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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Josh Kim Mar 10. 2024

EP11:고난이 주는 선물이 있다는 기사님의 이야기

인생의 후회와 아쉬움이 하나도 없으시다는 선생님의 인생 뒷 이야기

이틀 연속 빡빡한 일정으로 인해 피곤함에 지쳐있던 날, 드디어 저녁 일정까지 마무리 후 집에 가기 위해 택시에 파김치가 된 몸을 실었다.


내가 있는 위치를 잘못 보셨는지 기사님이 길을 다르게 가시는 바람에 2분 뒤 도착할 예상 시간이 8분이 되었다. 도착하셔서 멋쩍게 나를 보시는 기사님을 발견하곤 밝은 표정으로 인사를 드리며 택시에 탑승했다.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기사님과의 분위기를 조금 풀어보고자 나는 최근 택시비 인상에 관해서 이야기를 꺼내며 기사님과의 대화의 물꼬를 트기 시작했다.


나 : 요즘 택시비용이 인상되어서 택시 탈 때 겁나더라고요? 인상 후 고객이 많이 줄어드셨겠어요?


내가 밝게 이야기를 건네자, 기사님도 이제야 조금 풀리셨는지 밝게 답변을 해주셨다.


선생님 : 요금 인상으로 이용 고객들이 확실히 줄긴 줄었어요. 그래도 버는 비용은 그렇게 많이 차이 나지 않는 것 같긴 한데 좀 더 지켜보긴 해야 할 것 같아요.

나 : 요즘 점점 물가가 비싸져서 참 걱정이네요.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택시 이용을 줄이는 게 아닐까 싶어요. 요즘 IMF 때와 비교를 많이 하는데, 선생님이 생각하셨을 때는 어떠신가요?

선생님 : IMF도 정말 힘들었지만, 그 이후 대한민국이 금방 빠르게 성장하는 시기에 들어가며 생각보다 빠르게 지나가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렇게 자연스레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나는 기사님께 젊은 시절 아쉬움이나 후회는 없으신지 여쭤보았다. 선생님은 허허 웃으시며 이야기를 이어가셨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선생님과의 인생 수업이 시작되었다.

아쉬움과 후회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저 매일이 살기 위한 발버둥이였다.

선생님 : 허허…. 후회나 아쉬움이라… 저는 사실 인생 살면서 아쉬움과 후회가 없어요.


나는 거의 처음 아쉬움과 후회가 없다고 하시는 선생님을 만나 신기하여 여쭤보았다.


나 : 정말이세요? 제가 택시를 자주 타서 이런 질문을 자주 여쭤보는데, 아쉬움과 후회 없다고 하시는 분은 처음이네요.


선생님 : 그랬나요? 사실, 없다는 말이 저에게는 아쉬움과 후회를 할 시간조차도 주어지지 않은 삶을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저는 어릴 적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사형제의 맏이로서 집안을 이끌어가야 했어요. 어머니가 몸이 편찮으실 때도 이미 아버지는 경제적 활동에 제한이 있으셨고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에는 완전히 경제활동을 하기에 어려운 상황이 되었죠. 그렇기에 장남인 제가 나머지 동생들을 챙겼어야 했어요.


정말 안 해본 일들이 없는 것 같아요. 장터에 나가서 물건을 팔아보기도 했고 다른 집 청소, 농사, 고기손질, 공사판 막노동 등 어릴 때는 있는 게 몸뚱이니까 사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2개 3개씩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어요.


불행 중 다행인 건 제가 젊었을 적에는 대학교를 나오지 않더라도 정말 열심히 해서 사장님들한테 잘 보이면 기술도 가르쳐주시고 또 좋은 직장에 추천도 해주시고 그런 사례들이 있었어요. 운이 좋았죠. 감사한 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고 그분들이 우리 집 사정도 아시고 제가 열심히 하는 걸 좋게 생각해 주셔서 여러 방면에서 도움을 많이 주셨어요. 지금도 그분들을 은인으로 생각하고 있죠.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하면서 결국 도움을 받아 꽤 안정적인 직장에 취업할 수 있게 되어 오랜 시간 동안 거기서 일하며 저와 제 가정 그리고 저희 동생들을 잘 챙길 수 있었죠.


저에게는 동생들 공부도 시키고 먹고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는 것이 가장 중요했거든요. 그렇기에 매일 그 생각만 하느라 다른 거 생각하거나 인생을 다시 돌아볼 새 없이 지냈어요.


물론 이런 상황이 자체가 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하면 아쉬운 거지만 사실상 지금까지도 그런 생각에 빠져 살 시간이 없었죠.


나 : 그런 상황을 물려준 부모님이나 그런 환경에 대해서 비관적으로 생각하거나 그러지는 않으셨나요?


선생님 : 그런 인생이 나쁜가 하고 생각해 보면 아니요 전혀요 아니요 전혀요. 우선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 주신 부모님께는 감사함 밖에 없고 저에게 저희 동생들을 만날 수 있게도 해주셨잖아요? 또 그런 동생들이 제가 열심히 일하고 이런 상황에서도 세상을 살아갈 이유가 되어주고 동생들이 저에게는 유일한 친구이자 안식처이자 행복을 주는 존재였기에 전혀 억울하지 않았어요.



어려움이 준 선물들

나 : 선생님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저도 장남인데, 저희 동생들이 잘하고 있고 저희 부모님도 건강하게 잘 살아계시지만, 저에게도 무언의 부담감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이런 마음으로 살아오시고 그것에 대한 부정적 마음 하나 없이 지내오셨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선생님 : 아유 아닙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오히려 이런 어려움을 통해 얻은 것들이 있어요. 어려움이 준 선물이라고나 할까요.


우선 형제간의 우애를 선물로 주었어요. 어릴 적부터 이런 어려운 시간을 함께 헤쳐 나갔기에 동생들이 원래도 심성이 착하지만, 이런 시간을  통해 형제간이 더 돈독함을 서로 가지고 있을 수 있었어요.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다 커서 형제들끼리 사이가 틀어지거나 잘되면 배 아파하기도 하는데, 저희 형제들은 그런 게 하나 없어서 감사하죠.


정말 단 한 번도 싸우거나 서로 언성을 높인 적이 없었어요. 만나면 서로 웃고 즐기며 참 행복한 시간을 보내거든요. 과자 하나 놓고도, 김치 하나 놓고도 그렇게 지냅니다. 장남으로 이런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하고 감사한지 몰라요. 부모님이 이런 모습을 하늘에서 보시면서 참 얼마나 기쁘실지 생각도 들고요.


가족에 대한 믿음과 신뢰도 선물로 주었어요. 당연히 살다 보면 형제 중에서 각자 힘든 순간들이 오는데요, 너도나도 나서서 서로를 도와줍니다. 내 것 네 것 없이 우선 도와주어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요. 하지만 서로 그 어려움들을 함께 넘어가고 이겨나갈수록 믿음과 신뢰도 같이 올라가요. 세상을 살다 보면 정말 가족밖에 남지 않는 순간들도 오고 정말 친하다고 하더라도 가족만큼 진정으로 도움을 줄 수 없는 것 같아요. 주위 사람들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이니까요. 그때 가족이 든든하게 있다는 것이 삶을 살아가는데 얼마나 위안도 격려도 되는지 몰라요.


또 서로에 대한 존중과 인정도 선물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어릴 적부터 서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함께 자라왔고 장남인 제가 동생들을 위해 얼마나 희생하고 묵묵하게 노력해 왔는지 동생들이 잘 알아주고 저에 대한 존중과 인정을 늘 해주죠. 제가 그렇게 하니 둘째도 저에 의해서 또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주고 또 그 모습을 보고 셋째도 막내도 책임감 있게 살아왔죠. 정말 한 명도 나쁜 길로 새지 않고 그렇게 살아주었어요.


서로 어떻게 삶을 살아왔는지 잘 알기에 각자에 대한 존중과 인정이 있어 형제간 질서도 잘 유지되고 선 넘는 언행도 안 하게 되는 거죠. 어찌 보면 이런 자세가 저희 형제가 우애를 유지하는 방법인 것 같아요.



이 어려움을 이해해 주고 함께해 준 우리 가족의 진정한 히어로

나 : 정말 부럽습니다. 저도 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데, 저희도 나이를 계속 먹어도 그런 사이로 지냈으면 좋겠네요. 정말 궁금한 게 사실 결혼을 하면 가정이 생기기 때문에 서로 이렇게까지 서로 돕고 발 벗고 나서기가 어려울 것 같은데 결혼하시고 그런 갈등은 없으셨나요?


선생님 : 앞에 이야기도 이야기지만 정말 감사한 건 제 아내죠. 정말 천사 같은 사람을 만났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희 집안의 어려운 사정을 결혼 전에도 알고 있었음에도 기꺼이 저랑 결혼을 해줬죠. 아이들 키우고 또 늘 살림이 빠듯했음에도 불평 없이 늘 잘 지켜주었어요.


그것도 감사한데 제 동생들이 잘 커서 공부도 하고 취업하고 결혼해서 독립할 때까지 여러 도움도 주었어요. 실제 잠시 거처가 없던 동생들은 집에서 같이 지내기도 했고요.


제 아내가 마치 본인의 동생들인 양 배려해 주고 챙겨주어서 정말 고맙죠. 저희 쓸 것도 빠듯하지만 그럼에도 동생들을 돕기 위해 사용하는 것에 대해 단 한 번 반대하거나 안 좋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제가 저 스스로를 잘 못 챙기니까 그런 저를 정말 잘 챙겨주고 사랑으로 많이 보듬어 주었죠. 제가 어릴 적부터 그렇게 고생한 것들 모두에 대해서 늘 존중해 주고 그런 마음들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었어요.


동생들도 그런 제 아내의 마음과 행동들을 너무나 알고 느끼기에 동생들은 제 아내를 어머니처럼 따르고 있어요. 동생들이 사회 나가서 첫 월급을 타서 선물로 저보다 제 아내 선물을 더 비싼 거 사주고 그랬어요. 솔직히 좀 섭섭했지만 그래도 제 아내가 저와 제 동생들에게 해준 것들을 생각하면 정말 제가 모시고 사는 게 맞죠.


지금도 동생들이 아내에게 너무나 고마워하고 그런 마음과 이야기들을 제수씨들이 또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제수씨들도 저와 제 아내에게 정말 잘해줍니다.


비록 어릴 적부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 비참할 수도 있고 불쌍한 삶으로 시작하긴 했지만 했지만 지금 우리 가족들을 보면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감사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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