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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야학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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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룰루 Apr 16. 2024

야학으로 가던 첫걸음

 언제나처럼 인터넷 서핑 중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대학생 커뮤니티를 들락날락했다. 그곳에는 매번 비슷한 글이 올라오지만, 그래도 시간을 죽이고 싶을 땐 매일같이 들어갔다. 꾸준히 올라오던 홍보글 중 하나가 야학 봉사활동 소개였다. 네댓 개의 야학에서 거의 매달 교사 모집글을 올렸다.


 간혹 사람들이 '어떤 계기로 야학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됐느냐?' 물을 때가 있다. 답을 하기가 곤란한 게, 특별한 계기가 없었다. 그저 매일 가던 커뮤니티에 홍보글을 보다 보니, 자연스레 관심이 갔을 뿐이다. 구인글을 보자마자 '아! 이게 내 길이야!'라고 생각했던 것도 아니다. 처음에는 그저 흘려보다가, 그런 일이 반복될수록 호기심이 스며들었다. '이런 활동을 하는 곳도 있구나.'에서 어느 순간 '일주일에 하루 시간을 내면 된다고?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지금 3학년이니깐, 최소 1년은 할 수 있을 것 같은데?'로 발전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야학을 고를까? 학교가 가까운 곳이 좋을까, 집이 가까운 곳이 좋을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노출이 이렇게 무섭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야학에는 몇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모교와 인근에 있던 금정야학, 사상구에서 큰 규모를 자랑하던 샛별야학 등. 그중에서 난 동구 수정동에 있는 참사랑야학을 택했다. 예전부터 그 동네를 좋아했다. 인근에 있는 수정시장은 사람 구경하기 좋고, 정감가는 노포가 많았다. (나중에 느꼈는데, 야학은 보통 구도심에 있기 때문에 동네가 다 그런 분위기이긴 하다.)




지금은 없어진 참사랑야학. 지금 보니깐 엄청 오래됐구나.


 봄바람 불던 4월, 처음으로 참사랑야학에 발을 디뎠다. 이미 밖은 어두컴컴한데, 야학 안은 형광등 덕분에 환했다. 학교 곳곳에는 세월의 흔적이 보였다. 꼬깃꼬깃한 교과서, 누렇게 바랜 복사기,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서재. 단순히 낡음이 아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친 테가 났다. 학교라고 해봤자 소규모 사무실 하나 크기다. 교사 대기공간과 교실 두 개. 전체 면적을 다 합해도 10평 남짓이다. 교실은 가벽으로 나눴다. 졸업식 같은 행사 때면 이 가벽을 떼어내서, 큰 홀을 만들어낸다. 칠판 지우개는 아껴 쓰려고 휴지를 덧대서 사용 중이었다. 작고 낡은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좋았다. 공부를 하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환경이었다. 오히려 역경을 이겨냈다는 서사를 가지려면 최소한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도리어 너무 쾌적하면 서운하지.


 이날 나는 선배 선생님들의 수업 2개를 참관했다. 내 또래 남자 선생님의 영어 수업, 여자 선생님의 국어 수업이었다. 참사랑야학은 대부분 같은 대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운영하고 있었다. 두 선생님 모두 차분한 말투로 학생들에게 공부를 설명했다. 목소리가 나긋한데도 졸리지가 않았다.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임했기 때문이다. 사소한 설명에도 대답을 꼬박꼬박 하면서 집중력을 유지했다. 참관하는 나도 덩달아 수업에 몰입한다. 크게 숨을 쉬기도 눈치가 보였다. 수업 참관 후에는 선생님들께 감상문을 제출해야 하는데, '수업 잘 들었습니다. 정말 잘하시네요'라고밖에 쓰지 못했다. 그 이상 내가 그분들을 평가할 깜냥이 되지 못했다.


 참관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 걱정과 설렘이 공존한다. 최소한 1년은 해야 한다던데, 이번학기에는 전공수업이 빡신데 1년 동안 매주 꼬박꼬박 봉사활동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 그리고 이곳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자랑스러움. 참관을 마치고 선배 선생님의 귀여운 텃세를 들었다. '그래도 야학 활동 좀 했다고 어디 가서 말하려면 2년은 해야죠'라는 으스댐이었다. 나보다 두 살 어린 봉사자였는데, 그럼 이 분은 대학을 입학하자마자부터 활동을 시작했나 보다. 똘똘해 보이는 그녀에게 거리감이 확 생겼다. 아마 그때 나도, 그녀도 몰랐을 거다. 2024년까지 내가 야학의 문을 열고 있을 거란 걸. 이제 내가 그녀보다 훨씬 경력이 길다.




 야학에 첫걸음 했던 게 어느덧 13년 전이다. 취업을 하면서 자연스레 야학을 그만뒀지만, 서울로 거처를 옮긴 뒤에 다시 분필을 든 지도 3년이 넘었다. 1년쯤은 누구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세월이 7년쯤 되니, 단지 '그냥'이라는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나는 왜 야학을 지금까지 가고 있나. 시간이 많아서? 봉사심이 투철해서? 아니다. 시간이 많아야 할 수 있다면, 내가 함께 봉사활동하기를 권유했던 내 친구들이 모두 함께 했어야 한다. 봉사심이 필요하다면 야학보다 더 손길이 간절한 기관에 가야 했다.

 

 한때는 내가 야학과 연을 이어가는 이유를 찾고자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생각부질 없음을 안다. 이유는 단순다. 나는 원래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라서다.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비단 야학이 아니었어도 '주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않는 사람들이 모인' 어떤 곳에 가있었을 것이다. 그래야 직성이 풀리니까. 그런 모습을 보는 걸,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하니까. 파란색을 좋아하는 이유, 딸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따로 있어야 할까. 단지 취향이다. 은 이유로, 내 취향을 남에게 칭찬받을 생각이 없다. 그러니까. 사실 계기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학교 커뮤니티에 야학 홍보글이 없었다면, 일상 속 다른 우연으로 같은 영감을 주는 어떤 곳에 내가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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