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미국영웅과 버드와이져를 마시는 영광

그땐 외국과 미국이 동일어인 줄 알았어요.

시카고 출근시간의 교통 정체를 피하기 위해 아침 일찍 서둘러 호텔을 나선다. 운전을 하는 것은 좋아하지만 차가 막히는 건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묶여있는 말처럼 달려야 할 곳에서 달리지 못하고 서있는 고역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나는 항상 그것을 피해보려 발버둥 친다. 약간은 차가운 새벽 공기가 피부에 와서 묻는다. 시원한 그 느낌이 참 좋다. 덕분에 8월임에도 상쾌하게 느껴진다.




오늘 향할 도시는 미시간주에 있는 배틀크리크(Battle Creek)라는 도시다. 시카고에서 94번 도로를 타고 디트로이트를 향하다 보면 만나게 되는 이 마을은 미국에 사는 사람들조차 생소한 인구 5만여 명의 작은 마을이다. 지도에서조차 찾기 힘든 이런 작은 마을을 찾아가는 데는 꼭 만나야 할 분이 있어서다. 어쩌면 지난 2년간의 캐나다 생활을 마치고 이번 북미 횡단 여행을 떠나오기까지 가장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 3년 전 이 분과 함께 떠난 호주 여행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난 계속 한국에 살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마음 같아선 깜짝 방문을 해서 놀라게 해드리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폐가 되거나 짧은 일정에 만나지 못할까 봐 하루 전에 연락들 드리고 주소를 받았다.



하이웨이를 빠져나와 들어선 마을은 생각보다 더 한적하고 고요했다. 역시 도시보다는 마을이라는 단어가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마을에 들어서며 줄리에게 말했다. "나한테는 여기가 정말 미국이야" 그렇다. 어릴 적부터 내가 듣던 미국은 바로 이곳이었다. 이곳에서 오늘 우리가 만날 분은 아버지의 40년 지기 베스트 프랜드다. 나는 미국삼촌이라고 부르는 그분이 30년째 살고 계신 곳이다. 내가 어릴 적 삼촌이 한국에 들어오실 때마다 미국에서 과자나 초콜릿, 보드게임 같은걸 사다 주셨는데 그 기념품들이 미국에 대한 나의 첫인상이었다. "미국"이랑 "외국"이 동의어인 줄 알았던 그 꼬마는 삼촌에게 받은 선물들과 TV에서 본 미국의 풍경들을 오버랩하며 콧수염을 멋지게 기른 미국삼촌이 사는 미국을 항상 상상했다.


배틀크리크라는 이 도시로 들어온 지금 이 순간 나는 어렸을 때 그렇게 상상하던 미국삼촌의 "미국"에 실제로 발을 디딘 것이다. 지난 17일 동안 캐나다와 미국을 1만 킬로미터 직접 운전하며 달려왔지만, 지금 이 순간이 어느 때보다 설렌다. 삼촌이 사는 이 마을은 미국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보면 전혀 미국스럽지 않은 도시일 테고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보기엔 가장 전형적인 미국의 마을일 것이다. 미국에 와보기 전 미국 하면 떠오르는 곳들은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들이 대부분이었다. 멋진 슈트에 서류 가방을 들고 바쁘게 횡단보도를 건너는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는 우리가 매스컴을 통해 본 미국의 극히 일부일뿐이다. 여행 중 만난 미국인들 중에는 픽업트럭을 타고 폴로티에 청바지를 즐겨 입는 수수한 사람들이 더 많았다.



드디어 저 멀리 우리의 목적지가 보인다. "글로벌 합기도협회", 삼촌은 미국에서 30년째 합기도를 가르치는 일을 하신다. 낮에는 시리얼 회사 포스트에서 일하고 밤에는 본인의 도장을 운영하며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을 병행하셨다. 10년 전부터는 은퇴 후 합기도 국제협회를 만들고 합기도의 세계화를 위해 전념하고 있다. 외국 선수들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세계대회를 열고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며 관련 세미나를 열었다. 합기도는 몸과 정신을 함께 수련하는 무술이다. 삼촌은 미국에서 살며 익힌 영어의 힘을 느꼈고, 그것을 이용해서 합기도를 세계에 더 많이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인종과 배경, 출신 국가 등을 초월하여 누구나 출전할 수 있는 세계 합기도 대회를 만드셨다.


2012년 삼촌의 합기도 관련 호주 출장에 우리 가족이 함께 동반하게 되었고, 덕분에 나는 외국에 오랫동안 사신 분들과 함께 호주를 여행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 보름 정도의 시간 동안 호주인들의 사는 모습과 그들이 한국과 그 문화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함축적으로 볼 수 있었다. 세상이 정말 넓다는 것과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이 상당히 많다는 생각 또한 했다. 그때 생긴 다소 무모한 호기심과 모험심으로 나는 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필리핀 어학연수를 거쳐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었다.


_MG_5723.JPG


생각보다 쉽게 삼촌의 도장을 찾았다. 뜨거운 포옹을 하며 2년 만에 우린 그렇게 재회를 했다. 삼촌은 먼길을 달려온 우리를 단골 레스토랑으로 안내했다. 티본스테이크와 버드와이져. 지극히 미국스러운 조합이었다. 내가 어릴 적 상상하던 미국에서 미국 삼촌과 먹는 미국 소고기와 미국 맥주. 모든 상황이 너무 적절했다. 지금까지도 티본스테이크를 먹으면 이날이 생각난다. 지난 캐나다에서의 2년 동안 삶과 18일간의 북미 횡단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삼촌이 처음 이민 왔을 때 사정도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 여행을 마친 뒤 호주로 건너갈 우리의 계획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삼촌은 미국에 30년 동안 살았지만 너 같은 여행은 꿈도 못 꿔봤어. 미국 살면서도 1만 킬로미터를 운전하면서 여행하는 건 상상이 안 간다. 너처럼 젊은 나이에 그런 걸 해보았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고 좋은 경험이 될 거야. 존경스럽다!"


늘 존경하는 삼촌이 오히려 나에게 존경스럽다고 이야기했다. 스스로를 낮추면서 다른 사람의 기분을 좋게 해 주는 것이 삼촌의 특기라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삼촌은 지금도 합기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세계 어디든 마다하지 않고 날아다니는 중이다. 삼촌도 처음 이민 왔을 때는 쉽지 않았겠지만, 미국 생활에서 얻은 영어라는 두 번째 무기를 통해 평생을 바친 합기도를 더 넓은 세상에 알리고 있다. 진정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삼촌은 여전히 나의 히어로다.


식사를 마치고 삼촌의 도장으로 돌아오니 어느덧 수업시간이 되었나 보다. 합기도를 배우기 위에 매일 도장으로 향하는 사람들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 도장을 바탕으로 삼촌은 합기도를 열심히 전파하셨고 미시간주 주지사에게 명예로운 시민이 받는 황금열쇠를 두 개나 받았다. 미시간주에서 합기도 국제 대회를 주최하여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미시간주를 널리 알렸다는 공로를 공식적으로 두 번이나 인정받은 셈이다.


_MG_5726.JPG
_MG_5728.JPG


재미있었던 건 삼촌과 우리 아버지는 오랜 시간 동안 친한 친구사이지만 상당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삼촌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삼촌과 함께 식사를 하고, 운전하는 차를 타보고, 사무실을 보니, '역시 친구가 맞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사는 곳도 하는 일도 다르고 30대 이후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 반대편에서 각각 떨어져 보냈지만 둘은 묘하게 닮은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가 문득 그리워져서 삼촌과 함께 직은 사진을 메시지로 보냈다. 낯설면서 익숙한 이 공간에 내 차와 삼촌 차가 함께 서있다는 게 참 신기해서 마지막 기념사진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다시 캐나다로 돌아간다. 좋은 영감과 에너지를 듬북 받는 의미 있는 여행의 마무리가 되어 가고 있다.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이제 또 달릴 시간이다. 디트로이트 쪽 국경을 통해 캐나다로 들어가고 오늘 밤은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묵을 예정이다. 두어 시간 정도를 달리자 캐나다로 넘어가는 다리가 있음을 알리는 이정표를 만났다. 캐나다에 산지 고작 만 2년이 되었는데 캐나다 국기가 그려진 이정표를 볼 때마다 집에 왔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아마도 자주 떠나고 돌아오는 과정을 반복했기 때문이다.


몬트리올을 처음 떠날 때 꽉 차 뒤차조차 볼 수 없었던 트렁크는 이젠 거의 비어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몸도 마음도 가볍게 캐나다로 들어가는 중이다. 몬트리올 살던 집을 떠난 지 정확히 18일 만이다. 몬트리올에서 캐나다의 중부지방을 거쳐 앨버타의 밴프 국립공원과 밴쿠버를 둘러보고

미국으로 내려와, 시애틀과 옐로우스톤 국립공원, 미시간과 디트로이트를 거쳐 다시 캐나다로 들어가는 중이다. 그동안 지났던 도시와 풍경들이 머릿속을 슬라드처럼 스쳐가는데 내가 실제로 다녀왔다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Bienvenue au Canda!!
캐나다에 온 걸 환영한다는 불어 메시지를 보니 캐나다가 맞나 보다. 이정표를 보자마자 왠지 울컥하는 그 마음은 무엇에서 시작된 건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었다. 출처를 알 수 없는 그 격한 감정을 가지고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keyword