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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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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Oct 11. 2023

불행을 팔지 않겠습니다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만학도를 다루는 콘텐츠들에 한 가지 아쉬움이 있다. 학생들의 불행을 너무 강조한다. 글을 몰라서 겪었던 설움, 가방끈이 짧아서 생기는 의기소침함, 어려운 가정형편이 주된 내용이다. 나도 이런 내용을 모르지 않는다. 우리 야학에 있는 학생들도 다들 그런 아픔 하나씩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글에서는 가급적 이야기하지 않는다.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물어보지 않으려고 한다. 행여나 학생들을 가엽게 생각하게 될까 봐서다. '누가 누가 더 자극적으로 힘든가'로 경쟁하고 싶지 않다. 인터넷에 보면 '어려운 형편의 학생들을 보니, 내가 얼마나 배부르게 살아왔는지 느껴진다'라는 수기를 적는 선생님들이 있더라. 이 정도 감상에서 그치는 선생님은 아마 야학 경력 2년 이하일 것이다. 여기서는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불행 경연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 스스로 과거를 극복해 나가는 과정이다. 공부하는 과정은 그녀들이 아픔을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이다. 나보다 한세대 어른들이 공부를 대하는 걸 지켜본다. 나는 거기서 삶의 자세를 배운다. 학생들은 온몸으로 '불평만 하지 말고, 부딪혀서 해결을 해라고!'라고 나에게 시범을 보이는 것 같다.




 SNS에서 예전 야학 자료를 찾아보다가, 나와 부산에서 같이 검정고시 공부를 했던 학생들의 합격 수기를 발견했다. 그때 당시 '미열'이라는 잡지에서 우리 학생들의 졸업식을 보고 간 뒤, 합격수기를 실어주셨다. 지금 보니 감회가 다르다. 그때는 어려서 '우리 학생들 정말 대단하고 자랑스럽다'라고만 생각했다. 마냥 기뻤다. 11년 지나고 읽으니, 회한이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당시 학생들의 나이에 한층 가까워졌기 때문일까.


 이때 학생 4분과 수업을 했다. 4분이 동시에 전원 합격을 해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이 네 분은 수업 태도가 좋고, 서로 사이도 좋았다. 과정과 결과가 모두 좋았던 경우다.


당시 잡지에 나온 내용을 캡처해서 올린다. 당시 학생들을 다시금 리스펙 해본다. 이때 아마도 내가 국어를 가르쳤다지? 이 작문실력은 누구 덕이라지?


이 구절에서는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게 된다.

  '못 배우게 하셨던 아버지가 그렇게 미웠지만 공부를 하고 보니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버지의 아픈 마음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신입생들이 나에게 어려움을 호소할 때가 있다. 대충 이런 식이다.

 '저는 어릴 때 가정형편이...'

 '제가 어릴 때 많이 아팠거든요...'

 '제가 낮에는 일하느라 바빠서...'

 '지금도 저녁에 아르바이트를 가서...'

 

 하긴. 이분들이 어디 가서 이런 얘길 터놓을 수 있단 말인가. 그럼에도 나는 그냥 이렇게 말씀을 드린다.

 '아이고, 여기 사연 없는 사람 한 명도 없어요. 어쨌든 결석하면 안 되고. 지각도 안됩니다.'


 이런 나를 냉혈한이라고 비난하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ㅎㅎㅎ. 그래도 한 명쯤은 나 같은 사람이 있어도 좋지 않을까. 우리 학생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역할은 다른 선생님들이 해줄 것이다. 오늘도 야학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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