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오르페우스
치킨 냄새가 가득한 집안에서
미쓰리의 손가락이 키보드 위를 춤추듯 움직였다.
한 손엔 일회용 장갑을 낀 손으로 치킨 다리를 들고도
그녀의 한 손 타이핑 속도는 최민호보다 빨랐다.
"어떻게 이렇게 빨리 칠 수 있어요?"
"페넬로페 언니를 보고 자란 덕분이죠. 크리미널 마인드 시즌 1부터 15까지
다섯 번씩 정주행하면서 화이트해커 강의도 들었거든요."
최민호는 이 여자가 단순한 덕후가 아니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다.
"잠깐, 엔드스톤사 컴퓨터를 해킹한다고요? 어떻게 여기서..."
미쓰리가 돌아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까 형사님이 붙잡혀갈 때, 그곳 컴퓨터에 제가 만든
해킹 프로그램을 살짝 깔아놨어요. USB로요."
"뭐라고요? 언제?"
"경비원들이 형사님 때리는 동안, 전 옆에 있던 컴퓨터에 USB 꽂고 있었죠.
아줌마 연기하면서요."
최민호는 말문이 막혔다. 이 여자, 정말 무서운 사람이었다.
"자, 이제 진짜 시작이에요."
화면에 엔드스톤사의 내부 서버가 나타났다.
미쓰리는 능숙하게 폴더들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건 인사 파일... 연구부서 연구... 어? 여기 이상한 게 있어요."
그녀의 표정이 진지해졌다.
"과거 인테리어 공사를 위해 인력을 모집했던 기록이 있어요.
그런데 채용 조건이 이상해요."
"뭐가 이상한데요?"
"'신체 건강한 자' 이건 뭐 그럴 수 있는데... 채용 검사에 피검사까지 있어요.
혈액형, DNA 샘플링, 뇌파 검사... 이건 인테리어 인부 채용이 아니라
실험 대상자를 모집한 거잖아요."
최민호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리고 여기... '노-'라는 폴더가 있네요."
미쓰리가 폴더를 열자 동영상 파일 3개가 나타났다.
첫 번째 파일을 클릭하자 화면에 한 노숙자의 모습이 나타났다.
영상 속에서 누군가가 노숙자에게 밥을 건네고 있었다.
노숙자는 고맙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그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나타났다.
"소주가 없으면 서운하죠?"
노숙자가 껄껄 웃으며 소주를 받아들였다.
그가 소주를 마시며 고마워하는 순간,
뒤에서 검은 옷의 인물이 무언가를 손에서 쭉 펴더니
그대로 노숙자의 목을 조르기 시작했다.
"헉!"
최민호는 반사적으로 미쓰리의 노트북을 덮으려고 손을 뻗었다.
이런 잔인한 장면을 일반인이 보는 건...
그런데 미쓰리의 표정은 무표정 그 자체였다.
눈살 하나 찌푸리지 않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화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미쓰리..."
"이 사람, 아까 우리가 실험실에서 만났던 경비원 같은데요.
손등의 문신이 똑같아요. 용 머리 부분이 검지 쪽을 향하고 있는 거 보이시죠?"
최민호는 소름이 돋았다.
이 여자는 살인 장면을 보면서도 침착하게 분석을 하고 있었다.
영상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구방법 - 교살. 됐어, 이제 옮기세요."
"어디로 옮기는 거지?"
미쓰리가 두 번째 영상을 열었다.
이번에는 다른 노숙자였다.
이번엔 약물을 주입하는 장면이었다.
세 번째 영상도 마찬가지로 노숙자를 대상으로 한 잔혹한 실험이었다.
"이건... 살인이에요."
"정확히는 인체실험이죠. 그것도 가장 취약한 계층을 노린."
미쓰리가 다른 폴더를 열었다.
"여기 실종자 명단이 있어요. 박영수, 이순자... 총 15명.
모두 노숙자거나 신원미상자들이에요."
"아무도 찾지 않을 사람들을 골랐군요."
"네, 그리고 이 사람들이 모두 그 지하 실험실에 있는 거겠죠."
최민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자료들을 모두 백업해두세요. 증거로 써야 해요."
"이미 하고 있어요. 클라우드 서버 3곳에 동시 업로드 중이에요."
그때 미쓰리의 화면에 경고창이 떴다.
"어? 누군가 역추적을 시작했어요."
"뭐라고요?"
"엔드스톤사 쪽에서 해킹을 감지한 것 같아요. 우리 위치를 찾고 있어요."
미쓰리의 손가락이 더욱 빨라졌다.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실행시키며 추적을 막고 있었다.
"얼마나 걸릴까요?"
"제가 최대한 막아볼게요. 하지만 30분 이상은 힘들 것 같아요."
"그럼 빨리 중요한 자료부터 빼내요."
미쓰리가 급하게 파일들을 다운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때 한 폴더가 눈에 띄었다.
"'프로젝트 오르페우스'?"
"그게 뭐예요?"
"잠깐만요... 이건..."
화면에 나타난 문서를 보고 미쓰리는 눈을 깜박였다.
'프로젝트 오르페우스 - 반려동물 화장 후 보석 가공 서비스'
"어? 이거... 반려동물 관련 사업이네요?"
최민호도 화면을 들여다봤다.
"10년 전 자료군요. 반려동물을 화장한 후 그 재를 특수 가공해서 보석으로 만드는
사업이었던 것 같은데..."
미쓰리가 문서를 더 자세히 읽어나갔다.
"여기 보니까, 원래는 반려동물 화장차량 제도를 도입하려고 했었나 봐요. 그런데... 어?"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연쇄살인범 김범상이라는 사람이 그 화장차량을 구입해서 살인한
사체를 소각하는데 사용했대요. 그래서 정책이 취소되었고..."
"그래서 대안으로 나온 게 이 보석 가공 사업이군요."
최민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반려동물을 화장한 후 그 재에 돌가루나 보석 원석을 섞어서 가열한 다음,
나오는 알갱이를 세공해서 보석으로 만드는..."
"그런데 이게 왜 여기 있는 거죠?"
미쓰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10년 전 실패한 반려동물 사업과 지금 이 회사의 인체실험이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거지?"
최민호도 고개를 갸우뚱했다.
"설마... 이 기술을 사람한테 응용한 건 아니겠죠?"
"아니에요, 형사님. 여기 보세요."
미쓰리가 다른 파일을 열었다.
"이 프로젝트의 주된 기술은 '고온 소각 후 재를 특수 물질과 혼합하여 가열하는 기술'이었어요.
그리고 여기 실험실 시설 명세서를 보니까..."
화면에 실험실의 설계도가 나타났다. 지하 실험실의 한쪽 끝에 대형 소각로가 표시되어 있었다.
"이거... 설마..."
최민호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실험이 끝난 후 증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오르페우스 프로젝트의 소각 기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 같아요."
미쓰리의 목소리가 떨렸다.
"반려동물 화장 기술을 사람에게... 그것도 살아있는 사람들을 실험한 후..."
"그럼 지금까지 실종된 15명은..."
"모두... 모두 흔적도 없이..."
두 사람은 말을 잇지 못했다. 반려동물을 위한 아름다운 추모 서비스로 시작된 기술이
이런 끔찍한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니.
"여기 더 있어요."
미쓰리가 또 다른 파일을 열었다.
"소각 후 나오는 재를 특수 처리해서 비료로 만들고 있네요. 그리고 그 비료는..."
"어디에 쓰이는 거죠?"
"회사 옥상 정원과... 이 근처 공원들에 공급하고 있어요."
최민호는 구토감을 느꼈다.
"이 미친 놈들이... 사람을... 사람을..."
"그런데 형사님, 여기 이상한 게 또 있어요."
미쓰리가 다시 화면을 가리켰다.
"이 오르페우스 프로젝트 관련 문서들이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어요. 가장 최근 파일이...
일주일 전 날짜네요."
"일주일요?"
"네, 그리고 여기 보니까 '새로운 원료 공급원 확보'라는 메모가 있어요."
최민호는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새로운 원료라니... 설마 또 다른 실종자들을?"
"아니에요, 형사님. 여기 보세요."
미쓰리가 가리킨 곳에는 충격적인 내용이 적혀 있었다.
"병원과 연계해서 무연고 사망자들의 시신을 공급받는다는 계약서예요. 합법적인 루트로..."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내용도 있네요."
최민호가 문서를 읽어 내려갔다.
"그래서 실험 대상자들을... 이 미친 놈들이..."
"형사님, 이거 진짜 큰일이에요."
미쓰리의 손가락이 떨리기 시작했다.
"10년 전 연쇄살인범이 화장차량으로 시신을 처리했던 것처럼, 지금도 그 기술로..."
"그런데 이번엔 훨씬 더 정교하고 체계적으로..."
최민호가 주먹을 쥐었다.
"사람들은 실험 대상이 되고, 실험이 끝나면 완전히 증거까지 없애버리는..."
그때 미쓰리의 휴대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미쓰리씨, 지금 당장 그곳을 떠나세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분명 동영상에 나온 검은 정장 남자의 목소리였다.
"어떻게 제 번호를..."
"당신들이 오르페우스 프로젝트 파일을 열어본 순간부터 추적이 시작됐습니다.
10분 안에 도착할 겁니다. 살고 싶으면 도망치세요."
"잠깐만요! 오르페우스 프로젝트가 뭔지 알고 있어요?"
미쓰리가 급하게 물었다.
"반려동물 화장 기술... 하지만 지금은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죠. 당신들이 너무 깊이 파고들었어요."
전화가 끊겼다.
"형사님, 우리 여기서 나가야 해요. 지금 당장!"
미쓰리는 급하게 노트북을 닫고 USB 몇 개를 챙겼다.
최민호도 서둘러 일어났다.
"저 사람들이 오르페우스 프로젝트를 그렇게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잖아요."
"그럼 우리가 알아낸 것도 다 알고 있다는 뜻이군요."
두 사람이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검은 정장을 입은 남자들이 나타났다.
"이미 늦었네요."
미쓰리가 최민호의 손을 잡았다.
"옥상으로 가요!"
두 사람은 계단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뒤에서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막다른 길이에요!"
"아니에요, 제가 비상탈출로를 만들어뒀어요."
옥상에 도착한 미쓰리는 환풍구 뒤에 숨겨둔 로프를 꺼냈다.
"CSI 시즌 8에서 봤거든요."
"지금이 그걸 자랑할 때예요?"
두 사람은 로프를 타고 건물 뒤편으로 내려갔다.
다행히 추격자들은 아직 옥상에 도착하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죠?"
최민호가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가 아는 안전한 곳이 있어요. 거기로 가서 대책을 세웁시다."
어둠 속을 뛰어가면서 미쓰리가 중얼거렸다.
"10년 전 연쇄살인범이 사용했던 기술이... 지금은 이렇게..."
"그리고 그 기술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최민호도 이를 악물었다.
"형사님, 오르페우스 프로젝트의 진짜 목적을 알아낸 것 같아요."
"뭐죠?"
"아마 처음에는 정말로 반려동물을 위한 서비스였을 거예요. 하지만 그 기술이 완전한
증거 인멸에 사용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은 거죠."
"그래서 그 기술을 이용해서..."
"인체실험을 하고, 실험이 끝나면 모든 증거를 완전히 없애버리는..."
두 사람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떠난 자리엔 차가운 밤바람만이 불고 있었다.
건너편 아파트 옥상에서 검은 정장의 남자가 그들이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고 있었다.
"도망칠 곳은 없을 거다."
그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번졌다.
"오르페우스 프로젝트는... 너무나도 완벽한 시스템이니까."
그 남자의 손에는 10년 전 신문 기사가 들려 있었다.
'연쇄살인범 김범상, 반려동물 화장차량으로 증거 인멸'이라는 제목의 기사였다.
"아이디어를 준 건 고마웠지만... 이제는 우리가 훨씬 더 정교하게 해내고 있어."
바람에 날린 신문 기사가 어둠 속으로 흩어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