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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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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Mar 04. 2024

왜 수업 시간에 영상통화를?

※ 야학에서 선생님으로 봉사활동을 하며 느낀 점을 쓴 글입니다.


 우리 반 출석부는 몇 달째 한 줄이 텅 비어있다. 예진 씨가 통 출석을 못하고 있어서다. 예진 씨는 학기 초 두어 달 출석하더니, 요즘은 거의 야학에 오지 못하신다. 가족 요양 때문이다. 편찮으신 어머님을 돌봐야 해서, 예진 씨가 집을 비우기가 힘들다고 하신다. 이번학기 반장이실 만큼, 워낙 수업참여에 적극적이신 분이라 아쉽다. 하지만 예진 씨가 그렇게 특이한 경우는 아니다. 원래 야학에 10명이 들어오면, 그중 1년을 완주하시는 분은 6~7명에 불과하다. 이곳은 의무교육이 아니다 보니 어쩔 수 없다. 다들 공부만 맘 놓고 하기에는 할 게 얼마나 많은가.


 요즘은 예진 씨가 종종 학교에 오신다. 남편이나 아들이 어머니를 돌봐줄 시간이 될 때는 학교에 오시나 보다. 저번 시간에는 내 수업에도 들어오셨다. 시험이 한 달밖에 안 남았으니 없는 시간을 쪼개서라도 공부를 하러 오시는 것 같다.


 "예진 씨, 잘 지내셨어요? 요즘 기출문제 풀이를 하는데요. 다른 학생들은 저번시간에 이미 문제를 다 풀어봤거든요. 문제를 안 푸신 상태에서는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안 되실 수 있는데, 집에 가셔서라도 다시 한번 스스로 풀어보세요."

 "선생님, 저 집에서 다 풀어보고 왔어요. 채점도 해봤는데요. 어휴 많이 틀렸더라고요."


 엥? 이미 문제를 푸셨다고? 예진 씨의 교재를 보니 이미 자습을 끝내셨다. 오늘 진도 나갈 문제들을 이미 혼자 풀어보시고, 모르는 용어를 스스로 찾아보고 오셨다. 급우들의 도움으로 대강의 진도를 알고 계셨다. 예진 씨가 출석을 하지 않는 동안에도 급우들은 예진 씨의 교재와 자료를 따로 챙겨두었다. 그 덕에 그녀에게서 학습결손을 느낄 수 없었다. 오히려 쭉 출석을 하신 다른 학생들보다 더 수업준비를 착실히 해오셨다.


 "선생님, 이 문제가 그런 뜻이네요. 혼자 문제 해석집을 봤는데 이해가 잘 안 되더라고요. 수업을 들으니 이제 이해가 되네요."

 

 이미 예진 씨는 본인이 질문할 것까지 준비해 오셨다. 이렇게 예습을 해서 수업을 들으면 정말 뽕을 뽑는 거다. 그냥 흘러가듯 시간을 보내는 게 아니라, 학생이 원하는 것을 수업에서 얻어갈 수 있다. 야학에 오지 않았을 뿐. 예진 씨는 집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검정고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수업 내내 예진 씨의 켜져 있는 휴대전화에 눈이 갔다. 누구보다 수업이 집중하는 예진 씨가 계속 폰을? 딴짓을 하실리는 없고... 아마도 내 수업을 녹음하는 것 같았다. 나는 평소에도 수업을 녹음해 가는 걸 권장했기 때문이다. 한 번 들어서 이해가 안 되는걸, 녹음해 간 뒤에 집에서 다시 들으면 이해가 갈 때도 있다. 복습용으로도 강의 녹음은 효과적인 재료다.


 그런데. 그녀가 자꾸 본인의 핸드폰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신경을 쓴다. 아. 녹음이 아니라, 영상통화를 하는구나. 수업 중에 누구와? 아, 어머님! 집에 계신 어머님이 마음 쓰이니까, 수업을 듣는 도중에도 영상으로나마 가족을 돌보는구나.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그녀가 나의 시선을 느꼈나 보다. 그녀는 민망했는지 자초지종을 말하며 휴대전화를 가방에 넣는다.


 "제 간병 노하우예요. 이렇게 핸드폰으로 집을 들여다보면 잠깐 밖에 나올 수 있거든요. 방금 남편이 집에 들어왔네요. 이제 집 신경 안 쓰고 공부할 수 있겠어요."


 예진 씨는 집에 안 쓰는 공기계를 하나 두고, 아픈 어머니를 촬영 중이었다. 그렇게 영상통화로 혼자 계신 어머니를 보고 있어야 마음이 놓였나 보다. 수업을 마치고 예진 씨에게 어머니 건강은 괜찮으신지 물어봤다.


 "우리 엄마가 치매거든요. 엄마 혼자 집에 두면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걱정돼서요. 요양병원에 모시는 게 싫어서 제가 보고 있어요."




 부모님 병시중을 하는 와중에도 검정고시 공부까지 하고 있는 그녀. 식구들을 챙기면서 본인의 일까지 해내야 하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엄마다. 그녀에게 나태할 여유는 없다. 시간이 없으니 더 집중해서 공부를 하고, 영상통화로 비대면 간병을 하는 지혜 얻어내셨다. 어려운 여건이 그녀를 더 성장시키는 게 아닐까. '지금 내 상황에서 공부는 어림도 없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스스로 해결방법을 찾아 나서는 예진 씨에게 감명을 받았다. 시련으로 한층 더 성장할 수 있으니, 멈추지 말자고. 본을 보여주는 그녀다. 부디 이번 시험에서 합격을 하고, 그녀가 바라는 사회복지사가 되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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