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캐나다의 다양한 올드카 문화, 그리고 여행하고 싶은 차
나는 나름 로드트립 신봉자다. 세계여행을 하는데 자동차가 가장 적당한 속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직접 원하는 속도로 운전을 하다가 서고 싶을 때 서고, 가고 싶을 때 다시 갈 수 있다. 나는 자동차를 타고 어딘가로 향하는 그 순간이 너무 설렌다. 캐나다와 미국을 횡단 여행하는 동안 멋진 도시와 대자연을 보는 일도 즐거웠지만 그만큼 즐거웠던 일 중 하나가 신기한 자동차를 타고 여행 중인 또 다른 여행자들을 길 위에서 만나는 것이었다. 물론 자동차 마니아들이 좋아하는 페라리나 람보르기니 같은 슈퍼카들도 많이 만났지만 내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런 자동차들의 이야기는 아니다. "제일 비싼 자동차"라는 기준을 단순하게 제조사가 붙여 놓은 가격만으로 이야기하기엔 이 세상에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자동차가 너무 많이 있다.
차를 좋아하는 나는 물론이고 여행 파트너였던 줄리 또한 신기해할 만한 자동차들을 북미 횡단 여행 중에 정말 많이 만났다. 딱 보기에도 3~40년은 되었을 것 같은 차들이 여전히 현역으로 도로 위를 멋지게 달리고 있는 모습이 놀라웠다. 여행 첫날 만난 이 흰머리 할아버지의 웨건은 올즈모빌이라는 미국 회사의 커스텀 크루즈라는 모델이다. 올즈모빌이라는 자동차 회사는 GM으로 흡수된 뒤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벤츠 다음 세계 두 번째로 자동차 대량 생산을 시작한 기업이라고 한다. 7~80년대에 생산된 모델로 추정되는 이 차는 꼭 최근에 불고 있는 레트로 바람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컬러의 조합이나 디자인이 상당히 멋지다고 생각한다. 공기저항 같은 실용적인 부분을 제쳐두고 자동차의 아름다움에만 집중하여 차를 디자인하던 시대였기에 나올 수 있는 디자인인 것 같다. 웨건은 보통 세단보다 실용적인 탈 것으로 정의되지만 이 차는 웨건도 충분히 멋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오래된 웨건을 운전하는 백발 할아버지를 보며, 이 차를 갓 사서 미국의 이곳저곳을 누볐을 그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본다. 미국의 경제적 부흥기에 새로 나온 신문물을 마음껏 즐기던 그 시절의 그도 요즘 나오는 자율주행 자동차나 전기차를 상상하지는 못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시속 100km까지 단 3~4초에 달려버리는 그런 차가 차고에 한대 더 있다한들 지금 그가 운전하고 있는 이 자동차만큼 할아버지의 감성적인 부분을 충족시켜 주는 차는 세상에 또 없을 것이다. 다시 오지 않을 젊음을 함께 했던 이 자동차 말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오래된 차를 좋아했다. 대학교 때 드림카가 그 당시 10년도 넘은 구형 코란도였다. 그 차를 사겠다고 군대 가기 전까지 용돈을 열심히 모았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내가 타고 있는 자동차를 클래식카가 될 때까지 잘 관리하며 타고 싶다는 꿈으로 바뀌었다. 나도 저 할아버지처럼 내 추억이 잔뜩 담긴 오랜 친구 같은 자동차를 갖고 싶어서이다.
마치 저 너머에 세상의 끝이 있을 것 같은 언덕길을 오를 때 뒷 꽁지가 매우 예쁜 차량을 한대 만났다. 이 차량은 Plymouth라는 회사에서 만들어진 Special De Luxe라는 차의 컨버터블 모델로 자그마치 1941년식이다. 50살이 넘은 차가 아직 고속도로 위를 생생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매끈한 유선형의 바디 쉐입과 오묘한 그린 컬러가 시선을 끈다. 심플한 휠과 하얀 타이어는 클래식 그 자체다. 추월하면서 창문을 열고 멋진 커플에게 엄지를 치켜세워주었는데, 그들 역시 엄지를 치켜세우며 화답해주었다. 블루투스 오디오는커녕 에어컨도 없고 창문마저 수동으로 내려야 하지만 바람을 유유히 가르며 달리는 그들의 모습이 정말 멋있었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의 수만큼, 오래된 것에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시간을 뛰어넘는 이런 아름다운 오브제들을 보면서 어쩌면 지금의 우리는 모든 것을 너무 공격적으로 소모해버리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오래된 시간을 달려온 차들만큼 그들만의 사연을 싣고 아주 먼 곳에서 달려온 차량들도 여행 중 많이 만났다.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은 여전히 차량의 등록지가 표기된 번호판을 많이 사용한다. 각 지역을 상징하는 문구들과 저마다 다른 디자인이 그 차량이 어느 지역에서 왔는지 쉽게 알려준다. 캐나다 퀘벡주의 몬트리올에서 온 우리 차는 앞 번호판이 없고 뒷번호판만 있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시절 생긴 적자를 만회하기 위해 번호판을 하나만 달아 예산을 아꼈다는 설이 있다. 북미에서도 앞 번호판이 없는 경우가 흔한 일은 아니어서 옆동네 뉴욕만 가더라도 사람들이 '왜 저 차는 앞 번호판이 없지'하며 차를 한 바퀴 빙 둘러보고는 한다. 4만 5천 킬로미터를 달려 밴쿠버에 도착했을 때 나는 '나 이 쪼그마한 소형차 타고 몬트리올서부터 달려왔어'하며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했다. 미국으로 넘어가서부터는 우리 차 외에도 아메리카의 다양한 지역에서 온 여행자들을 더 많이 만났다. 특히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의 주차장에서는 얼마나 다양한 지역의 여행자들이 모여들었는지, '아 여기가 정말 여행자들의 천국'이구나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국립공원 입구에서부터 처음 만난 이 버스는 사진을 찍고 싶어 주차장까지 쫄래쫄래 뒤를 따라갔다. 스쿨버스를 개조한 이 버스는 그냥 봐도 여행가의 향기가 느껴진다. 벽화처럼 핸드 패인팅으로 버스 외관에 그림을 그렸고, 버스 지붕에 루프 박스와 카약이, 후방에는 자전거 달려 있었다. 자전거의 사이즈와 개수로 짐작하건대 젊은 커플이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기며 장기 여행 중인가 보다. 버스 여기저기에도 낙서와 함께 '월드 트래블러'라는 말이 쓰여있었다. 드라이버를 꼭 만나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
이 랜드로버 디펜더는 자그마치 브라질에서 왔다! "sc sao bento do sul"라는 브라질에서 남쪽 도시에서 대략 계산해봐도 1만 킬로미터를 거리를 운전해 산 넘고 물 건너 여기 미국의 옐로우스톤까지 온 것이다. 6~7번 정도 국경을 넘었을 테고 중간에 육로가 없는 곳도 있어 차를 배에 싣고 넘기도 했을 테다.
랜드로버의 디펜더라는 차량 자체가 험한 지형을 건너는 오프로드에 최적화되어있는데, 구난용 윈치와 스페어타이어까지 장착해놓은걸 보면 어지간히 험한 길을 달리려고 철저히 준비를 한 차량인 것 같다. 어디에 빠져도 금세 해쳐 나올 것만 같은 용모의 이 차량의 뒤쪽은 캠핑카로 개조를 했다. 숲을 헤매다가 멋진 경치를 만나면 바로 그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정말 멋진 콘셉트이다. 차에 곳곳에 붙어있는 액세서리와 스티커만 봐도 그동안 이미 멋진 여정이 있었음을 상상할 수 있다. 차량 정면 상단에 있는 웹사이트 주소에 접속해보면 그들의 여정을 담은 홈페이지가 있다.
브라질에서 온 여행자를 만난 기념으로 우리 피아트 500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주차장에서 만난 제일 귀여운 차와 제일 터프한 차의 조합이 아닐까? 차의 스타일도 고향도 다르지만 어쨌든 두 차가 각각 달려온 길을 합치면 2만 킬로미터가 넘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자동차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집 다음으로 비싼 재산인 경우가 많다. 그럼에도 집은 매일 값이 오르는 반면에 차는 매일매일 가격이 떨어진다. 중고차 사이트가 정해주는 내 차의 가격은 점점 떨어져도 차와 함께 한 추억의 가격은 점점 올라간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차를 헐값에 팔아야 할 때 속이 쓰린 이유다.
꼭 자동차가 아니라라도 기차, 오토바이, 자전거 등 다양한 방법들로 여행하는 멋진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차로 횡단하는 것도 상당히 힘들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여행하는 사람들은 정말 존경스럽기까지 했다. 기름값 걱정 없이 두 다리와 의지만 가지고 대륙을 횡단한다는 건 참 멋진 일인 것 같다. 평생 여행만 하고 살 수 있다면 나 역시 조금 더 다양한 방법으로 여행해보고 싶다. 하지만 항상 시간이라는 한계를 가지고 여행하는 우리에게는 역시 자동차가 제일 적당한 속도의 여행수단이 아닐까 생각한다.
여행기를 연재하는 동안 구독자들이 제일 많이 주셨던 질문은 "제 차로도 횡단 여행이 가능할까요?", "안전할까요?"였다. 대답은 언제나 "예스"다. 내 차만 보아도 고작 1400CC의 엔진을 단 이탈리아 소형차에 수동기어 모델이다. 크기는 한국 경차보다 약간 더 크고 문 두 짝밖에 없다. 형식적으로는 4인승이지만 실제로 뒷좌석은 그냥 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우리는 뒷좌석을 접어 아예 짐칸으로 만들어버렸다. 작은 차지만 횡단 여행 1만 킬로를 달리는데 전혀 문제가 없었고, 그 흔한 펑크 한번 나지 않았다. 너무 무탈하게 여행을 해서 나중에 책에 쓸 에피소드가 없다고 줄리와 농담을 했을 정도다. 물론 사륜구동에 공간도 넉넉한 차를 타고 여행했더라면 더 편리하고 폼도 나는 여행이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은 항상 불편함을 자처하는 일이고, 장비가 여행의 질을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예나 지금이나 생각한다.
하지만 다음 여행에는 나도 사륜구동 자동차를 타고 아메리카를 종단해보고 싶다. 조금 더 자연에 근접하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이다. 옐로 스톤 국립공원 초입에서 멋진 경관을 만나 잠깐 차를 세웠는데 우연히 옆에 지프의 소형 SUV가 주차되어 있었다. 나중에 캐나다에 돌아온 뒤 자꾸 눈이 가던 그 차를 나는 결국 구매했다. 횡단 여행 중 내가 찍었던 많은 사진들에 지프가 있는 게 그 복선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북미를 내 차로 횡단한 지난 30편의 여행기는 이렇게 종료되었습니다. 2015년에 했던 이 북미 로드트립은 7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제 몸과 마음속에 길이길이 남는 여행입니다. 새로운 경험으로 나 스스로를 더 단단히 다지게 하는 경험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한대 묶어 곧 POD(Publish On Demand)로 출판을 할 예정입니다. 브런치에 연재한 30편의 글 중 절반에 가까운 14편의 글이 포털사이트의 메인에 오르는 경험을 했습니다. 분에 넘치게도 약 22만 명 넘는 분이 제 글을 읽어주셨습니다. 여행을 떠나기 힘들고, 살기도 팍팍한 요즘 같은 시절에 조금이나마 독자분들의 마음이 말랑말랑 해졌기를 바라봅니다. 여행기를 쓰고 손보는 과정에서 저 역시 많이 그랬습니다. 저때는 알고 있었던 것들을 한동안 또 많이 잊고 산 것 같아 후회되기도 했고, 그때는 조금 더 길 줄 알았던 젊음의 시간이 생각만큼 길지 않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했습니다. 책이 출판되고 나면 조만간 또 길을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강력하게 듭니다.
북미 횡단 이후 지난 7년간의 제 여정을 간략하게 말씀드리자면, 우선 캐나다 생활을 정리하고 호주로 갔습니다. 호주의 동부 브리즈번에서 늦깎이 워홀러 생활을 경험하고 그 마무리를 기념하는 여행으로 호주의 배꼽 울루루까지 캠핑카 로드트립을 다녀왔습니다.(이 역시 곧 브런치에 연재할 예정입니다) 호주 생활 뒤에는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였습니다.(이 역시 호주 여행기 이후에 연재 예정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구독 부탁드립니다.)
집도 절도 없이 북미와 호주를 떠돌던 게 그래도 지금은 떠나면 돌아올 집 한 칸은 있습니다. 그렇게 갖고 싶었던 사륜구동 지프차를 구매해서 지금은 또 다른 여행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2년 전부터는 여행을 영상으로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 글과 영상이 여행을 떠나려는 분들에게는 좋은 정보가, 그리고 당장 떠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대리 만족이 되기를 바랍니다.
드림카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하려는 앞으로의 제 계획은 아래 영상을 통해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