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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생각_마지막이라면

시간이 주는 선물

by 에이브 Ave


무엇을 하든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면 위안이 된다. 힘들어도 죽을 것 같아도 이 일을 하는 것이 이번이 마지막이라면 조금은 정말 조금은 숨 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감사하게된다. 오늘이 마지막이라면 이렇게 힘들게 고생하는게 마지막이라면 이 사람을 마주하는게 마지막이라면 문득 내가 얼마나 행복하고 축복받은 사람인지 생각하기 때문이다. 죽도록 미워하던 사람이지만 그 사람을 못보게 된다고 하면 기쁜 마음인지 슬픈 마음인지 분간이 안되고 나에게 상처만 가득 안겨주는 사람이지만 그 사람이 사라지게 된다면 기뻐해야할지 슬퍼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이렇게나 마지막이라는건 사람의 마음을 헷갈리게 만든다.


고등학교 때의 일이다. 하루하루가 너무 버겁고 힘들어서 이런 나날들의 끝이 찾아오기는 할까 막막하고 불안했다. 그때는 캄캄하고 긴 터널의 끝이 보이지 않아서 두려웠다. 마지막이 찾아올 거라는 희망도 꿈도 아무것도 없었다. 내 마음을 위로할 방법을 몰라서 나를 더 구석으로 절벽으로 내몰았다. 그렇게 마지막 날이 찾아오고 아직도 그 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나를 절대 보내주지 않을 것 같았던 방과 침대가 내 등 뒤에서 나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고 절대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던 그들의 시선에서 나는 사라질 수 있었다. 방을 빼곡히 메우고 있던 나의 슬픔도 내 짐가방에 덩달아 실려서 지금도 나와 함께 자리하고 있지만 그래도 그때의 막막한 순간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아무렴 모든 일에는 마지막 순간이라는게 찾아온다. 버티고 버티다 정말 이제는 무너져내릴 것만 같은 순간에 꼭 기억해야할 건 이 순간에 마지막이라는게 찾아온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찾아오면 정말 우습고 어이가 없지만 이 순간이 조금은 정말 손톱만큼은 그리울 수도 있다는거다. 그런게 시간의 흐름이고 시간의 힘인 것 같다.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그 순간들이 약간은 그리워지는게 어쩌면 시간이 주는 선물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간은 우리에게 마지막을 알려준다. 그리고 우리는 마지막을 준비해야하는 방법을 연습하고 공부해야한다.

마지막 하늘

오늘 아침 일어나는 순간에 나는 나에게 나지막히 말을 건넸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정말 마지막이야. 신나지않니?’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한지도 여느덧 3달이 넘어가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신날 수 밖에 없다. 3달 동안 힘든 고비도 많았고 포기하고 싶었지만 그 힘듦에도 보상이 주어지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난 3달동안 힘들었던 순간들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진다. 이런 보상이 올 줄 알았다면 조금 더 즐길걸 싶기도 하다. 물론 알았다고 해도 힘든건 똑같았겠지만 그래도 조금은 정말 조금은 이 순간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는걸 알면 더 감사할 수 있었을텐데. 그래도 나는 만족한다. 나의 여정의 마지막이 뜻깊은 글로 마무리되어 감사하다.

앞으로 이런 저런 일들이 더 많아지겠지. 그래도 이제는 나는 배웠다. 이 세상에 감사하지 못할 일들은 없다는걸. 아무리 역겹고 억울하고 슬프고 화나고 죽을 것 같이 어려운 상황이 생겨도 그리고 그런 나날들을 살아도 언젠가는 그 날들의 마지막이 찾아온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걷는 순간에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수렁에 잠기는 순간에도 언젠가는 어느 날에는 어느 순간에는 빛을 보리라 생각하면 조금은 아주 조금은 견딜만해진다. 모든 일에는 마지막이 있으니까. 그렇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 모두 마지막을 마주할테니까. 그러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조금은 정말 조금은 쉬워진다. 가벼워진다. 가능해진다. 이게 바로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자 위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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