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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울수록 쉽게

by 김룰루

1번 문제를 틀려올 줄이야. 누구나 긴장하는 1교시 국어시간. 다들 맞출 수 있도록 쉽게 출제되는 게 검정고시 첫 번째 문제라, 평소에 수업도 해드리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웬 일, 희망 씨가 이 문제를 시험장에서 떡하니 틀려 오셨다.



"아니 이 문제를 왜 못 맞히셨어요?"

"ㄱ 바로 위 문장에서 등을 토닥인다 잖아요? 그러니깐 아래에도 등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요?"


왐마. 이렇게도 생각할 수 있구나.


"자 어떻게 푸는지 알려드릴게요. 위에 힘내라는 말을 등을 토닥이면서 했죠? 그게 격려예요. 그렇죠? 그럼 아랫줄도 봅시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라는 말과 어울리는 답이 보기 중에 뭘까요?"

"... 고개를 끄덕여야겠네요."


희망 씨는 아직 검정고시를 합격하기에 학습량이 부족한 분이라, 당락에 영향은 없었다. 1번 문제를 맞히셨어도 어차피 불합격하셨을 거다. 그래도 이 조용한 소동은 야학 봉사활동 9년 차인 내게 다시 신발끈을 조여 매게 했다. 쉬운 문제라고 대강 넘어가지 말아야겠다.


야학 수업은 같으면서도 다르다. 학교에서의 교육과정을 대부분 가르치지만 그 교수방법은 달라야 한다. 최대한 쉽게, 당신이 생각하는 쉬움보다 더 쉽게 가르쳐야 한다. 우리 학생들은 머리가 말랑말랑한 10대 소년 소녀가 아니다. 인생 산전수전을 다 겪은 부모님 세대이다. 백지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이미 한 폭의 그림이 그려진 종이를 고쳐 그려야 하는 게 훨씬 어렵다.


아, 물론 우리 만학도들에게 유리한 과목들도 있다. 기술가정이나 사회 같은 실용 과목이 그렇다. 배우지 않아도 이미 인생의 경험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많다. 내가 가르치는 국어에서도 일면 그렇다. 학생들이 재밌어할 만한 회심의 이야기를 날렸는데, 이미 학생들이 알고 있어서 김이 샜다.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수업하는 날이었다. 재미 삼아 백석 시인에 관련된 일화를 소개해 드리는 와중이었다.


"백석을 그리워하던 자야라는 기생이 후에는 크게 요정을 했고요. 먼 훗날 이 부지를 불교에 기증하게 됩니다. 그 공간에 절을 짓는데, 그 절이 바로..."


학생들이 아까부터 웅성웅성거리더니


"길상사 말씀하시는 거죠? 성북동에 있는"

"어... 맞아요. 어머님들 아시는 얘기세요?"

"그럼요, 알다 마다요. 거기가 예전에 대원각이라고 엄청 큰 가게였거든."


이런 것까지 알고 계실 줄이야. 살면서 자연스레 체득한 지식으로는 그녀들이 척척박사다.


문제는 관념적인 것들에 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지식일수록 우리 학생들이 어려워한다. 시의 표현방법 수업 중에서 은유법을 설명하는데, 매년 쉽지 않다. 원관념과 보조관념, 비유가 무엇인지, 은유는 비유 중에서 은근하게 돌려서 하는 것이고, 직유와 비유의 차이를 장황하게 설명한다. 이 단계까지 오고 나면 절반의 학생들만 겨우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절반은 여전히 아리송해한다.




솔직해져야겠다. 어머님들이 연세가 많아서 수업하기 힘들다는 건 순 핑계다. 다른 선생님들은 추상적인 내용도 학생들이 손으로 잡을 수 있게끔 잘 빚어서 던져주기 때문이다. 사회 선생님 수업이었다. 도시와 농촌의 차이에 대한 설명이었는데, 교재 내용이 '도시는 공동체 의식이 약하고 개인주의가 강하다'였다. 이번에도 희망 씨는 뭐가 헷갈렸는지 '도시에 정이 많다'에 동그라미를 쳤다. 하, 이걸 어떻게 바로 잡아줘야 할까. 아마 나였다면 머리가 하얘졌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나? 새마을운동부터? 이촌향도로 이야기를 풀어가 볼까? 하지만 똑 부러진 사회 선생님은 5초 만에 희망씨를 이해시켰다. '희망님, 요즘 동네 아파트에 이사 온 사람이 떡 돌리던가요?'이 한 문장으로 희망씨의 생각을 바로 잡았다. 어떻게 그 순간에 적절하고 직관적인 예시를 떠올릴 수 있을까? 손흥민, 김연아를 연상시킨다. 고난도 기술이라는 걸 사람들이 눈치도 못 채도록 사뿐하게 수행했다.


사회 선생님의 수업을 훔쳐 듣다 보니, 내 수업이 불필요하게 거창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렵게 설명할 필요가 뭐가 있나. 직관적으로. 쉽게 가자. 그러면 이제 은유법을 다시 가르쳐보자.


"여러분, 스파게티 드셔보셨어요? 드셔보신 분도 있고, 아닌 분도 계시네요. 그럼 스파게티를 알고 계신 여름씨가 희망씨에게 스파게티를 설명해 보시겠어요?"

"가만있자, 그게 서양 사람들이 먹는 토마토 면 요리인데... 새콤하기도 하고... 포크에 돌돌 말아서..."

"설명하기 어려우신가요? 그러면 희망씨가 알만한 가장 비슷한 요리에 빗대어 설명해 보실래요?"

"비빔국수랑 비슷하죠. 희망 언니, 스파게티가 뭐냐면 미국 사람들이 먹는 비빔국수 같은 건데, 고추장 대신 토마토 양념소스가 들어가."

"이게 비유예요. 빗대어서 설명하는 거! 쉽죠? 국어 완전 껌이죠?"


'국어는 껌이다' 문장으로 은유법도 해결한다. 이제 우리 학생들은 비유법을 볼 때마다 스파게티와 껌을 떠올릴 것이다. 이렇게 어머님들이 상상할 수 없는 개념들도 최대한 와닿게 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다. 서울대는 못 보내도, 검정고시는 합격시킬 수 있다.




야학은 일주일에 한 번 가는 무료 봉사활동이고, 본인은 회사에 주 5일 출근하며 돈을 번다. 우리 회사 제품을 사용하는 기업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내 업무다. 여러 고객사를 상대하다 보면 '고액 연봉을 받는 대기업 사람들이 이렇게 기본도 안된 질문을 한다고?' 싶을 때가 있다.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을 왜 나에게 묻는 건지. 짜증 난다. 안 그래도 나 바쁜... 한가해도 열받는다. '그런 식으로 일할 거면 그 자리를 차라리 나한테 줘'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1번 문제를 틀리는 희망 씨가 야학 밖에도 많다. 그러니 나도 희망 씨를 대하듯 고객님을 대한다. 당신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이 질문을 왜 하는 건지, 고객님이 걱정되는 게 무엇인지 묻다 보면 질문 안에 함축되어 있는 맥락을 발견한다. 노답이라고 단정해버렸던 고갱님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러면 복잡해 보였던 문제가 수월해진다. 희망 씨에게 은유법을 가르치는 마음으로 회사에서 일하면 실마리가 보인다.


'자 어때요. 쉽죠? 여러분도 할 수 있겠죠?' 내가 수업시간에 자주 하는 말이다. 이 말을 들은 학생들의 표정은 어두워진다. 말하진 않으셔도 '너한테나 쉽지'라고 눈으로 욕을 날리신다. 나는 무언의 공격을 애써 외면한다. 알고 있다. 내 말이 가스라이팅이라는 걸. 이 개념이 어려운 걸 알고 있는데, 충분히 할 수 있으니 지레 겁먹지 말고 덤벼보라는 용기의 주문이다. 못한다고 생각하면 될 것도 안되니깐. 그러니 어려워 보일수록 쉽게, 단순하게. 공부도, 삶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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