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룰루 선생님, 그거 들으셨어요? 제인 씨가 이제 야학 못 오신대요. 어떡하죠."
"그러세요? 이를 어떡하죠. 올해 고등반은 출석인원이 작아서 한 분 빠지면 내년 정부 지원금 수령에 타격이 있을지도 모르거든요. 부디 안 그랬으면 좋겠어요."
"아니 제가 한 걱정은 제인 씨를 걱정한 건데... 제인 씨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 아닌지가 우선이죠!"
고등반 반장인 제인 씨가 잠정 휴학하셨다. 편찮으신 어머님을 간호하고 계신데, 사정상 집을 비울 수가 없단다. 공부도 대인관계도 1등이었던 그녀라 선생님들의 아쉬움은 여느 때보다 컸다. 다만 동상이몽으로다가, 각자 다른 걱정이 앞섰다.
야학에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냐면, 남을 도와주는 행동으로 자신의 기분까지도 좋아지는 자들이다. MBTI로 따지자면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F 성향의 사람들이다. 설사 논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T성향의 사람일지라도, 야학 안에서는 자고 있던 공감과 인간의 정이 깨어난다. 이러한 사람들의 틈바구니에서 내가 속세의 공식으로 학생의 결석을 해석했으니, 힐난의 대상이 되어버렸다.
인간적인 연민과 원리원칙이 상충할 때,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는가. 야학에서도 당연히 택일의 상황이 생긴다. 나는 대체로 규칙을 우선하는 편이다. 사정을 하나 둘 봐주다 보면 나중에 어떤 역효과가 나올 줄 몰라서다.
내가 교무교사 역할을 맡았을 때의 일이다. 한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본인의 일이 너무 바쁘다며 규정 수업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수업하겠다는 알림이었다. 이미 학생들에게 동의도 구한 상태라고 한다. 순간 나는 고민이 되었다. '네 알겠습니다'라고 답하면 될 일이었는데, 이런저런 걱정이 앞섰다. 선생님 한 명을 예외로 만들면 나중에 다른 선생님들도 본인의 편의를 봐달라고 하지 않을까? 안 그래도 선생님들 휴강과 보강이 잦은지라, 수업시간마저 유동적이면 질서가 무너질 것 같았다. 두 번 세 번 생각해도 수업시간은 양보할 수 없는 전체의 약속이었다. 결국 '선생님 개인 재량으로 수업시간 교체는 불가능하다'라고 일렀다. 다른 선생님께 양해를 구해서 수업하는 요일을 바꾸거나, 그것마저 불가능하다면 야학을 나가달라고 안내했다. 수업시간을 못 지킬 정도로 바쁘시다면, 학생들에게 더 시간을 줄 수 있는 새로운 선생님께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선생님은 야학을 관둬야 하는 게 아쉬우셨는지 나에게 한동안 질척이셨지만, 단호한 나의 태도에 결국 수긍하실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원리원칙을 앞세운 결정을 하는 내 마음도 편치 않다. 평소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진심이 느껴지던 분이라 더욱 그랬다. 그래서 보통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선생님들은 '워낙 좋으신 분이니깐', '이번에는 예외조건을 달아서 넘어가시죠'라는 의견이 이길 때가 많다.
인정이 앞서는 우리 야학에 본 적 없는 대문자 T 캐릭터가 등장했다. 60대 남성인 영어 선생님 T는 외국 큰 회사에서 CFO까지 하시고, 은퇴한 뒤 한국으로 돌아오셨다. 여생은 사회에 기여하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아내분의 권유로 우리 야학에 문을 두드리셨다. 날카로운 눈빛, 단호한 말투, 단정히 차려입은 복식까지. 빈틈이 없어 보였다.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셨을지 말투와 눈빛만 봐도 그려진다.
그의 첫인상, 아니 보면 볼수록 우리 야학과는 이질적인 인물이다. 교사가 되기 위해 선배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보여줘야 하는 수업시연 시간에 그 우려는 극대화되었다. 그에게 배정된 과목은 중등 영어였는데, 선배 선생님들은 그가 영어를 학생들 눈높이에서 설명할 수 있는지를 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칠판에 유명한 영어 명언을 하나 써두고 선배 선생님들을 위한 본인의 인생의 지혜를 나눴다. 당연히 수업 준비 방향이 틀렸다는 지적을 받았는데, 선생님 T는 오히려 '선생님들에게 수업을 보여주는 것이니 선생님들을 위한 얘기를 했다'라고 말하여 의아해했다. 그 순간 선배 선생님들의 동요가 있었고, 수업의 방식과 개인의 애티튜드까지 아우른 혹평이 그에게 주어졌다.
여차저차 실전에 투입된 T, 실제 수업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았다. 학생들이 '저는 영어가 너무 어려워요. 초등반으로 다시 돌아가서 다시 영어공부를 시작해야 할까 봐요.'라고 고민을 토로하면, '아니 지금 제가 파닉스부터 다시 가르치고 있는데, 이거보다 어떻게 더 아래 반이 있겠어요. 초등반 가도 다를 바 없으니깐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 보세요.'라고 정말... 맞는 말... 을 일삼으셨다. 잠시 쉬어가는 농담도 할 줄 몰랐고, 꼭 해야 할 때면 유명한 사람의 명언을 소개했다. 오바마의 'Yes we can' 같은 거.
검정고시 날이었다. 학생들이 시험을 치는 동안 선생님들은 고사장 인근 커피숍에서 학생들의 점심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선생님 T와 4시간 동안 강제로 같이 있게 된 거다. 선생님들끼리 수다를 떨다가 놀랐던 게, 선생님 T가 나보다 훨씬 학생들에 대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그에게 알게 된 정보들이다. 우리 반 학생들 1명 빼고는 다 낮에 일을 하신다, 반장선거 비하인드, XX학생이 요즘 유난히 피곤해하던 이유, 학기 초에 학생들끼리 분위기가 안 좋았는데 그건 A학생과 B학생이 싸워서 그렇다, 그런데 그 싸운 사건의 발단이 무엇인지 등 흥미로운 얘기를 많이 알고 계셨다.
그가 수업을 빼먹거나 지각을 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일 년에 두어 번, 해외출장 때만 수업을 못하셨다. 그마저도 몇 달 전부터 미리 양해를 구하셨다. 그는 거의 매번 20~30분 일찍 교실에 가서 학생들이 뭘 하는지 살핀다. 무엇을 자습하고 있는지, 단어암기를 하고 있는지, 문법을 쳐다보고 있는지를 지켜보면서 학생들이 어디서 공부에 막혀있는지 파악한다. 원래는 지난주 수업을 잘 이해했는지를 확인하는 시간인데, 아무래도 수업시간 전이다 보니 학생들이 수업때 하지 않던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렇게 알아낸 학생들의 개인사 정보는 수업할 때 개개인에게 맞춤 공부전략을 만들어주는 데 유용하게 쓰인다.
학생들에게 꼿꼿하게 지식만 전달하는 것 같았던 그가 나보다 학생들의 소식을 더 많이 알고 있다고? 그것도 남에게 들은 게 아니라, 본인 스스로 얻어내는 정보들이라고? 인지부조화가 왔다. 배려는 온정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는데, 과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누구보다 세심한 주의점들을 잡아내다니. 그만의 방식으로 야학을 사랑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게 사랑이 아니면 뭐야.
기계적 친절이 미덕인 세상이다. 예쁜 미소와 다정말 말씨를 마주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지만 잠깐의 미소로 생기는 진통 효과와, 냉정한 치료요법 중 무엇이 더 필요한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최근 술자리에서 과거 선생님 T의 수업시연이 안주상에 올랐다.
초등반 선생님 : "나 처음에 왔을 때 수업시연 했잖아요. 그때 과학 선생님 피드백이 너무 모질어서 그때 좀 힘들었어요. 그때 좀 너무하셨어~"
과학 선생님 : "에이... 저는 선생님 T 수업시연 말고는 세게 말한 적이 없는데요."
선생님 T : "나? 나 그때 나쁜 말을 듣진 않은 거 같은데"
그 자리에 있던 선생님들은 다 같이 웃을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그는 그 당시에 본인이 받은 혹평을 단지 선배들의 조언으로만 생각할 뿐, 기분 나쁘게 듣진 않으셨던 모양이다. 보통이 아닌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