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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도하 Mar 09. 2022

미워해야 사는 세상

감정이라는 강

여러분은 지금 인간은 입체적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증명되는 순간을 보고 있다. 바로 직전 글에서 감정을 꾹꾹 눌러내고 현실을 악착 같이 버텼다던 사람이, 지금은 '감정은 흘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목격 중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모순인가 싶겠지만 사실 저 두 명제는 둘 다 맞는 말이다. 정확히는 후자가 가능한 사람이 되어야 더 긴 시간, 더 건강하게 전자도 가능한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다. (그걸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 난 한 때 감정을 흘려보낼 줄 모른 대가로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고, 저 귀한 사실을 심리 상담 선생님을 만난 뒤에야 깨달았다. 아마 우리 중 대부분은 감정을 참고 억누르는데 훨씬 익숙할 거다. 어려서부터 살인도 면하게 해 준다는 인내의 가치를 배워왔으니까. 그러나 인내가 유일한 정답이 될 수는 없다. 자신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그저 흘려보낼 줄도 알아야 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그러니까, 때는 바야흐로 내가 매일 눈물범벅인 밤을 보내던 문제의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난 바로 밑에 들어온 신입 후배와 지독한 갈등을 겪고 있었다. 갈등의 원인은 일이었는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그 친구는 정말 기가 막히게 일을 못했다. 물론 신입이 일을 못하는 건 당연하지만(대체로 큰 기대를 갖지도 않는다.) 세상만사에는 정도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후배님은 아래 사항들 중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지켜주질 않았다. 무려 근 1년간.

(1) 업무 기한 준수하기
(2) 기한이 늦어질 경우에는 미리 노티 하기
(3) 실수 숨기지 않기 (거짓말 NO)
(4) 메모하기 (해야 할 일/피드백)
(5) 맡은 일에 대해 책임 의식 갖기

그때만큼 정직원 해고가 어려운 우리나라 고용 시스템이 원망스러웠던 적이 없다. 1년 동안 새는 바가지에서 흘러나온 일이 고스란히 내 책상에 쌓이자, 함께 쌓여가는 분노를 막을 길은 없었다. 양껏 쌓인 분노를 양분 삼아 미움은 쉽게 피어났다. 그때부터 어딘가 잘못되기 시작했다.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배웠기 때문일까. 미워하는 마음이 생길 수록 하면 안 되는 행동을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커지는 미움의 크기만큼 마음 한 편에 알 수 없는 불편함과 죄책감이 적립됐다. '후배를 품을 줄 모르는 나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이 들어 매일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고 외면했다. 그렇게 1년 가까이 시간이 흐르자 나 하나쯤을 짓누르기에 충분할 만큼, 눌러 담은 감정의 무게는 무섭게 불어나 있었다. 아마 그 무렵부터였을 거다. 귀가하는 새벽 택시 안에서 매일 사고가 나게 해달라고 빌었던 게. 도로 위를 달리는 차들을 보면 치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튀어나온 게. 그렇다. 우울증의 시작이었다.


무교였기 때문인지 애석하게도 내 기도는 먹히질 않았고, 바라던 사고는 도통 일어나질 않았다. 이럴 바에는 직접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빠르겠다는 생각이 결심으로 바뀔 즈음, 더는 혼자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했다. 어리석은 중생이 지옥을 벗어나려면 지장보살의 구제를 받아야 한다더니. 지옥이나 다름없는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나 또한 지장보살, 아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벼랑 끝에서 만난 상담 선생님은 ¹칠정(七情) 중 ²노애오욕(怒哀惡慾)에 파묻혀 있는 날 바라보며 말했다.


“왜 미워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세요?”

"... 네?"

"도하 씨에게 숙제를 하나 내줄게요. 다음 주까지 마음껏 그 친구를 미워하고 오세요.


사람을 미워하라니. 그래도 된다니. 상담실을 나서며 정말 그래도 괜찮은 건지 수없이 곱씹었지만 당시 마음에는 의구심에게 계속 내어줄 자리가 없었다. 어차피 다른 방도도 없던 터라, 다시 사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으며 주어진 숙제를 착실하게 수행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정말 그로부터 일주일간, 미움이 고개를 들 때마다 '아, 이러면 안 되지.'라고 생각하던 걸 그만뒀다. 미워하는 마음이 들면 그냥 미워했다. 대체 나한테 왜 이러는 걸까 원망도 해봤다. 사람을 미워하면 뭔가 큰 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그 걱정이 무색하리만치 세상은 이전과 다를 게 없었다. 그동안 꾸역꾸역 참기만 한 내가 바보 같았다. 약간의 억울함과 신기함, 그 어디쯤을 배회하다 보니 일주일은 금세 지나갔다. 다시 돌아온 상담 시간,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는 후기에 선생님은 빙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감정은 강과 같아요. 흐르는 대로 둬야 해요. 그런데 도하 씨는 자기 마음속에 상자를 하나 두고, 그 안에 끝없이 흘러가는 감정을 담은 거예요. 이미 들어갈 자리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안에 억지로 욱여넣으려고 하니 얼마나 힘이 들었겠어요?”


듣고 보니 그랬다. 후배가 한결같을 동안 팀의 상황과 노동 시간은 안 좋은 쪽으로 변했다. 우리가 만난 곳은 회사였고, 난 그의 부모도, 선생도 아니었다.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변하지 않는 그를, 어떤 식으로든 조직과 나에게 해를 가하는 사람을 한없이 인정으로 품어내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애초에 예수도 석가모니도 아닌 내가, 미워하는 마음이 드는 것조차 부정하려던 것 자체가 교만이었다.


교만함에 대한 비싼 값을 치른 뒤로는 최소한 감정을 쳐다보지도 않고 상자에 가둬버리는 짓은 하지 않는다. 흘러오는 모습을 똑바로 바라보고, 상자에 담을지 흐르던 대로 바라볼지 판단한다. 필요한 경우에는 감정을 억누르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그저 흘러가게 두면 길게 머무르지 않고 이내 사라진다. 그렇게 감정을 흘려보내는 법을 알고 나서야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게 됐다. 정확히는 그제야 제대로 살 수 있게 됐다고 하는 게 맞겠다.


요즘 주변 사람들의 고민을 들을 때면, 종종 감정은 감정일 뿐, 그 자체로는 누구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미우면 미워하고, 슬프면 슬퍼하고, 화나면 화를 내라고 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위해로 실체화되지 않는 이상, 그 누구도 감정이 생긴 것 자체를 죄악시할 수 없다. 심지어는 그 감정의 주인인 본인들조차. 이제부터라도 툭하면 자신을 향해 너무 쉽게 허락하는 손가락질을 멈춰야 한다. 우리는 매일 화날 일도, 슬픈 일도, 이상한 사람들도 너무나 많이 만나는 세상을 살고 있으니까. 적어도 숨은 쉴 수 있도록 자기감정에게만큼은 너그러워지면 좋겠다. 그래야만 살 수 있는 세상이다, 그래야만.


* 칠정(七情):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일곱 가지 감정. 기쁨, 분노, 슬픔, 즐거움, 사랑, 미움, 욕심. 희노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 노애오욕(怒哀惡慾): 칠정(七情) 중 분노, 슬픔, 미움,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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