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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가다 모르는 사람과 눈 마주쳤을 때 어떻게 하세요?

호주의 첫인상,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하다.

한국에서는 보통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면 한쪽이 먼저 눈길을 피하던가, 아니면 싸움이 난다. 눈을 똑바로 뜨고 사람을 쳐다보는 게 반항의 의미가 되기도 하는 문화 속에서 자란 우리는 사람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는 어른이 되었다. 외국에 10년 살다 보니 나는 이제 그런 습관을 버리고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그 시작은 호주의 골드코스트라는 휴양도시였다. 


내게는 호주에 대한 두 번의 첫인상이 있다. 첫 번째는 여행자로서 정말 처음 호주 땅에 발을 내디뎠을 때고, 두 번째는 늦깎이 워홀러, 외국인 노동자(?)로서 호주 땅을 밟았을 때다. 2012년 호주 첫 여행 때 브리즈번 공항을 나와 처음 제일 인상적이었던 건 역시 너무나도 파란 하늘이다. 어릴 적 사진 공부할 때 '외국 사진가들의 풍경사진은 왜 이렇게 이쁠까?', '카메라가 좋은 걸까? 렌즈가 좋은 걸까?' 했는데, 호주의 하늘을 보고 나니 정말 광질이 달랐다. 마치 호주에는 다른 태양이 뜨는 것만 같다. 아마도 공기가 맑기 때문에 하늘의 원래 색감을 그대로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싶다. 


호주 골드코스트의 파란 하늘과 넓은 바다


이런 맑고 화창한 날씨는 사람들 또한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한다. 햇빛을 적당히 받고 그을린 구릿빛 피부는 사람을 더 건강하고 활기차 보이게 하며, 거기에 겨울 걱정이 없이 자란 그들 특유의 낙천적인 성격까지 더해지면 옆에만 있어도 해피바이러스가 전염되고 만다. 심지어 도로공사 일을 하다가 휴식 중인 노동자들에게서조차 피로감을 전혀 엿볼 수 없는 콩깍지가 써진다.


호주는 자동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고 차량은 좌측통행을 한다. 운전자가 자꾸 딴짓을 하는 것 같아 보면 조수석이다. 직접 운전할 땐 물론이고 보행자로서 길을 건널 때도 매우 헷갈린다. 길을 건널 때 습관적으로 차가 오는지 왼쪽부터 확인하게 된다. 오랫동안 익숙해져 몸에 베인 것들을 바꿀 때는 항상 적지 않는 저항이 따른다. 



호주의 물가는 대부분 한국보다 약간 비싼 편인데, 오히려 휘발유와 와인 값은 한국보다 저렴하다. 특히 물 부족 국가인 호주는 물값이 비싸다. 푸른 하늘과 넓은 바다를 가졌지만, 사람이 마실 물은 부족하다. 맥주값이 물보다 싸서 이왕이면 맥주를 마시라고 자주 농담한다. 국토 전체가 바다로 둘려 쌓인 호주의 지도를 흔히들 계란 프라이에 비교하는데, 노른자 부위는 사막이고, 흰자 그중에서도 가장자리의 노릇노릇하게 탄 끝부분에 호주 인구의 대부분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된다. 호주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땅은 메마르고 사람이 살기 척박한 환경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호주의 중심으로 들어갈수록 여전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만날 수 있다. 호주인들은 그런 미지의 세계를 적극적으로 탐험하는 편인데, 그래서 계란 프라이의 노른자는 물론이고 도심에서도 탐험가 냄새가 물신 나는 사륜구동의 차량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때도 난 노란 랭글러를 좋아했다.


물론 도시에서도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은 많이 있다. 공원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크기와 관리가 잘된 녹지공간이 도시 곳곳에 있고, 대부분의 도시가 바다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아름다운 해변이나 수상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곳 또한 많이 있다. 

수로로 연결된골드코스트의 풍경(좌), 골드코스트 해변에서 서핑을 즐기는 사람을(우)


특히 브리즈번에서 차로 1시간 정도 떨어진 휴양도시 골드코스트에는 서퍼들의 성지로 알려진 서퍼스 파라다이스라는 해변도 있다. 도시 곳곳이 수로로 연결된 이곳은 풍경은 꽤나 낭만적이다. 그래서 그런지 세계에서 모인 부자들이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해변 곳곳에 무료로 사용 가능한 바비큐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 큰돈을 들이지 않고도 멋진 경치와 낭만을 즐길 수 있다. 맥주와 고기 모두 저렴하기 때문에 돈이 없는 젋은이들이나 유학생, 여행자들도 재미있게 놀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다. 골드코스트의 일출과 일몰은 항상 아름다웠는데, 나는 하루 두 번 그것들을 챙겨보는 것만으로도 너무 행복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중고등학교 학생 정도 돼 보이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전 이른 아침, 바다에 나와 서핑을 즐기는 모습이었다. 항상 졸린 눈을 비비며 자율학습이나 보충수업을 위해 아침 일찍 등교하는 생활을 했던 나의 학창 시절이 생각났다. 가끔 학교에 자각하면 하던 운동장 오리걸음이 그 시절 나의 아침운동 전부였다.

등교전 서핑을 즐기는 호주의 청소년들


호주의 이런 첫인상은 평화 그 자체였다. 아직도 나는 휴양지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 그 이유는 이때 경험한 골드코스트의 기억이 아직도 매우 좋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골드코스트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항상 미소를 보낸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나도 항상 상대방에게 미소로 화답한다. 엘리베이터 같은 작은 공간에선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지기도 한다. "어디서 왔니?", "여행 왔어?", "호주 날씨 좋지?" 같은 짧고 간단한 대화를 한다. 호주로 여행 왔다는 이야기를 하게 되면 "얼마나 머무냐", "2주는 호주의 아름다움을 모두 둘러보기엔 너무 짧다"등의 이야기를 나누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자주 연출된다. 오가는 대화의 수준이 중등 영어 교과서에 나오는 정도지만, 반복적으로 이어지는 이런 짧은 대화들은 나를 기분 좋게 했다. 여행이 끝날 때쯤에는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항상 올라가 있었다. 언제 누구와 눈을 마주칠지 모르니 습관적으로 먼저 미소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행 내내 큰 DSLR 카메라를 들고 다녔는데, 외국인들이 내 카메라를 보고는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익살스러운 포즈를 취해주고는 했다. 순박한 사람들의 그런 호의와 친절은 호주에 머무는 시간 내내 나를 행복하게 했다. 방송인 노홍철 씨가 무한도전에서 자주 했던 말이 떠 올랐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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