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 쌔한 기분이 드는 사람을 거르는 건 사이언스'라는 문장을 줄여서 쌔이언스라고 한다. 나이를 먹으면서 각종 이상한 사람을 만나고, 이 경험들이 빅데이터로 쌓여서 이상한 사람들에게 어딘가 모를 '싸함'을 느낀다는 것이다. 야학에서 선생님을 구할 때도 이 쌔이언스를 활용한다. 기왕이면 우리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뽑고 싶어서다. 몇 달 하다가 그만둘 것 같거나, 왠지 동료들과 융화되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은 애초에 이 공간에 들이고 싶지 않다.
쌔이언스가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이런 지원서가 온 적이 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중인 남자입니다. 학사는 수학교육, 석사는 과학교육을 전공했습니다. 매일 술만 마시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계속 살 수만은 없어 야학 교사에 지원합니다. 삐쩍 마른 몸이나, 소일거리라도 불러주시면 하겠습니다."
야학교사들끼리 술자리를 자주 갖기는 하지만, 이 지원서에는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나는 함께 야학을 꾸려나갈 동료를 찾는 거지, 내가 삶을 갱생시켜야 하는 자식을 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에게 굳이 연락을 하고 싶지 않았다. '삐쩍 마른'이라는 표현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쁜 말은 아니지만, 느낌이 싸했다. 이유없이 마음에 안 드는 프로필이었으나, 다른 선생님이 '과학을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이 귀하다. 의외로 괜찮은 사람일 수도 있지 않나?'라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지원서에 있는 연락처로 연락을 해보니 '과학 수업은 싫어서 안 할래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과학 석사까지 마친 사람이 과학을 가르치기 싫다니. 심지어 본인이 지원서에 '희망과목 : 과학'이라고 적어놓고서는.
또 다른 선생님은 소싯적에 대기업 임원까지 올라가셨던 남성이었다. 우리 야학은 교사 지원서 양식이 정해져 있는데, 이 분은 우리 양식을 쓰지 않고 자기가 평소에 쓰는 양식에 내용을 적어서 보냈다. 봉사활동 지원서보다는 기업 입사지원서에 가까운 양식이었다. 자기 편한 대로 지원서를 적은 것부터좋지 않은 기운이 감돌았다. '자수성가한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워한 나머지, 황소고집을 가져버린 어르신'이 아닐까 불안했다. 어찌 됐건 이분은 영어를 맡아서 1년가량 우리 야학에서 활동하셨는데, 활동하는 동안 교사회의나 야학 행사에 한 번도 참석하지 않으셨다. 내가 그에게 편견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지 '나는 수업만 할테니, 다른 허드렛일은 니들이 해라' 처럼 느껴졌다. 뭐, 바쁘면 행사는 참석하지 못할수도 있다. 그러나 수업도 오래하지 못했다. 본인이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토요일 수업을 하겠다고 우기다가, 동료 선생님들의 공분을 사고 그만두셨다. 이 선생님이 토요일에 수업을 하신다면, 학생들은 주 6일 등교를 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놀랍다. 사실 이 분은 얼마 전에 야학에 복귀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다. 유감스럽게도 아마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적어도 그를 기억하고 있는 교사들이 남아있는 한.
그런가 하면 '말로만 천냥 빚을 갚는 번지르' 유형의 선생님도 있었다. 이 선생님이 지원했을 당시에는, 이미 대기 중인 지원자가 많아서 본인의 순번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이 번지르 선생님은 하루빨리 우리 야학에서 활동하고 싶은 의지가 컸나 보다. 야학 공식행사에 방문해서 선배 선생님들에게 자기 얼굴도 알리고, 자신은 맡겨만 주면 어떤 과목도 잘 가르치겠노라 읍소했다. 처음 만난 사람과도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넉살이 맘에 들긴 했으나, 그게 좀 과하다고 느껴지니 이번에도 나의 싸함 센서가 울렸다. 경험상 이렇게 사회성이 좋은 사람은 진득하게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래도 한 번 얼굴을 봤던 사람이라, 다른 지원자들보다 우선적으로 선발했다. 우리 행사와 뒤풀이까지 따라왔는데 받아주지 않는 것도 부담이 되는 일이었다. 밖에서 우리 야학 욕을 하고 다니면 안되지 않는가. 이 번지르 선생님께 두 번째 싸함 센서가 울린 것은 이메일로 교사 지원서를 작성해서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나서였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문구가 들어있었다.
'제 나이는 절대 절대 비밀로 부탁드려요. 저번에 야학 행사에서 나이를 40대라고 사람들에게 소개했는데요, 다른 선생님들이 너무 젊어서 저도 모르게 그래버렸네요. 제 심정은 오죽하겠습니까. 저도 40대이고 싶네요.'
이 분의 실제 나이는 50대였는데, 야학 행사 뒤풀이 때 대화를 하다 보니 분위기상 40대라고 거짓말을 했다는 거다. 주변에 다 젊은 선생님들인데, 자신의 진짜 나이를 말해버리면 본인을 대하기 어려워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었다고 한다. 분위기 때문에 나이를 열 살 깎는다는 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나이를 비밀로 해달라는 것도 찝찝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첫 만남 때 보여준 본인의 어필이 무색하게, 8개월 만에 활동을 그만두었다. 본인의 생활이 너무 바빠서 수업시간을 지킬 수 없었다. 나중에 번지르 선생님의 과목을 이어받아서 수업을 하려니 꽤나 힘들었다. 이 분이 그간 진도를 너무 안 나간 나머지... 가르쳐야 할 게 많았다. 아마도 그는 수업시간에도 공부보다는 정담을 나누는 데 집중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워낙 말을 예쁘게 하시는 분이라, 학생들은 즐거웠을 거 같다.
쌔이언스가 틀리지 않음을 반복해서 겪다보니, 애초에 의심이 가면 야학에 들이려 하지 않기 시작했다. 최근에 야학 활동 지원을 거절했던 사례들이다.
지원자 : "혹시 짬날 때 잠깐씩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 : "저희는 매주 정기적으로 수업을 해야 합니다. 최소한 1년 이상이요."
지원자 : "제가 아이 둘을 키우고 있어서 매주 시간을 낼 순 없는데요. 수업이 갑자기 빵꾸(?) 났을 때 땜빵해주는 건 잘할 수 있어요."
우리는 다른 봉사활동 기관들과 다르게 단발성 봉사자를 구하지 않는다. 수업 땜빵은 현재 활동중인 선생님들끼리도 잘할 수 있다.
지원자 : "나도 국어를 가르칠 수 있는데요. 오랜 꿈이었어요."
선생님 : "지원서를 작성해서 메일로 보내주세요."
지원자 : "나는 컴퓨터를 잘 못하는데, 지원서를 꼭 만들어야 하나요? 그렇게까지 해서 하고 싶진 않아요."
분명 처음에는 오랜 꿈이라고 하셨다. 그런데 본인이 하기 어려운 걸 만나니, 그렇게까지 하고 싶진 않단다. 말의 앞뒤가 다르다. 컴퓨터 사용이 힘들다면 손으로 지원서를 써서 줄 수도 있었다. 그냥 찔러본 걸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야학에서만 겪는 건 아니다. 살다보면 말만 앞서는 장면을 종종 본다. 반복되는 실망은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게 만든다. 쌔이언스 센서가 갈수록 예민해진다. 어쩌면 거절 당한 두 지원자는 열심히 활동할 사람일지도 모르는데.
다행인 점은 내 쌔이언스가 항상 맞는 건 아니라는 거다. 다음 글에서는 내 쌔이언스가 틀렸던 일에 대해 얘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