적을 전하고 조카의 안부도 확인한 이모는 먼저 가보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니엘이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지만, 이모는 사찰음식을 먹은 지 오래되어 속세의 음식을 잘못 먹으면 탈이 난다느니, 절이 산 중턱 깊숙이에 있어 일찍 출발해봐야 한다느니 하며 기어코 자리를 떴다. 이모는 돌아서기 전 다니엘에게 물었다.

 너희 엄마도 알고 계시니?

 이모와 다니엘의 눈이 마주쳤다. 다니엘은 고개를 저었다. 이모는 혼잣말을 하듯 그러니, 하곤 카페를 나섰다. 조만간 또 보자꾸나. 기약 없는 인사만이 다니엘과 함께 남겨졌다. 엄마는 제가 어떻게 지내는지도, 이모가 어떻게 지내시는지도 모르죠. 말을 삼킨 것만으로 목구멍에서 비린내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분명 다음을 예고하는 인사임에도 다니엘은 이모를 다시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모는 다니엘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이모가 아니었을 것이다. 출가를 하게 되면 속세의 인연 같은 것은 속세에 다 두고 가니까. 엄마와 다니엘은 다만 선택받지 못했을 뿐이다.

 다니엘은 조금 느긋하게 카페를 나왔다. 문득 휴대전화를 확인했을 때 다니엘에게는 문자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엄마였다.

 다니엘, 엄만데 2천만 어떻게 좀 빌려 줄 수……, 또는 네 명의로 대출을 받아서…….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말했다. 견뎌낸다면, 챔피언이 될 것이라고. 아놀드 슈워제네거는 바벨을 우승 트로피처럼 들었던 덕분에 세계적인 보디빌더이자 배우가 되었는데, 다니엘은 무엇을 어떻게 더 견뎌야 하는 걸까. 그럼 무엇이 될 수 있을까. 떠난 이모의 빈자리를 견디고 나날이 커가는 다니엘을 견디고 나아가 자기 자신을 견뎠을 엄마는 챔피언이 되었나. 집을 나오기 전 다니엘은 엄마와 딱 한 번, 영화를 같이 본 적이 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나오는 〈터미네이터〉였다. 엄마는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싫다고 했다. 다니엘은 이제 좀 알 것 같다.

 다니엘은 이모에게서 받은 부적을 손에 꾹 쥔 채 엄마의 메시지를 바라보았다. 다니엘의 옆에는 노을빛을 받아 주황색으로 물든 바다가 광활히 펼쳐져 있었지만, 그런 멋진 풍경에도 다니엘은 어쩐지 챔피언은커녕 초라하고 작은 존재가 된 것만 같았다. 다니엘은 바벨을 드는 기분으로 엄마에게 보낼 답장을 써 내려갔다.

내일 갈게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다니엘은 해안선을 따라 걸어갔다. 족욕의 여운인지 나른한 기분이었다. 헬스장에선 아직도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유령이 레그 프레스를 하고 있을까. 돌아가면 유령이니 머신이니 하는 건 미뤄두고 일단 푹 잠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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