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그녀들처럼
그렇구나! 새삼 놀랬어. 우리가 많은 시간 많은 것을 함께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리 긴 시간은 아니였구나! 내가 그 회사에서 2년 반 다녔나? 짧은 시간을 함께했더라.
네가 그만두기 전에 우리가 만나서 알고 있을 거라 생각하지만 또 글로 얘기하는 거랑 다를 수 있으니까 이야기해볼까? 그리고 5살 아니고 3살 연하야.
기억하려나? 나 갤로퍼 몰고 다녔잖아. 북삼에서 왜관까지. 그러다가 현장에 직원이 오면서 카풀을 했어.
이젠 이름도 기억 안 나는 사람인데... 빼빼로데이라고 나한테 빼빼로를 주더라고 물론 카풀해줘서 고맙다는 의미였으리라 생각해. 근데 그때만 해도 내가 짠 과자는 좋아하는데 단과자를 안 좋아하던 때라서 현장 막내였던 남편이 2층 우리 사무실에 있던 커피자판기 사용하러 점심시간마다 올라왔거든. 그때 내가 과자 주면서 ‘맛있게 드세요’하고 줬거든.
그러고 그날 저녁에 학교 갔다가 돌아오는데 문자가 오더라고 ‘저 백곰인데요’하면서 그렇게 문자 주고받게 되었고 사소한 인사말 나누는 사이가 되었지. 그리고 주말에 내 첫 직장 사수 언니 결혼식이 있어서 서울에 가야 했어. 너도 아는 중학교 친구들과 찜질방에서 만나서 노는데 문자 와서 그러더라 사귀는 사람 정말 없으면 자기랑 사귀자고 그때까지 내가 남자 친구 있는 줄 알았대. 없다고 하니까 그때 자재과 남직원 있었잖아 이름이 뭐였지? 그 사람이랑 만나는 줄 알고 있었대. 아마도 둘이 영화 보고 왔다는 게 현장에서 얘기가 돌았었나 보더라고
그리고 비전에 파견가 있으면서 JJ와 내 얘기까지 전부 알고 있었고(심지어 JJ가 남편에게 지금 일을 알려준 사수라고 하더라) 사실 그때는 결혼보다는 그냥 누군가를 만나는 게 필요했던 시기였고 그래서 ‘YES’를 말했는데 나도 남편이랑 연애를 2년이나 하게 될 줄 몰랐어. 남편은 아직 모르지만 중간에 나 혼자 헤어질까 하는 고민도 했었거든. 집안 사정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모든 게 힘들고 버거울 때였거든. 그때 그 꿈을 꾼 거야.
내가 예지몽 비슷한 걸 꾸잖아. (알지? 내가 너희 큰 애 태몽도 꾸고, 너한테 안 좋은 일 생긴 것 같아서 전화하고 했던 거) 나 무지하게 귀여워해 주시던 왕할머니가 꿈에 나타나셨어.(엄마의 친할머니야.) 그러고 검은 양복을 입은 여러 명의 남자들이 무릎 꿇고 고개 숙이고 앉아있는데 한 명을 가리키면서 “아가. 이 놈이다.”하시는데 보니 지금 남편이더라.
그러고는 아~ 얘가 나랑 인연인가 보다 했지. 그러고 보니 나 청혼 아닌 청혼받는 것도 이 할머니가 알려주셨네. 꿈에 금반지를 주시면서 가져가라시길래 손에 쥐었는데 다음날 “우리 결혼해야 할 것 같은데”하더라. 결혼하자도 아니고 해야 할 것 같은데 라니...
암튼 그렇게 결혼한 것 같아. 친정의 반대도 없이, 시댁의 반대도 없이.
아마 네 말대로 인연이 되려고 그랬겠지? 우리 둘 성격에 양가 누구라도 반대하면 결혼을 엎었을 성격들이니까. 인연이란 게 참 묘해. 내가 이런 사람이랑 결혼할 줄 몰랐는데 말이야.
나는 아마도 파파 콤플렉스가 있었나? 가끔 이 인간 우리 아빠 같아. 말하는 투나 몸매도.
딸들은 아빠 닮은 남자랑 결혼한다고 하긴 하던데 몸매가 닮은 건 우짜지?
사랑한다는 감정이 결혼의 전제조건은 아닌 것 같아. 미칠듯한 사랑은 따로 두고 추억으로 가지고 가야 하고 결혼이라는 인연을 맺는 사람은 영 엉뚱한 곳에서 나타나더라.
마치 마작 같아. 너 마작이란 게임 알아? 홍콩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네모난 패를 줄 세워서 던지는 건데 우리나라 고스톱 분위기야. 그게 온라인 게임으로는 쓰촨 성으로 나왔는데 그 게임은 같은 그림 맞추기 같은 거야. 같은 그림을 가진 패를 찾아서 짝을 지어주면 하나씩 패가 없어지고. 모든 패를 지우면 이기는 게임인데. 처음 눈에 들어온 두 개의 패를 연결하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안되더라고. 어떨 때는 너무 쉽게 되기도 하고. 그래서 포기하고 다른 것들 먼저 하고 있으면 엉뚱한 곳에서 짝이 나와. 그 게임을 하면서 ‘아~ 인연은 따로 있구나!’했거든.
내가 짝사랑 때문에 힘들어할 때 “그냥 누가 이 놈이다”하고 찍어주면 좋겠다고 했잖아. 근데 진짜 그렇게 결혼했어. 미칠듯한 사랑을 한건 아니지만 이 사람은 나만 챙겨줄 것 같고 서로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 생각했고. 홀시어머니 모시는 건 지금 생각하면 참 철없고 진짜 계산 없었다 싶지만 같이 살아도 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어찌 보면 서로에게 모든 게 악조건이었는데 그때는 그 조건들이 안 보이고 그냥 이 사람만 보이더라. 네가 말하는 콩깍지가 이건가? 서로 쿵작이 잘 맞아서 퉁퉁거리면 달래주고 버럭하고 화냈다가도 미안하다 표현하고 이야기하면 자기 생각이 달라도 우선은 들어주는 좋은 사람이라서 17년을 함께하고 있는 것 같아. 다시 그때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할 거야.
이거 마치 고등학교 시절에 새로 오신 선생님께 첫사랑 얘기해달라고 해서 듣는 기분이네.
오늘도 남편은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초록색 화면들을 보여주고 있어. 그래. 남편도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겠지. 대신 난 우리 방에서 엎드려 너한테 보낼 글을 쓰고 이걸 끝내고 나선, 바인더 정리에 독서노트 2권 정리하고 미쳐 못 읽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어.
신혼시절 팔베개해주면서 누웠는데 서로 그 자세가 너무 불편한 거야. 근데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신혼에는 그렇게 해야 하는 것 같잖아. 도저히 안 되겠어서 “우리 그냥 서로 편하게 자자”하면서 서로 편한 자세로 자기 시작했거든. 잠귀 밝은 남편은 내가 옆에서 책 보려고 스탠드 켜는 것도 힘들어해서 나도 좀 눈치가 보였는데 요즘은 게임한다고 거실에 있는 시간이 길다 보니 혼자 여유롭게 불 켜놓고 하고 싶은 것 할 수 있어서 좋아.
오늘도 이러다가 불 켜놓고 잠들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