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올해 담임선생님은 도덕 선생님이고, 작년에는 역사 선생님이셨잖아. 그런데 우리 초등반 때는 누가 담임이셨더라? 기억이 안 나네."
우리 야학 학생들끼리 나눈 대화를 엿들은 것인데, 재작년 담임 선생님이 누구인지 가물가물 하다니? 누구긴 누구야. 내가 담임이었는데!
학기마다 작게는 일곱 명, 많게는 열 명의 선생님이 돌아가며 수업에 들어오다 보니, 그 많은 선생님들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게 이상하지는 않다. 다만 나는 대체로 존재감이 없는 편이라, 늘 길보드 차트에 오르지 못하는 것이 가끔 서운하기도 하다. 학생들이 좋아하는 선생님은 행사 때가 되면 티가 난다. 졸업식날 학생들 입에 '특히 감사하다'며 오르내리는 선생님, 그 자가 바로 인기 많은 선생님이다. 오랜만에 학생들이 야학에 방문했을 때, 서로 얼싸안고 반가워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강한 사제 유대감이 있는 관계다. 그들이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할 것이 없어 설거지를 하는 부엌데기 신세다.
학생들은 그렇다 쳐, 동료 선생님들에게 마저 인기가 없다. 어느 날 한 선생님이 '룰루 님은 어떤 선생님과 제일 친해요?'라고 물은 적이 있다. 내가 없던 회식 자리에서 나와 친한 선생님을 수소문을 했는데,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룰루 선생님한테 무슨 일 있는 거 같던데, 혹시 아는 사람 없어? 아무도 없어? 누가 룰루 선생님이랑 친하지? 영어 선생님이 친하지 않아요? 저번에 선물 주는 거 봤는데 내가"
"아닌데요? 저는 원래 선물을 잘 나눠줘요. 나도 그렇게 많이 친한 편은 아닌데... 과학 선생님이 친하지 않아요?"
"내가 친... 해? 나도 룰루 선생님한테 어떤 일이 있는지 들은 게 없는데?"
아무도 나와 친하다고 나선 사람이 없었고 결국 그들의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나와 가장 친한 동료 선생님을 고르자니,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다. 그냥 두루두루 여러 사람과 관계가 좋은 편이라고 생각한다만, 속마음을 나눌 수 있는 소위 '베프'는 없다. 학생에게도 예쁨 받는 편이 아닌데,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학생들 사이에서 내 별명은 '샌님'이다. 종종 수업 시작 전에 '국어선생님은 딱 샌님 같아. 왜 있잖아, 도련님 느낌!'라며 웃으시곤 한다. 보통 이런 말을 들으면 '제가 왜 샌님이에요?'라고 궁금해서 물어볼 법도 하지 않나? 나는 한 번도 그 이유에 대해 묻지 않았다. 장난을 받아치지 않고 꿀꺽 먹어버린 걸 보면 학생들이 내 별명을 잘 지었다. 어쨌거나 샌님이란 말은 인간적인 면모가 부족하거나 융통성이 없거나 고루해 보이는, 한마디로 재미없는 교과서 같은 사람에게 쓰는 말이지 않은가. 이 별명 하나로 내가 인기가 있을 수 없게 타고났음을 알 수 있다.
억울하지는 않다. 경쟁자들이 너무 쟁쟁하기 때문이다. 이름만 거론돼도 학생들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도덕 선생님. 우선 그녀는 수업 시작 전에 서류 봉투에 무언가 한 다발 가져온다. 오다가 시장에서 찐빵이 너무 맛있어 보여서 사 왔다며 교실을 삽시간에 장날로 만들어 버린다. 수업은 어찌나 잘하는지. '봉사활동 지원자가 오면 도덕 선생님 수업을 꼭 참관하게 하자!'라고 우리끼리 암묵적인 규칙을 만들었을 정도다. 동서양 철학자들의 사상을 한 편의 이야기로 구성해서 수업하는데, 듣다 보면 나조차도 빠져든다. 공부가 아니라 재밌는 이야기꾼에게 만담을 듣는 기분마저 든다. 중간중간에 본인의 가족사까지 꺼내서 어머님들의 웃음과 눈물을 훔쳐가는데, 어찌 사랑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에 반해 난 학생들과 뻘쭘한 편이다. '선생님, 오늘은 국어 연강인데 농담도 해가면서 천천히 수업해요'라는 말에 '우리는 공부만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랍니다'라고 잘라버리는 나란 샌님. 나도 다른 선생님들처럼 원맨쇼도 하고, 학생들과 티키타카도 할 소통능력이 있다면 진작에 그리 했을 것이다. 학생들의 분위기를 띄울만한 텐션도, 배꼽을 쥐게 하는 센스도 없기에, 그저 묵묵히 교과서 속 글자들을 그녀의 머리에 때려 넣는 데 집중할 뿐이다. 이러할지니, 내가 인기가 없는 건 너무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우리 반에 새로운 국어선생님이 오셨다. 덕분에 나는 문학에만 집중하고, 비문학은 새로 오신 선생님에게 맡길 수 있게 되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같은 과목을 나누어 수업하는 선생님들끼리는 주기적으로 진도 를 공유하는데, 하루는 새로 오신 선생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학생분들이 자꾸 '이 수업내용은 룰루 선생님과 상의한 건가요?'라고 물어보세요. 그래서 의논하면서 수업하고 있다고 했지 뭐예요 하하하..."
민망했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는 한 학생분이 '비문학 문제를 푸는 선생님만의 방법이 있나요?'라고 묻기도 했다. 내가 비문학 수업을 따로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선생님들의 수업을 믿지 못하는 학생들이 잘못한 거기는 하나, 한편으로는 내 수업이 학생들에게 신뢰받고 있는 것으로 느껴졌다. 최근에는 룰루 선생님의 수업 방식이 부진한 학생들에게 도움이 되니, 다른 선생님들도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건의사항도 있었다고 한다. 적어도 학습에서는 나쁘지 않은 선생님일지도?
얼마 전에는 봉사활동 지원자의 기행으로 한바탕 야학이 뒤집어졌다. 교사가 되는 마지막 관문인 수업시연 시간, 지원자가 기존 야학 선생님들 앞에서 수업을 선보였다. 하지만 그의 수업은 실전에 투입되기에 무리가 있었다. 그래서 재준비를 해서 다음에 다시 수업을 선배 선생님들께 보여달라고 요청했으나, 돌아온 건 그의 불만문자였다. 대강 내용은 '야학이 이렇게 보수적인 곳인지 몰랐다. 나를 지적한 선생님들 때문에 불쾌했다. 봉사활동을 하지 않겠다.'였는데, 제일 열받는 건 야학 계좌로 기부금 10만 원을 보냈다는 점.
사실 난 이 사람을 뽑는 걸 진작에 반대했었다. 교사모집 담당 선생님과 얘기를 나눠보니, 얼핏 들어도 우리 야학과 결이 맞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이 사람 진짜 쓰려고요? 아닌 거 같아요.'라고 담당 선생님께 의견을 전했으나, 결국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다. 그날 이후로 나는 '선생님을 잘 골라내는 쌤믈리에'라는 칭호를 얻었다. 원체 내가 사람에 대해 의심이 많다. 그래서 새로운 얼굴을 야학에 들이는 데 조심스럽다. 과거 내가 교사모집을 맡았던 시기에는 사람을 가려서 받았고, 첫 면담 때부터 봉사활동의 힘든 점부터 일러주어 '정신교육'을 시켰다. 덕분에 한동안 심각한 빌런이 보이지 않았고, 있었어도 내 선에서 조용히... 정리했다.
인기는 없어도, 믿음직한 사람. 이게 내 야학 속 이미지 같다. 이 공간이 연극이라면 아마도 나는 출연진이 아니라, 제작진이겠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연기자가 나라면 좋겠지만, 그래도 제작진도 필요하잖아? 이 연극을 함께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 하진 못하고 과연 주연의 자리는 공기가 다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