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공부하기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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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여전히 나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술 냄새 가득한 그 자리에서, 나에게 세 권의 책을 메모지에 적어주며 한 달을 줄 테니 읽어보고 와서 느낌을 이야기하라던 그 사람. 사실 내 고객도 아니었고 한창 붙어 다니던, 지금은 원수가 되어버린 그 상사의 예전 고객이었던 사람은 내가 맘에 든다며 날 시험해 보고 싶다 했다. 취기 때문이었을까, 몸속 깊숙이 새겨져버린 호구력이 발휘되었을까. 돌이켜보면 전혀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난 그 시험에 응시해버렸다. 내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기보다는 미련하게 남의 평가에 더 목을 매던 그 시절이 후회스럽지만 그 안에서도 건진 것 중 하나는 바로 그날 추천받았던 책 중 두 권의 동양 고전이었다.


불안함을 느끼는 가장 큰 이유 중 이렇게 사는 게 맞는지, 이 선택의 결과는 어떻게 될지, 내가 가는 이 길은 어디로 다다르는지를 모르겠는 모호함에서 시작되지 않을까. 나에게만 일어나는 것 같은 가혹한 일상들은 모두가 잘 살고만 있는 것 같은 허상 속에서 더욱더 찬란하게 불안하다. 그렇게 불안의 깊이는 극심해진다. 한 치 앞도 모르겠는데 노후를 준비해야 된다고, 근근이 먹고살고 있는데 돈이 일을 하게 만들어야 된다고, 쏟아지는 맞는 말속에서 매일 길을 잃고 만다.


학창 시절, 고루하게만 느껴졌던 그 동양 고전이지만 난 여기서 내 불안을 해소할 수 있는 답을 찾았다. 물론 이 고전 속에는 당장 내게 강요되는 선택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이 있지는 않다. 오히려 누군가는 다 아는 이야기라며, 누가 이걸 몰라서 못하냐고, 현실감 없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이 고전 속에는 긴 시간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나만 이랬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저 다 같이 힘들었으니 내가 힘든 것도 당연한 거라는, 조금은 슬픈 위안이 아니라, 원래 그러하다는 자연스러움을 알게 된다. 자연스럽기에 위로가 된다. 더 이상 불안하지 않다. 모두가 겪고 헤쳐나가는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불안을 느끼는 것이 오히려 당연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저 어떻게 한 발자국씩 나아갈 수 있느냐가 내가 더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이 소소한 차이는 어찌 보면 단순한 입장의 차이일 수도 있지만, 불안과의 싸움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 중 하나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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