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에서 만난 김건모의 추억
이제 다리를 건너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지난 열흘 자연 속에만 살았더니 새삼 이 도시의 풍경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랜빌 아일랜드에서 밴쿠버 다운타운으로 들어가려면 다리를 하나 건너야 한다. 우리는 차를 그랜빌 아일랜드 공영주차장에 주차해 두고 걸어가기로 했다. 다리 위를 걸어서 건너는 건 언제가 기분이 좋다. 상쾌한 바람이 위아래를 아주 시원하게 훑어주니까. 다리 위에서 보는 밴쿠버의 풍경은 꽤나 이국적이다. 다리 우측(다운타운 방향)은 지극히 전형적인 도시의 모습이지만 반대쪽(그랜빌 아일랜드 방향)은 이색적인 건물들과 요트 덕에 휴양지 분위기가 난다. 겨울이 긴 몬트리올의 요트 정박장과는 또 다른 느낌이 난다. 우리가 오전 내내 걸어 다녔던 그랜빌 아일랜드를 다리 위에서 다시 한번 훑어본다. 작아 보이지만 이곳저곳 볼거리가 많았던 섬. 그럼 이제 진짜 밴쿠버 도시 안으로 들어가 보자.
밴쿠버로 들어가는 초입에 발견한 한 빈티지 샵. Wildlife Thrift store.
건물 외벽 컬러부터 빈티지한 게 눈에 띄어서 잠깐 들어갔다. 가구부터 시작해서 옷, 액세서리, 음반, 책까지 없는 게 없는 빈티지샵. 밖에서 볼 때는 작아 보였는데 막상 들어가니 매장이 꽤나 크다. 한국에 살 때 광장시장에 안에 있는 구제시장에 자주 놀러 갔었다. 당시 한국에서는 같은 제품을 쉽게 구할 수 없는 구제 패션이 유니크함 때문에 패션 좀 좋아한다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종의 트렌드가 되었는데, 캐나다와 한국의 구제 시장이 운영되는 방식은 조금 다르다. 광장시장에서 판매하는 구제 제품들은 보통 일본에서 사용되었던 유럽이나 미국의 제품들을 한국으로 재수입한다. 안에 들어있는 상품을 일일이 확인하지 못한 채 무게당 가격으로 거래가 되어 빈티지샵의 주인들이 카테고리에 맞게 분류하는 시스템이다. 따지고 보면 다른 나라 어디선가 누군가 쓰다 버린걸 우리나라가 돈 주고 사와 다시 쓰는 격이다.
캐나다의 국가 역사는 우리보다 짧지만 구제 제품들의 역사는 아마도 우리보다 길지도 모르겠다. 지역마다 빈티지 제품을 사고파는 매장이 있는데, 사용하던 물건을 매장에 판매하면 그곳에서 각각의 물건들을 분류하고 손질해서 다시 저렴하게 판매한다. 내가 사용하지 않는 물건을 필요한 누군가에게 물려주는 느낌이랄까? 게러지 세일이라고 하여 자신의 차고 입구에 판매할 물건들을 진열해놓고 오가는 동네 사람들에게 판매를 하는 경우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래서 그런지 캐나다의 빈티지샵에 진열되어 있는 물건들을 보면 나와 동시대를 살고 있거나 살았을 누군가를 상상하며 물건을 구매하게 된다. 물건마다 각각의 사연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당근 마켓의 중고거래보다 실용적이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물건을 구매할 때 물건에 얽힌 사연들이 덤으로 딸려 오는 경우가 많이 있다. 여기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구구절절,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게 또 이 나라 중고거래의 소소한 재미이다.
나는 음반코너에 눈길이 갔다. 아무리 USB에 음악을 많이 담아왔어도, 지난 열흘 동안 장거리 운전을 하며 하루에 최소 6시간 이상은 들었으니 이젠 음악 리스트를 한번 바꿔줄 때가 되었다. 줄리랑 나랑 음반을 하나씩 고르기로 하고 옆에 할아버지와 경쟁하듯이 음반들을 주의 깊게 훑었다. 하나씩 하나씩 신중하게.
이 많은 음반 중에 혹시 한국 음반도 있을까 생각했는데 운이 좋게도 몇 개 찾을 수 있었다. 그중에서 내가 고른 건 김건모 4집, 줄리가 찾은 건 윤미래 T의 두 번째 앨범이었다.
김건모 4집은 1996년에 나온 앨범으로 타이틀곡으로는 <스피드>와 <빨간 우산>이 순위에 그 제목을 올렸고 음반 수록곡 중 개인적으로 나는 <흰 눈이 오면>과 <미련>을 좋아했었다. 당시 나는 중학교 1학년이었는데, 어릴 때부터 왜 이리 슬픈 노래들만 좋아했는지 피식 웃음이 났다. 중학교 때 이 음반을 실제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래서 앨범 재킷이 눈에 더 확 들어왔나 보다. 다만 그때는 카세트테이프로 가지고 있었는데 오늘은 CD로 만났다. 좋아하는 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OST까지 총 CD 세장을 구매했다. 밴쿠버 한복판의 빈티지샵에서 어릴 적 들었던 한국 앨범들을 다시 만나다니, 이것도 정말 인연이었다. 빈티지 카메라나 가방 등 맘에 드는 소품들이 많이 있었지만, 이 여행이 끝나면 모든 짐을 정리하고 호주로 다시 떠나야 했기 때문에 사실 이 CD 3장 조차 우리에겐 너무 사치였다. 주옥같은 음반 3장의 가격이 총 $5라니. 원래 CD 한 장에 2.5불이었는데 그중에 세일 상품이 있었나 보다.
이 샵은 디스플레이도 감성적이고 마음에 드는 물건도 많았고 심지어 계산해주는 직원도 너무 멋있게 생겼었다. 게다가 지역 자선단체에 수익금의 일부를 기부도 하는 착한 상점이다. 자기들이 후원하는 단체들 이름까지 공개하며 솔선수범을 하고 있었다. 버려지는 물건들을 재사용해서 환경보호도 하고 그 수익금의 일부는 또 기부를 하니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있을까? 역시 멋은 시각적인 우월감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캐나다에서 구제 상품들은 단순한 패션의 한 장르가 아니라, 환경을 보호하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커다란 둘레의 선순환을 만들고 있었다.
느낌이 너무 좋았던 이 빈티지샵은 가이드북에도 나오지 않는 밴쿠버의 보물 같은 곳이었다.
이 샵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SNS에서 만나보시길. 나 역시 인스타에서 팔로우를 해놓고 가끔 올라오는 피드들을 체크하고 있다.
Wildlife Thrift store.
1295 Granville St, Vancouver, BC V6Z 1M5
(604) 682-0381
밴쿠버는 이민자의 도시답게 그동안 여행했던 여러 나라와 도시들의 느낌이 복합적으로 느껴졌다. 도시 한복판에 있는 콜로세움을 닮은 저 건물은 도서관이란다. "The words don't fit the picture"라는 문구는 마음에 들었다. 나도 나름 10년 넘게 사진을 찍었지만 세상을 사진 안에 모두 담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 가끔은 나도 카메라를 넣어두고 마음에만 남길 때가 있다.
밴쿠버의 많은 건물들의 외관이 너무 새것 같아서 마치 세트장 같이 느껴졌다. 그래도 군데 군대 아직 골목의 정취가 남아있는 걸 보면 왠지 안심이 되었다. 한인교포들도 많아서 쉽게 한국 식당이나 마트를 찾을 수가 있었다.
밴쿠버 시내를 목적지 없이 걸었다. 햇살이 따뜻하게 느껴지지만 덥지는 않아서 도보 여행하기 딱 좋은 날씨다. 밴쿠버 출신 사람들이 그렇게 자랑하던 밴쿠버 날씨가 이런 거구나. 쾌청한 날씨만큼이나 사람들 역시 밝고 멋쟁이들 역시 많았다. 날씨가 사람의 성향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호주를 여행할 때, 그들에게는 뭔가 다른 여유 같은 것을 나는 항상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선진국이라 그런가 보다. 부자 나라에서 날씨까지 좋은데 그 정도 여유 나올 수 있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와 비슷한 느낌을 필리핀에 갔을 때도 받았다. 호주와 필리핀은 경제적으로 차이가 날 텐데 같은 느낌의 '여유'를 필리핀에서도 느끼다니 조금 의아하게 생각되었다. 3개월간 필리핀에서 머문 끝에 나는 그 이유를 날씨에서 찾았다. 사계절이 있는 나라는 날씨가 추워지기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겨울 내내 먹을 음식을 준비하고 보금자리의 난방 등 여러 가지로 월동준비가 필요했다. 호주나 필리핀 같이 겨울이 없는 지역은 언제나 따뜻하고 먹을게 풍족하니 여유로운 배짱이 마인드를 가지기 쉬운 환경이었을 거라는 이론이다.
밴쿠버 역시 여유로운 배짱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동화 속에서 배짱이의 느긋함은 저평가되지만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은 연중 일정기간만이라도 여유로운 베짱이가 한 번쯤 될 필요가 있다. 성실하게 일하는 시간도 가치 있지만, 계절이 흐르는 시간을 느끼고 자연을 즐기며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 역시 중요하다. 여유로운 배짱이들은 보통 창의력이 뛰어나고, 그래서 아티스트가 많다. 모든 부랑자들은 밴쿠버로 향한다는 캐나다의 우스개 소리가 있다. 아무래도 집이 없는 노숙자들은 겨울이 혹독하고 긴 동부보다는 서부의 밴쿠버 같은 도시가 더 살기 좋기 때문이다. 생각과는 달리 밴쿠버에 노숙자들은 적었고 오히려 거리의 예술가들이 많았다. 특이한 작품세계를 가진 배짱이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거리 여기저기에서 전시 중이었다. 실제로 달릴 수는 있을지 의문이 가는 이 오토바이에 우리는 2불을 투자했다.
우리도 베짱이처럼 이 평화로운 날씨를 한번 즐겨보기로 했다. 외국여행을 떠나면 카페든 펍이든 테라스를 꼭 한번 즐겨보시길 권하고 싶다. 사실 테라스가 보기엔 분위기가 좋아 보이지만 실제로 앉아보면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한여름의 직사광선을 테라스에 앉아 그래로 받고 있노라면 10분만 앉아있어도 땀이 삐질 나고 현기증이 날 때도 있다. 그래도 난 테라스 문화가 좋다. 내가 살고 있는 퀘벡의 몬트리올은 겨울이 고향이라는 노래 가사가 있을 정도로 겨울은 길고 상대적으로 여름이 짧다. 그래서 사람들은 날이 조금이라도 따듯해지는 햇빛이 좋은 날이면 너도 나도 테라스에 앉아 햇빛을 즐기려 한다. 겨울철에는 기온도 기온이지만 해도 짧아 지기 때문에 일조량이 매우 줄어든다. 여름에 충분히 햇빛을 즐겨놔야 겨울을 버틸 에너지가 충전되는 것이다. 테라스에 앉아 한가로운 오후를 즐기고 있는 그들은 자연이 주는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고 있는 것이다. 좋은 날씨와 그걸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만났으니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렇게 밴쿠버는 축복받은 도시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건 밴쿠버의 명물이자 개스타운의 상징인 증기시계(steam clock)다. 15분마다 증기를 뿜어 기적소리를 낸다. 우리도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한잔 마시며 증기시계가 울리길 기다려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계가 드디어 증기를 뿜어내며 기적을 울려대기 시작한다. 모두들 카메라를 들어 일제히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가이드북에 나온 코스를 다 돌던 그렇지 않던 나의 항상 여행은 가이드북에서부터 시작한다. 요즘엔 인터넷만 보아도 무료의 최신 정보가 수두룩하지만 그래도 여행은 왠지 가이드북과 함께 해야 제맛이다. 여행 가기 전 경건한 마음으로 여행 중 들을 음악을 선곡하고, 가이드북과 지도를 보면서 도시의 큰 그림을 익히고 도시의 역사와 배경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익히는 것이 여행의 시작이다. (이번 여행에서는 이동시간이 실다 보니 도시에서 다음 도시로 이동하는 시간 짬짬이 가이드북으로 다음 도시를 공부했다.)
나의 여행이 가이드북을 펼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실제 여행할 때 가이드북에 나온 명소들을 꼭 방문하는 것은 아니다. 가이드북은 말 그대로 일종의 가이드라인 같은 기준점이 되어줄 뿐이다.
굳이 따라 할 필요도 없지만 그렇다고 따라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여행을 많이 하다 보면 자기만의 스타일이 생기기 마련이다. 자신만의 여행법이 확실히 생기기 전까지 가이드북은 좋은 교과서가 되어준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는 밴쿠버 타워에는 오르지 않았다. 세계 어느 도시던 처음 가면 제일 높은 전망대에 올라 도시의 전경을 한번 내려다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왠지 이번에는 내키지 않았다. 여유 있게 마음에 드는 샵이 있으면 아이쇼핑도 좀 하고, 앉아서 풍경을 바라보며 잠깐 멍을 때리기도 하고, 헬기투어를 마치고 착륙하는 모습도 구경했다.
증기시계 옆 길을 따라 걷다가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작품들이 걸려있는 갤러리를 발견했다. 팝아트부터 시작해서 데미언 허스트까지 동시대를 아우르는 트렌디한 작업들이 센스 있게 걸려있었다. 좋은 작품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짐과 동시에 스스로 붓을 놓은 것에 대한 죄최감도 든다. 붓을 놓은 지 벌써 어언 5년. 당장 무엇을 그리는 것보다 세상을 경험 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당장 뭐라도 그려야 할 때가 온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예술이 뭐 별건가. 일상을 조금 비틀어 낯설게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자기 생각을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예술 아닐까? 나의 꿈을 잊지 않으려고 모든 내 아이디는 직장인 작가다. 잊지 않고 곧 무언가를 그리리라!
당장이라도 쏟아질 거 같은 햇빛 아래 거리로 쏟아지는 사람들. 열심히 걷다 보니 벌써 퇴근시간이 되었다. 관광객들과 직장인들이 섞이면서 거리는 꽤 북적북적 해진다. 저녁은 신선한 밴쿠버 산 해산물을 먹기로 했다. 밴쿠버는 해산물이 저렴하기로 유명하다. 열흘을 달려 힘들게 도착한 밴쿠버에서 사실 내가 먹고 싶은 음식은 소박하게도 김밥이었지만 밴쿠버 김밥천국은 있던 곳에서 멀어 그랜빌 아일랜드로 돌아가 식사를 하고 주차해두었던 차를 픽업하기로 했다.
밴쿠버 다운타운을 벗어나는 길. 가장 현대적인 하이브리드 택시 도요타 프리우스와 정말 구형의 택시가 함께 신호 앞에 나란히 서있다. 자동차의 엔진이 내연기관에서 전기모터로 넘어왔다는 것 자체도 신기하지만
미국이 주름잡던 자동차 시장의 주도권이 도요타나 현대 같은 동양 기업으로 넘어왔다는 것 또한 신기한 일이다. 세상은 이렇게 계속 변한다.
하루를 마무리하는 햇살이 따듯하게 비추니 아침과는 또 다른 느낌의 그랜빌 아일랜드다. 오늘 도전의 맛집은 토니의 생선가게(Tony's fish & oyster cafe). 이제 어느 나라 어느 동네를 가나 가이드북 없이도 맛집을 찾아내는 우리의 능력은 점점 탁월해지고 있다. 식당 간판과 분위기를 보면 대충 감이 온다. 오랫동안 유지되어 온 맛집은 전통과 실용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기 마련이다. 그냥 낡은 것이 아니라 사용자의 손을 수천번 수만 번 타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연륜이 느껴다고나 할까. 여행 중 관건은 그런 맛집을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찾는 것이다. 맛은 결국 타이밍이다.
토니의 식당은 옛날 어릴 적에 동네에 하나둘씩 생기던 경양식집을 연상하게 인테리어였다. 우리는 굴과 피시 앤 칩을 주문했다. 피시 앤 칩은 사실 요리 못하는 영국 애들 놀릴 때 들먹이는 메뉴긴 하지만 정말 잘하는 집 가서 먹으면 이게 또 눈물 나게 맛있다. 한국에서 굴은 항상 신선하고 저렴한 술안주지만 캐나다에서 이런 날음식을 먹기는 꽤 힘들다. 캐나다에 처음 왔을 때는 회를 먹고 싶은데 한국식 횟집이 없어 초장을 싸들고 일식집에 가서 사시미를 먹었다. 생굴은 와인에 먹는 고급 안주다. 밴쿠버에서는 신선한 굴을 비교적 저렴하게 맛볼 수 있었다. 물론 캐나다의 다른 지역에 비해 말이다.
식사를 마치고 캠핑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오늘 빈티지샵에서 구입한 김건모 4집을 들었다. 어렸을 때 마이마이의 이어폰으로 꼽고 즐겨 듣던 노래를 20년 뒤 밴쿠버 시내 한복판에서 내 차를 운전하며 다시 듣게 되다니, 그때의 감성과 지금의 감성이 오버랩되면서 뭔가 오묘한 감정을 만들어냈다. 김건모의 4집 수록곡 중 <헤어지던 날>이라는 곡이 있는데 그중에 이런 가사가 있다.
"그래 축복할 거야 네 새로운 그 시작이 누구보다 더 행복할 수 있게
아주 먼 훗날 널 사랑하는 새 남자와 울며 보채는 아이를 그려보며"
이별한 연인의 멋 훗날 미래를 그려보며 축복하는 내용이다. '20년 전 이 앨범을 듣던 누군가는 지금 어느덧 지긋한 나이의 가장이 되어 그 먼 훗날이라 생각했던 "지금"을 살고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 앨범을 샀던 남자는 96년에 밴쿠버로 유학을 왔었지.. 유학 오기 전 헤어진 여자 친구가 생각날 때마다 이 노래를 들었데.. 거의 잊혀 갈 때쯤 밴쿠버에서 새로운 여자를 만나게 되었지만 그래도 한국에 두고 온 그녀를 완전히 잊을 수는 없었어.."
"그 사람 아직도 밴쿠버에 살고 있을까..???"
김건모 님의 음악에 취해, 우린 구매한 CD의 전주인 스토리를 마음대로 써가며 캠핑장으로 돌아왔다.
이렇게 음악은, 아니 모든 예술은 계속 살아 숨 쉬며 또 다른 스토리를 만들어 간다.
내일이면 이제 밴쿠버와도 작별이구나. 우리의 캐나다 횡단 로드트립은 우선 이렇게 일단락된다. 내일부터는 미국 국경을 넘어 시애틀로 간다. 그리고 미국의 90번 도로를 따라 몬트리올로 돌아는 미국 횡단 여행의 시작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이자 반환점이었던 밴쿠버. 그 끝이자 시작의 전환점에서 한번 더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