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가서 제일 먹고 싶은 건 국밥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면 여행은 시작된다.

몬트리올의 우리 집을 떠난 지 18일 만에 캐나다와 미국을 크게 한 바퀴 돌고 다시 캐나다 국경 안으로 돌아왔다. 캐나다 동쪽의 퀘벡주 몬트리올에서 시작된 로드트립은 위니펙과 리자이나, 캘거리, 벤프를 거처 캐나다 서쪽의 끝 밴쿠버까지 달렸고, 그곳에서 미국의 시애틀로 내려가 옐로우스톤, 시카고를 거쳐 미국의 동부를 향해 달렸다. 어제 디트로이트 국경을 거쳐 다시 나이아가라 폭포의 캐나다 방면으로 들어왔다.


며칠 있으면 캐나다를 떠나 호주로 가야 하기 때문에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나이아가라 폭포를 한번 더 보고 싶었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미국과 캐나다의 국경에 걸친 세계 3대 폭포 중 하나로서 토론토를 모르는 사람은 있어도 나이아가라 폭포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나이아가라 폭포는 2년 전 캐나다에 와서 처음으로 여행했던 곳이고, 그 후로 한국에서 가족이나 친구들이 올 때마다 함께 다시 방문하여 좋은 추억도 많은 우리에게는 나름 상징적인 장소였다. 말발굽 모양의 거대한 폭포에서 세찬 물줄기가 53미터 아래로 거침없이 떨어져 내려 꽂히는 것을 보면 오랫동안 뭉쳐있던 마음속 응어리라도 모두 그 물살에 부서져 버리는 느낌이 든다. 서울 사람들에게 부담 없이 드라이브 삼아 훌쩍 떠날 수 있는 서해바다가 있다면, 토론토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나이아가라 폭포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보는 방법에는 몇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폭포 주변의 전망대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바라보는 것, 둘째는 폭포 아래로 연결된 동굴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 폭포의 안쪽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의 뒷면을 바라보는 것, 셋째는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에서 폭포와 주변 전체 전경을 조망하는 것, 넷 째는 유람선을 타고 강을 거슬러 폭포에 최대한 가까이 다가가 떨어지는 물줄기를 적극적으로 체험해 보는 법. 그리고 마지막은 폭포 전망의 호텔방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나이아가라 폭포를 처음 보았을 때는 최대한 적극적인 방법이 좋았으나 지금은 호텔방에서 바라보며 폭포 멍을 때리는 게 가장 좋다.



나이아가라와 하룻밤의 재회를 뒤로 하고 토론토로 넘어왔다. 캐나다를 떠나 있는 동안 다시 못 만날 친구들을 불러 작별인사를 했다. 익숙한 사람과 장소가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시내에서 제일 좋아하는 펍에 갔다. "잭 에스터스 바(Jack Astor's Bar)"라는 이곳은 토론토 살 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펍인데, 영-던다스 스퀘어(Yonge-Dundas Square) 앞에 위치하여 맥주를 마시며 사람들 구경하기 좋다. 토론토 한복판에 있다는 느낌을 받고 싶을 때 제일 즐겨 찾는 펍이다.



보통 여행은 집을 나서면서 시작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왔을 때 그 여정이 끝나지만, 우리는 집을 정리하고 떠났기 때문에 다시 돌아갈 곳이 없었다. 캐나다 국경을 넘어오는 순간 최소한 우리가 처음 가보는 곳은 아니었으므로 이번 여정의 한 챕터는 끝난 것으로 형식적인 합의를 하였다. 사실 2년 전 한국을 떠나온 뒤로 우리는 계속 여행과 일상의 그 중간쯤 어디에서 생활해온 것 같다. 필리핀에서 3개월, 토론토에서 3개월, 몬트리올에서 2년, 그리고 앞으로 호주에서 있을 1년여의 시간까지 우리는 여행 같은 일상을 그리고 일상 같은 여행을 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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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가보지도 않은 캐나다로 이민을 가겠다고 줄리와 함께 캐리어 여섯 개와 백팩을 각각 하나씩 메고 비행기를 탔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했던 2013년 3월의 토론토 국제공항의 공기를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지금은 토론토가 내게 너무 익숙한 곳이 되어버렸다. 캐나다에 적응하기에는 지금 사는 몬트리올보다 토론토가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처음 3개월을 토론토에 거주하며 불어 공부를 했었는데, 그때의 좋은 기억 때문에 내게는 심적 고향처럼 느껴진다. 아는 사람들이 있고, 아는 식당들이 있어서 더욱 그렇다. 사람은 익숙해지면 금방 지루함을 느끼지만 잠깐의 떠남으로도 그 익숙함이 다시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익숙함을 마주했을 때, 집에 돌아온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다음날 토론토를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돼지국밥집을 찾았다. 20여 일 동안의 여독을 풀기에는 역시 뜨끈한 고깃국물이 최고다. 값도 싸고 영양가가 있는 국밥은 긴 여행을 마치고 무사귀환했음을 자축하기 최고의 음식이다. 다만 깊이 있는 국물 맛을 가진 국밥집을 이곳에서 찾기 힘들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돼지국밥 세리머니로 토론토와 뜨거운 안녕을 하고 몬트리올로 향했다. 마지막 여섯 시간의 운전. 이것을 마지막으로 나는 한동안 운전대를 잡지 않아도 된다. 마지막의 순간 긴장이 풀었을 때 사고가 나는 경우가 많음으로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은 항상 중요하다. 긴장하라는 듯이 몬트리올에 다 다랐을때쯤 갑자기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횡단 여행 중에 많은 소나기를 만났지만 이번 소나기는 정말 한 치 앞을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많은 비가 내렸다. 시야 확보가 되지 않으니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어 비상등을 켜고 차를 도로 한쪽에 세웠다. 비 때문에 갓길에 차를 세운 건 여행 중 이번이 처음이었다. 차를 세운 뒤로 약 10여분 비가 지속되더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곧 사그라들었다. 아메리카는 마지막까지 예측할 수 없는 곳이구나. 신기한 경험이라고 헛웃음을 치며 다시 출발했는데, 그때 내 눈앞에 너무나도 아름다운 무지개가 펼쳐졌다. 그 무지개가 얼마나 선명하고 거대했는지, 마치 지난 20여 일간의 여정이 이 무지개를 보기 위해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억수로 쏟아진 소나기 다음에 만난 무지개여서 더 좋았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어리석다. 늘 곁에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자주 망각하기 때문이다. 아파봐야 건강이 최고라는 것을 알고, 집 떠나봐야 집 좋은 줄 안다. 늘 보고 있어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할 시간이 없어 그 느낌을 자주 잊어버리나 보다. 이번 여행을 통해 새로 배운 것도 많았지만, 제일 큰 수확은 일상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었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바라보면 일상도 여행이 될 수 있다. 같은 것 같지만 매일이 다른 나의 일상은 늘 특별하고. 그 일상을 사랑하는 것이 곧 나를 사랑하는 법인 것을 나는 이번 여행에서 배웠다. 일상의 위대함을 깨닫기 위해 참 먼길을 돌아온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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