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11년 전, 나와 공부하던 은하 씨가 쓴 글을 찾았다. 그녀가 '미열'이라는 독립 잡지에서 실은 글이었는데, 당시 편집자 분이 우리 야학 졸업생들께 빌 듯이 사정해서 몇 분께 졸업 소감 글을 펴냈었다. 오랜만에 다시 읽어보는데 놀라웠다. 내가 기억하는 그녀의 모습과 그녀가 쓴 글이 사뭇 달라서다. 은하씨는 우리 반에서 가장 조용한 학생이었다. 생김새도 튀는 법이 없었다. 까무잡잡한 피부, 짧은 단발에 뽀글한 파마, 작은 체구. 시장에 가면 쉽게 볼 법한 우리 엄마또래의 여인이었다. 게다가 늘 무채색 옷을 입으셔서 영화 속 '엑스트라 11'쯤 되는 사람 같았다. 수줍음이 많아서 자처해서 발표하는 일도, 목소리를 크게 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급우들이 말할 때 '내가 여기서 얘기를 거들어도 해도 될까' 눈치를 보는 게 큰 눈에 다 보였다. 그런 순박한 여인이었다.
얌전해 보이던 그녀가 쓴 글에서 횃불을 품은 듯 끓는 열망을 보았다. 한번도 다른 사람들에게 한 적이 없던 자신의 유년시절, 자신이 젊은 이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뿜어내듯 적어냈다. 아, 은하씨에게 공부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졌구나. 한번도 그녀가 보이는 욕심을 본 적이 없어서, 더 챙겨주지 못한 것에 미안하기도 했다. 일 년 넘게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췄는데던 나도 그녀에 대해 잘 모르는데, 어떻게 가방끈 하나로 우리 학생들을 설명할 수 있을까. 그러기에는 우리들이 해줄 수 있는 얘기가 너무 많다. 불행했던 과거에 한정되고 싶지 않다. 우리들이 하지 못했던 것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금 이루어 가고 있는 성과들을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 한세대 어른들을 곁에서 지켜보며, 나는 거기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못 배우게 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지만 공부를 하고 보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의 아픈 마음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녀는 공부를 하면서 과거의 아버지를 어떻게 이해하게 되었을까. 아직 그 나이가 되지 못한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당시 은하씨의 나이가 된다면 그 마음에 공감할 수 있을까.
지금 보니 감회가 다르다. 그때는 나도 어려서 '우리 학생들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라고만 생각했다. 마냥 기뻤다. 11년 지나고 읽으니, 회한이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당시 학생들의 나이에 한층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이때 학생 4분과 수업을 했다. 4분이 동시에 전원 합격을 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네 분은 수업 태도가 좋고, 서로 사이도 좋았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았던 경우다.
만학도를 다루는 콘텐츠들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학생들의 불행을 너무 강조한다. 글을 몰라서 겪었던 설움, 가방끈이 짧아서 생기는 의기소침함, 어려운 가정형편이 주된 내용이다. 나도 이런 내용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 야학에 있는 학생들도 다들 그런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에서는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는다.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려고 한다. 행여나 학생들을 가엽게 생각하게 될까 봐서다. '누가 누가 더 자극적으로 힘든가'로 경쟁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에 보면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보니, 내가 얼마나 배부르게 살아왔는지 느껴진다'라는 수기를 적는 선생님들이 있더라. 이 정도 감상에서 그치는 선생님은 아마 야학 경력 2년 이하일 것이다. 여기서는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사실 처음에야 사람들 한명 한명의 이력이 눈에 들어올 뿐, 본격적으로 공부를 하다보면 각자의 개인사는 뒷전이다. 머릿속에 글자를 넣기에도 우리는 여유가 없다. 밖에서야 과거사가 흥미로울 뿐, 안에 있는 우리는 그런것쯤 대수롭지 않다.
신입생들이 나에게 어려움을 호소할 때가 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저는 어릴 때 가정형편이...'
'제가 어릴 때 많이 아팠거든요...'
'제가 낮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지금도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가서...'
하긴. 이분들이 어디 가서 이런 얘길 터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그냥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아이고, 여기 사연 없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어쨌든 결석하면 안 되고. 지각도 안됩니다.'
이런 나를 냉혈한이라고 비난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ㅎㅎㅎ. 그래도 한 명쯤은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우리 학생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역할은 다른 선생님들이 해줄 것이다. 오늘도 야학은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