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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비효율적인 여행 방법

비행기 VS 자동차 저렴하게 밴쿠버에 가는 법

밴쿠버는 캐나다의 서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에 위치한 도시로 그 규모가 세 번째로 크다. 태평양과 맞닿아 1년 내내 온화한 기후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어 해마다 세계에서 살기 좋은 도시에 뽑힌다. 

나는 밴쿠버로부터 약 4천500킬로미터 떨어진 캐나다 동부의 몬트리올에 산다. 비행기를 타면 밴쿠버까지 약 4시간이 걸리고 두 도시 간의 왕복 비행기표는 약 50만 원 정도 한다. (캐나다에는 아직 저가 항공사가 많이 없어 국내선의 항공권이 비싼 편이다.) 캐나다에서 2년간의 생활을 정리해야 하던 때, 나에겐 캐나다를 여행할 수 있는 약 20여 일의 시간이 주어졌다. 




나는 비행기 대신 차에 캠핑장비를 싣고 숙박과 식사를 해결하며 밴쿠버까지 로드트립 하는 편을 선택했다. 총 1만 킬로미터를 달린 이 여행을 다녀온 뒤 따져보니 와이프와 나 둘이서 총 400만 원의 여행비용을 사용했다. 비행기를 타고 4시간 만에 밴쿠버에 갔다면 밴쿠버를 즐길 시간은 충분했겠지만, 비행기표 값을 제외한 300만 원은 성인 2명이 밴쿠버를 20일 동안 여행하기엔 조금 부족한 금액이다. 그래서 우리는 밴쿠버보다는 밴쿠버로 향하는 "길"에 집중을 하기로 한 것이다.


장기여행을 하려면 역시 비용이 제일 걱정된다. 낭만이란 이름으로 잘 포장하긴 했지만 결국 우리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자동차로 떠나는 로드트립을 선택했고, 캠핑을 하며 직접 요리도 해 먹었다. 나에겐 캐나다 운전면허도 있었고, 캐나다 번호판이 달린 자동차도 있었다. '내 차를 몰고 내가 사는 나라의 반대쪽 끝까지 한번 가보자'는게 이번 여행의 단순한 목표였다. 




그렇게 몬트리올을 떠난 지 정확히 10일 만에 밴쿠버에 도착했다. 밴프에 머문 시간을 제외하고는 매일 평균 600km 이상을 달렸다. 시차가 바뀌는 타임존을 두 번이나 넘고 열 밤 중 일곱 밤은 캠핑, 이틀 밤은 호텔, 하루는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신세를 졌다. 1000km의 중부 평원지대를 지날 때, 처음에는 광활한 대지 끝의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게 무척 신기했지만 나중에는 오르막과 비탈, 그리고 커브길이 있는 산이 그리워졌다. 캐나다가 정말 크구나 라는 말을 약 100번 정도 했을 때야 우리는 약 4500km의 장거리 달리기를 마치고 드디어 밴쿠버에 도착을 했다. 비행기를 탔으면 4시 만에 왔을 거리를 열흘이나 걸려 왔으니 9일 하고도 20시간을 버린 셈이지만 비해기로 여행했다면 볼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보고 느꼈다. 가성비라는 말은 모든 것에 적용할 수는 없는 일이다. 




로키를 완전히 넘어 캐나다의 서쪽으로 내려오면 우선 가로수의 종류가 바뀌며 따뜻한 나라에 온듯한 이국적 풍경이 펼쳐진다. 캐나다의 서부에 왔다는 게 실감 나는 순간이다. 거대한 로키 산맥이 나무와 풀의 종류, 바람의 온도와 하늘의 높이를 바꿔버리는 것을 몸소 체험했다. 밴쿠버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자, 도대체 밴쿠버는 어떤 도시일까 설레기 시작했다. 어떤 도시이기에 그렇게 살기 좋다고 세계적으로 소문이 났을까? 오늘부터 천천히 알아볼 예정이다.



밴쿠버 시내가 드디어 육안으로 확인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교차되며 밴쿠버에 들어선다. 때마침 우리 옆을 지나가는 퀘벡 번호판의 차량. 우리처럼 며칠을 고생하여 도착했을 생각에 깊은 동질감을 느껴지면서 가슴 한편이 찡해진다. 밴쿠버 번호판을 단 피아트 500도 만났다. 내 차도 뒤에서 보면 저렇게 작고 귀여운가? 저렇게 작은 차에 모든 살림을 떼려 싣고 캐나다를 횡단했다고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몬트리올을 출발할 때는 뒷좌석의 의자를 눕혔는데도 짐이 너무 많아 출발할 때는 룸미러로 뒤차를 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1,000km의 지루한 중부 평원지대도 지났고, 로키산맥도 넘었고 조금 있으면 드디어 밴쿠버에 도착한다.


장거리 로드트립을 준비하고 있는 분들이 있다면 몇 가지 팁을 주고 싶다.

첫째. 과속하지 말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달리세요.
둘째. 페이스가 비슷한 속도의 차량들을 만나면 함께 달리세요.
함께 달리면 덜 지루할 뿐만 아니라 위험을 감지하고 신호를 보내주기도 하니 훨씬 안전합니다. 

우리의 인생이 그렇듯요.




캐나다는 외국인이나 초보운전도 운전하기 참 좋은 환경임에는 틀림없다. 교통체증이 덜하고 운전자들이 너그럽다. 옆 차선으로 차선 변경하려고 방향 지시등을 켜면 뒤차가 비켜주지 않으려 가속페달을 밟는 우리나라와 달리, 이곳에선 속도를 줄이며 자신의 앞자리를 관대하게 내어준다. 그러니 한국처럼 경쟁하는 운전습관을 버리고 차분하게 자기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특히 도시로부터 멀리 떨어진 고속도로에서 만나는 차들은 대부분 장거리 운전자들이다. 먼 거리를 달리는만큼 중간중간 휴게소에서 만나기도 하고 길에서도 계속 마주친다. 그렇게 수백 킬로미터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 보면 마치 같은 골을 향해 달리는 팀처럼 끈끈한 전우애(?)가 생겨 헤어질 때 아쉬운 마음이 든다. 우리가 타인을 모두 경쟁자로 생각하는 마음은 아마도 우리가 살아온 사회의 문화 때문일 거다. 습관을 한 번에 고치거나 버리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너그러운 캐나다의 교통환경은 잠시 그런 경쟁을 잊게 해 준다.



우리는 밴쿠버 시내를 약간 벗어난 외곽의 캠핑장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대도시에 와서 그런지 캠핑장도 캠핑카들도 모두 으리으리했다. 캠핑카 사이에는 조경수들로 공간을 나누어 서로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었다. 빨래방과 수영장, 라운지까지 정말 없는 게 없는 캠핑장이었다. 덕분에 여행 중 처음으로 빨래도 하고 개인정비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햇빛이 너무 좋아 수영도 하고 책도 읽으며 오랜만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도시가 편하긴 편하구나.




사람마다 주어진 인생의 총량은 다르겠지만 싫으나 좋으나 시간은 간다. 그 삶을 무엇으로 채우냐가 중요한 부분이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한정된 에너지를 가지고 일종의 발란스 게임을 한다. 안정과 불안정 사이의 줄타기에 임해야 한다. 안정된 삶은 지루함을 동반할 수 있다는 부작용도 잊으면 안 된다. 


무언가로 고통스러울 땐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란다. 코로나19 확진으로 14일의 자가격리를 할 때는 먹고 자는 일에 집중하며 시간이 빨리 가고 증상이 사라지기만을 바랬다.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반대로 시간이 너무 빨리 가서 아깝다. 이미 존재하는 아름다운 것을 보는 일, 좋은 책이나 영화를 보고 멋진 풍경이 보는 것이 좋다. 그러나 어떨 때는 나 스스로 무언가를 생산하고 싶을 때도 있다. 내 행동으로 삶의 무언가를 변하게 하는 것. 예를 들면 운동을 해서 내 몸을 변하게 하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써서 누구를 위로하거나 내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고 싶을 때도 있다. 나는 Blance라는 영어 단어가 좋다. 항상 발란스(저울)로 나의 발란스(잔고, 잔액)를 체크하고 내 인생의 발란스(균형)를 맞춰야 하는 것이다. 이번 캐나다 횡단 로드트립은 내 삶의 잔고를 알아보고 균형을 맞추는 법을 배우는 여행이었다. 한번 해봤다고 두 번째도 당연히 따라오는 것은 물론 아니다. 편함을 버리는 건 언제나 고통이 따른다. 하지만 그만큼 얻는 게 있다.



내일부터는 밴쿠버라는 도시의 어디가 그렇게 살기 좋은지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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