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의 생애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가 창씨개명 전에 썼던 시 '참회록'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있어야 했다. 간도에서 살았던 이야기부터 일본으로 유학을 가야 했던 사정을 이야기하던 중이었다. 한 학생이 입을 뗀다.
'그런데 이게 시험에 나와요?'
종종 이 질문을 듣는다. 지금 수업하는 게 검정고시에 나오는지. 시험에 합격할 수 있는 내용들 위주로 외우고 싶어서 하는 질문이다. 적게는 여덟 명, 많게는 열 명의 선생님이 교실에 쳐들어온다. 그리고는 쉴 틈 없이 지식들을 쏴댄다. 그러니 학생들은 주입되는 공부에 파묻혀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필요한 것 들만 골라내고 싶을 것이다. 검정고시에 출제되는 문제들은 수능에 가깝다. 출제되는 작품을 알고 있느냐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처음 보는 작품일지라도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여부가 평가된다. 그러니까 학생들은 수능을 잘 보고 싶은데, 내가 방금 한 수업은 내신용 학습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한 수업이 필요가 없는 게 아니다. 시험범위에 있는 작품들은 대개 비슷한 시대에 있던 작가들이고, 이 시대 맥락을 알고 있으면 당연히 작품 해석에 도움이 된다. 이것은 '한국말은 잘하지만 정서는 외국인인 교포 2세'들이 한국 문학의 참맛을 보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다.
내 수업이 학생들에게 도움이 된다고 자신하지만, 그래도 이런 질문을 들으면 맥이 빠진다. 다름 아닌 나 자신이 이 반에서 가장 가성비 효율충이라서다. 예전에 영어 공부를 할 때도 그랬다. 영어를 할 줄도 모르면서 시험 점수를 잘 받는 방법만 찾아다녔다. 토익을 예로 들면, '파트 7의 첫 문단에서 반드시 한 문제가 나온다!' 같은 이삭을 줍는 것들에 집중했다. 당장은 이런 방법이 점수를 올려줄지 몰라도, 결국은 한계를 만난다. 토익이 되었든, 오픽이 되었든, 무슨 시험이 되었든 간에 우선 영어부터 잘해야 한다. 관계사를 사용한 영어 문장을 말로 여러 번 뱉어보고, 써보기도 하면 시험에서 나오는 문법 문제도 금방 맞힌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영어 강사들이 이 명제를 뒤로 젖혀둔다. 우리는 이미 이유를 알고 있다. 영어를 잘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가르치기 힘들고 험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문제 푸는 스킬을 가르쳐 주는 게 배우는 입장에서도 재밌고, 가르치는 입장에서도 쉽다. 그런데 '영어를 잘하자!'는 너무 광범위하고,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 나만해도 그렇다. 야학의 학기가 마지막으로 갈수록 오히려 편하다. 학기 초에는 문해력 향상 연습을 하는데, 이건 당연히 재미가 없다. 이런 기본기를 닦는 건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학생들에게 와닿을까' 고민을 하지만, 학기말의 문제풀이는 '답은 1번이고, 그 단서는 2번째 문단 마지막 줄에 있네요~'처럼 설명이 명확하다.
매 학기 수업 첫 시간에는 기본기를 키우는 장기 숙제들을 내어준다. 소설 2권, 비문학 과학교양서 1권과 매일 뉴스 기사 하나씩 읽기를 이른바 '검사는 하지 않는 숙제'로 준다. 이걸 학생들이 실제로 행동에 옮긴다면 문해력이 자연스레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들이 이걸 할 거라고 기대는 하지 않는다. 1~2시간 안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공식처럼 외워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서다. 아마 처음에는 의지 있게 하다가, 눈에 띄는 효과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기 십상이다. 차라리 '수학 10문제 풀어오기', '영어 단어 깜지'처럼 결과물이 있는 숙제라면 모를까. 그럼에도 혹시 국어 공부에 진심인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될지도 모르지 않나? 그래서 나조차도 하지 못할 숙제를 매년 던져본다. 잡을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 채.
올해는 딱 한 명 있었다. 내가 내준 이 숙제를 진짜로 한 사람. 백발의 이슬 씨는 욕심이 많았다. 매 학기 첫 시간에는 제일 일찍 와서 맨 앞줄 좋은 자리를 선점했다. 밤에 하는 수업에 졸릴 법도 한데, 피곤해하는 법이 없었다. 말투도 그랬다. 돌아가는 법이 없다. 본인이 원하는 건 주저하지 않고 요구했다. 둥글지 못한 성격 탓에 그녀에 대한 평은 호불호가 갈렸다. 그래도 성적을 올리는 데는 그녀의 기질이 도움이 된다.
학생들의 부족한 문해력이 가장 티가 나는 건 비문학 수업에서다. 글 읽는 게 익숙한 사람들이야 대강 쓱 봐도 글의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우리 학생들은 머리에 빡 힘을 준 채로 지문을 읽어야 겨우 글귀를 알아먹는다. 그런데 모든 문장을 그렇게 읽으니, 집중력의 한계가 오고 시간도 부족하다. 비문학 지문을 연달아 두 개를 풀어보라고 해본다. 다 풀기도 전에 벌써부터 눈을 비빈다. 비문학 수업 후, 다른 사람들은 공부를 전 남자 친구처럼 작별하고 싶어 한다. '함께해서 힘들었고, 일주일 동안은 널 잊고 살게'라는 분위기다. 이슬 씨는 달랐다. 갈피를 못 잡겠는 이 비문학을 어떻게든지 해결을 해야만 직성이 풀려 보였다. 본인이 왜 지문을 쌈 싸 먹지 못하는지 답을 찾고 싶어 했다.
"이슬 씨, 비문학은 버리면서 읽어야 해요. 중요한 내용만 신경 써서 읽고, 나머지 내용은 넘기는 거예요. 그런데 어머님은 뭐가 중요한지 감이 안 오죠? 그러니깐 모~든 문장을 최선을 다해서 읽어서 그렇게 머리에 쥐가 나는 거예요. 그런데 중요한 문장을 골라내는 건 문해력 문제라, 하루아침에 되지 않아요. 우선 그날 배웠던 지문을 두 번씩 소리 내서 읽어보세요. 당장 좋아지진 않는데, 그래도 꾸준히 하면 좋아져요."
이슬 씨는 일주일 뒤, 내가 말한 대로 소리 내서 지문을 두 번씩 읽었다고 한다. 시간은 오래 걸렸어도, 이 연습이 지문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다음 숙제를 내주었다.
"자, 소리 내서 읽는 건 앞으로도 계속하시고요. 지금부터는 문단 간의 관계를 그려보세요. 어머님이 그린 게 혹시 틀렸을까 봐 걱정되시면, 가져오셔서 저한테 검사받으세요."
그 수업 뒤로, 그녀의 문제집에는 다이어그램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녀는 집요하게 공부를 물고 늘어졌다. 해내야만 두 다리 뻗고 자는 사람이었다. 그런 덕에 국어 점수가 20점이 올랐고, 검정고시는 어렵지 않게 합격했다.
나였다면 어땠을까. '소리 내서 지문 읽기를 할 시간에 차라리 역사 연표를 한번 더 보는 게 검정고시 합격에 효율적일 거야.'라며 성가신 걸 회피했을 것이다. 당장 점수를 올릴 수 있는 암기과목부터 손을 댔을 것이다. 그러다가 기초가 중요한 국영수는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을 것 같다. 요즘도 그런다. 자기 계발 공부를 하는 대신 '직장인 공부 루틴'을 찾아본다. 헬스장에 가면 될 것을, 유튜브에 '가장 효율적인 한 시간 운동 루틴'을 검색하고 내 방식을 점검한다. 실행을 위한 계획을 위한 계획을 위한 계획만 세우고 정작 행동을 하지 않는다. 행동이 가장 힘드니깐 미루고 보는 거다. 결국 맞서야 해결되는데. 앞으로는 그녀의 표정을 떠올려야겠다. 본인 욕심을 못 이겨 공부를 할 수밖에 없던 그 분한 표정. 입술 주위 근육에 힘을 주고 집중하던 그 모습을. 하기 싫어도 해내야 하는 과업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